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적인 전원의 비밀
중앙일보, 2013.6.18. 오피니언, [삶의 향기]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809/11828809.html
한국의 전원주택 열풍 ... 산만한 도농 중간지대
계획되지 않은 자연은 도시보다 나을게 없어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로버트 레드포드와 모건 프리먼이 나오는 영화 ‘끝나지 않은 삶’에 시선이 멈추었다. 두 노(老)배우의 중량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눈부시게 푸른 산과 들, 무채색의 농가와 마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지막한 가게가 늘어선 소도시의 거리와 커피숍 안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진다. 용서와 화해의 스토리를 끝까지 따라가지 않고 그 배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월요일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주말 오후의 감상이겠거니 하면서 채널을 다시 돌리니 이번엔 우리나라 50대의 전원생활 정착기가 나온다. 산을 등지고 들판을 내려다보는 테라스에 앉은 중년 부부는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 이런 삶이였다며 득의의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시골에 내려가 산다는 것이 영화와 다큐멘터리처럼 과연 쉬운 일일까? 풀 뽑고 집 관리 하는 고단함보다도 동네 대소사에 얼굴을 내밀고 섞여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시를 탈출하는 것 이상으로 힘들다. 도시의 매력은 적당한 익명성과 대면 접촉, 그리고 다양한 네트워크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있다. 반면 시골에서 이런 ‘선택적 삶’을 살면 위아래를 모르거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동네 사람들과 담 쌓고 사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시골생활이라기보다 뜨내기 전원생활이다. 은퇴를 앞둔 중년의 막연한 꿈은 많은 경우 이런 것이 아닐까?
전원으로 내려가는 길은 시작부터 편치 않다. 도시를 벗어나 외곽으로 들어서면 원색 간판으로 도배된 상가와 각종 현수막이 눈을 어지럽힌다. 주변이 한산해진다 싶으면 급조한 창고 건물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전국 어딜 가도 만나는 도시와 농촌의 중간지대는 이처럼 도심보다 더 산만하다. 잡지 표지에 나오는 전원주택 대부분은 이런 곳을 지나가야 있다. 잘 지었다는 전원주택을 방문하고 돌아오면 눈이 정화되어야 하는데 도리어 피곤하다.
영국의 에베네저 하워드는 근대적 전원도시를 최초로 구상했다. 19세기 말 런던은 무분별한 팽창과 공해로 허덕이고 있었고 도시를 벗어나고픈 중산층의 꿈도 커져갔다. 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은 어디였을까? 하워드의 답은 도시와 시골의 장점을 합친 제3의 도시, 그린벨트로 에워싸인 전원도시(garden city)였다. 도시계획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었던 하워드가 독학과 경험으로 쓴『내일의 전원도시』는 세계 도시사에 한 획을 그었다. 하워드의 이론은 런던 근교의 전원도시에서 실현되었고, 영국의 근대적 도시계획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 법은 지방정부가 도시의 청사진을 준비하는 법적 기틀이 되었다. 20세기의 크고 작은 신도시는 하워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워드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계획되지 않는 자연은 무질서한 도시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원주택은 개인의 결단력, 경제력, 정보력, 체력에 의해서 세워진다. 마을과 떨어진 경치 좋은 곳에 집을 지으려면 시간과 돈을 들이고 발품을 팔아야 한다. 복잡한 법과 제도의 틈새를 비집고 임야나 전답을 대지로 바꾸는 묘수를 동원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곳에서의 생활은 마을과 거리를 두고 있는 반쪽 전원생활이다. 이런 삶의 방식은 건축에 그대로 투영된다. 경치를 조망하기 위한 콘도 같은 집,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갤러리 같은 집, 국적불명의 어설픈 모양과 재료로 만든 집으로 한국의 전원이 바뀌고 있다.
전원주택 열풍은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는 마을 공동체, 도시적으로는 계획과 관리의 문제로 접근할 때가 되었다. 전원도 도시처럼 집합적 질서가 필요하다. 튀는 하나하나가 모이면 혼란스런 전체가 되지만 비슷한 하나하나가 모이면 강한 전체가 된다. 공통점을 가진 건축 형태와 자연스런 재료와 색상은 무미건조한 경관이 될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다. 질서는 양식을 만들고, 안정된 양식은 혁신의 배경이 된다.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영화는 미국 와이오밍이 배경이지만 캐나다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이 매혹적인 전원이 철저히 계획된 소도시라는 사실을 구글어스에서 감상해 보시길 권한다.
김성홍 ․ 서울시립대 교수 ․ 건축학
'Sonomad의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Changes in Urban Planning Policies and Urban Morphologies in Seoul, 1960s to 2000s (2013.9) (0) | 2013.12.11 |
---|---|
진례와 진례다반사 (2013.7.15) (0) | 2013.12.11 |
100원짜리 동전이 묻힌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2013.5.21) (0) | 2013.05.21 |
유연한 장인, 브리콜뢰르(Bricoleur)를 대망하다 (2013.4.23) (0) | 2013.04.23 |
Seoulutions: A Dutch Architect’s Meaningful Experiment (2013.4.1) (0) | 2013.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