건축의 몸집 줄이기
중앙일보, 2012.5.15, 오피니언, [삶의 향기]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580/8178580.html
'건축의 대중적 관심, 마음을 움직이는 작은 건축물 때문
땅을 딛고 있는 건축, ‘하이테크’와 ‘로테크’ 모두 필요'
건축이 대중매체의 관심을 끌고 있다. ‘건축’과 ‘건축가(家)’란 말이 영화 제목에 붙고,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가 건축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건축가가 대중매체에 등장한 것은 오래전이지만 치열한 전문가라기보다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에고이스트와 일은 안 하는데 돈 잘 벌고 인기 많은 로맨티스트를 버무린 인간으로 그려지곤 했다. 최근 여러 매체가 기획과 고증을 통해 현실적 건축가상에 근접하고 있다. 요즈음 건축가가 조명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설계한 작고 소박한 건축물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영화 ‘말하는 건축가’의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들은 마을에 들어선 누가 설계했는지 모르는 작은 목욕탕에 흐뭇해한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주인공이 철야와 야근을 반복하면서 완성한 것은 결국 추억을 담은 작은 집이었다.
이처럼 사람과 콘크리트 덩어리 건물이 교감하는 것은 ‘만드는 사람’이 ‘쓰는 사람’을 깊이 헤아리고 공을 들였을 때다. 건물이 커지면 ‘쓰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쓰는 사람이 많고 다양해지고, 요구사항도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를 위한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 정의하기도 쉽지 않다. 당장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 사용자를 배려하고 그들의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 건축가의 몫이다. 이때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계획 수법이 사용된다. 하지만 건물의 규모가 임계점을 지나 초대형화되면 건축가와 사용자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기도 한다. 최근 문제가 터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이 단적인 예다.
우리나라의 PF사업은 건축물의 기획, 계획, 설계, 시공, 관리의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주체가 없는 불안정한 방식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한국의 PF는 진정한 디벨로퍼가 없는 변질된 형태라고 지적한다. 시행사라고 불리는 한국형 디벨로퍼는 건물이 준공되기 전에 분양을 끝내고 이익을 거둔 뒤 사업에서 빠진다. 반면 해외 성공사례로 꼽히는 도쿄의 롯폰기힐은 디벨로퍼인 모리사가 건물을 소유하면서 임대해 장기적으로 이익을 내는 방식이다. 한국형 PF사업에서는 먹고 튀는 ‘먹튀’ 시행사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먹튀’는 성공하면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개발 이익을 남겨주지만, 실패할 경우 사회 전반에 피해를 입힌다. ‘파이시티’ 사태는 책임지는 주체가 없이 굴러가는 대형 개발 사업의 일그러진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건축계의 속사정은 어떤가. '건물'이 커질수록 '건축'은 왜곡되고 있다. PF를 포함한 각종 개발 사업의 성패는 인허가와 분양에 달려있다. 이런 구도에서 건축사사무소는 형태․공간․ 구조의 구석구석까지 치밀하게 고민하고 설계할 여유가 없다. 시선을 끄는 화려한 조감도를 그리고 뇌리에 남는 디자인 구호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건축사사무소를 고용한 건설사도 마찬가지다. 기술 혁신을 주도해야 할 고급 엔지니어들이 현장을 비우고 영업활동에 나선다. 건물의 몸집은 커지는데 건축가와 엔지니어의 기초 체력은 약해지는 구조다. 건축이 고부가가치의 지식서비스 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풀어야 할 숙제다.
건축은 고도의 디자인과 기술력뿐만 아니라 동네의 목수․벽돌공․미장이 등 현장 숙련공의 손끝이 묻어날 때 고품질이 된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처럼 공장에서 생산하는 완제품과 달리 건축은 땅을 딛고 있기 때문에 ‘하이테크’와 ‘로테크’를 모두 필요로 한다. 건설투자 비율이 국민총생산량의 6분의1 이상을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특성 때문이다. 즉 건설 관련 산업의 범위가 넓다는 것이다.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한국의 도시 개발 패러다임은 분양에서 임대로 전환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발 대상의 땅과 건물의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도시 건축의 큰 파이를 여러 조각으로 잘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방식이다. 디자인과 기술, 하이테크와 로테크의 융합은 이처럼 개발 단위가 작아질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지난 10여 년간의 경험을 통해 건축계는 깨달았다.
좋은 건축, 감동을 주는 건축의 시작은 의외로 가까운데 있다.
김성홍 ․ 서울시립대 교수 ․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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