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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omad의 글쓰기

『三低主義』 추천사 (2012.3)

‘건설신화’와 ‘디자인 경제주의’를 향한 나지막한 경고


구마 겐고, 미우라 아쓰시 지음, 『三低主義』 추천사

 

세계 2위 경제 대국 일본이 겪고 있는 불황과 침체의 진앙은 1990년대 초 붕괴된 거대한 부동산 거품이다. 산업화시대의 성장 동력이었던 건설 시대가 저물고 있었지만 50년 이상 집권한 자민당은 오랜 정치적 우군인 건설 산업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그 원인이다. 그런데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들은 바로 이러한 건설경제 덕분에 몇 세대를 풍미했다.


사회학자 미우라 아쓰시와의 대담에서 건축가 구마 겐고는 거대 건축과 뉴타운이 다름 아닌 산업화 시대와 고도 성장기의 산물이었으며, 거품이 꺼지고 난 지금 그 후유증을 어떻게 겪고 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있다. 고령화, 독신화, 고실업과 함께 주택과 상가는 남아돌고, 교외 도시는 쇠퇴하고 있다. 안정된 삶을 기약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집과 자동차를 소유할 생각을 버리고 있다. 땅과 건물은 소유에서 임대로, 공간의 점유는 시간의 공유로 그 개념이 바뀌고 있다.


이런 시대에 건축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저서 『약한 건축』 『자연스러운 건축』으로 잘 알려진 구마 겐고는 지난 20년 동안 작고 소박한 건축을 주장해 왔다. ‘삼저주의’는 건축과 도시라는 물질 덩어리를 통해 사회를 개혁하고 사람을 계몽할 수 있다고 믿었던 가부장적 근대주의의 오만함에 대한 반항과 각성이다. 그리고 낮은 자세로 삶의 목소리를 듣고, 오래된 것을 고쳐서 다시 쓰는 ‘삼저건축’을 내세운다.


매끈하고 세련된 구마 겐고의 건축이 ‘약한 건축’ ‘삼저건축’인지는 의문이다. 이론과 실천의 연결 고리도 의심이 간다. 하지만 혹독한 현실과 건축 엘리트주의 중간에 위태롭게 서 있는 건축가의 고민과 숙제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내미는 솔직함이 다가온다. 다다미 상점을 유도부 연습장으로 활용한다든지, 낙후된 상점가 안쪽 공터에 복지공간을 만들어 일체화한다든지, 홀로 사는 노인과 돈 없는 청년이 공유하는 주택사업을 시작한다든지, 책장을 넘기면서 건축가만이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재치 있는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손바닥을 치게 된다. 4대에 걸친 일본 건축가의 계보와 그들의 뒷이야기 같은 부수적 정보를 얻는 재미도 쏠쏠하다.


 

팽창하는 도시, 새집에만 익숙한 우리들에게 이제 일본처럼 몰락하는 도시와 빈집의 풍경을 받아들일 때가 오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 곧 다가올 전주곡, 아니 이미 다가온 현실이다. 건설신화의 쇠퇴를 감지한 현명한 독자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2012년 2월

김성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