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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omad의 글쓰기

대선일보다 더 긴장되는 날 (2012.10.9)

대선일보다 더 긴장되는 날

 

중앙일보, 2012.8.7, 오피니언, [삶의 향기]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752/9531752.html

 

1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마음 졸이는 수능일

입시를 통한 학력과 학벌의 대물림대끊기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과 판세가 연일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고 있다. 1219일 선거일까지 관전의 묘미를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승부에 뛰어든 사람들에겐 피 말리는 나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대선보다 더 긴장되는 날이 있다. 118일 대입 수능일이다. 66만 명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포함해 적어도 1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은 대선보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이 날을 기다리며 더 마음 졸이고 있다.

 

수능은 복잡한 대입 관문의 분수령이다. 내년 2월까지 계속될 긴 관문을 통과한 후 웃는 수험생은 얼마나 될까? 매년 수능 응시생의 5분의 1 이상, 상위권 대학 합격생의 절반이 재수생이라는 통계가 있다. 대학 정원과 수험생의 숫자로만 보면 수요와 공급이 맞는 것 같지만 개인의 희망과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다.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재수생, 통과하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반수생이 재학생의 경쟁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입시가 다가오면 아슬아슬한 폭탄을 받는 심정이다. ‘폭탄 돌리기는 계속된다. 다음해, 그 다음해 입시 대열에 합류할 수백만의 예비 수험생과 학부모가 벌써부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입시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새로운 제도를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수험생과 학부모의 부담과 고통은 커진다. 상위권 대학에 어떻게든 들어가려는 수험생, 우수한 인재를 뽑으려는 대학이 있는 한 경쟁은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나라, 교육이 최대의 자산이 되는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학생이 꿈꾸고 원하는 전공을 찾아가는 경쟁이 아니라, 견고한 대학서열의 틀을 따라가는 경쟁이라는 데에 있다. 베이비붐 세대가 산업화와 고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뼈저리게 체험한 학력과 학벌 학습효과다. 무엇을 어떻게 경험했는가보다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우리 세대는 마음속 깊이 믿고 있다. 혜택을 본 사람들은 대물림’, 쓴맛을 본 사람들은 대끊기를 자식들이 해주기를 바란다. 복잡해진 입시 제도로 대학 서열화는 다소 희석되었다고 하지만 그 뿌리는 여전히 깊다.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인 지역 간 갈등, 심지어 진보-보수 대립을 넘나드는 것이 학력과 학벌 네트워크다.

 

이런 상황에서 수험생은 부모가 정해주거나 점수에 맞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적성과 전공은 대학 서열의 종속 변수일 뿐이다. 이렇게 대학 문을 들어선 학생들은 비로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다.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돌입해야 한다. 사회에 발을 내디딘 후에도 진로에 회의를 느끼는 젊은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들은 선택의 기회를 가졌다.

 

반면 경쟁 대오에 끼지 못하고 방황한 젊은이들은 제 자리를 찾기 위해 몇 곱절의 노력을 해야 한다. 긴 우회로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는 너무나 인색하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거친 이른바 공신(工神)’으로, 대학 총장을 역임한 분의 말씀이다. “공부는 인간이 가진 많은 능력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잣대로 한 줄을 세우고 있지요.”

 

한 줄로 선 사회에서는 모두가 불안하거나 불행하다. 앞선 사람은 뒤로 처질까 불안하고 뒤에 선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불행하다. 이 거대한 괴물, ‘줄서기 강박증을 다음 세대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팍팍한 시대를 거쳐 이 만큼 홀로 설 수 있었던 것은 뒤에서 응원은 했지만 간섭은 하지 않았던 윗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된 우리가 입시와 진로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자식들에게 독은 아닐지.

 

늦은 밤 학원가 골목길은 수험생들을 데리러 온 자동차 행렬로 북새통을 이룬다. 덩달아 패스트푸드점도 북적거린다. 자식들의 배를 채워 다시 심야 공부를 시키기 위해서다. 대학이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려 주시던 옛 부모님들보다 과연 우리 세대는 더 잘하고 있는 것일까?

 

김성홍 서울시립대 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