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비 이대로는 안된다
서울건축사신문 건축논단, 2000.7.16 (제 190호)
최근 건축계에서는 건축사법시행규칙 개정, 건축교육제도 및 인증문제 등이 주요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와 형식의 문제 이면에 도사린 가장 절실한 문제는 건축설계비일 것이다. 건축사의 방패막 구실을 해왔던 보수요율이 사라진 지금 과연 설계라는 전통적 업무를 가지고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자조와 한탄이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는 보수요율을 공정거래에 반하는 일종의 카르텔로 규정하였지만 과거에도 건축사들은 오율 보다 턱없이 낮은 설계비를 받아왔다. 공공건축물의 설계비를 산정하는 기준의 구실이라도 해왔던 요율이 사라진 지금 공정한 거래체제가 되었다고 믿는 건축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건축계에서는 건축인의 생존위협을 경제적 침체에 따르는 물량감소 때문이라고 생각해왔고 경기가 회복되면 위협이 사라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침체가 위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결코 근본적인 원인은 아니다.
터무니없이 낮은 설계비와 제 살을 깎는 덤핑, 이것이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이전에 건설시장의 규모가 국민총생산량의 15%에 이르는 건설주도형 경제체제에 놓여 있었다. 이는 미국의 두 배에 이르는 규모이다. 건축설계분야 역시 순풍에 돛을 달고 항해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물량 위주의 건설산업은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설령 그 규모가 지금보다 커진다고 하더라도 해외로부터의 경쟁을 치러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건설경제구조 속에서 미국이나 일본의 건축사들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작은 파이를 나누어 먹는 점은 우리와 같지만 파이 조각 하나 하나가 우리 것보다 영양가가 높기 때문이다. 하나의 건축물 설계비로 1년을 운영할 수 있는 반면 우리는 한 달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설계비 덤핑은 외주비 삭감, 건축의 질 저하 그리고 궁극적으로 건축주나 사용자의 피해로 귀결된다. 건축사뿐만 아니라 젊은 건축도의 사기도 저하되고 건축교육환경에도 악 영향을 준다. 건축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텔레비전이나 대중매체를 통하여 건축을 화려하고 고귀한 직업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의 일로 만나면 집을 짓기 위한 서류나 도면을 챙겨주는 직업 정도로 생각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일부 지식층조차 건축행위를 여가시간의 봉사활동쯤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틀과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의사들의 폐업과 같은 집단적 행동이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에 귀기울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문제를 풀어 나가기 위한 첫발걸음은 건축계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의 파장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건축작업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인식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건축행위의 결과를 평당으로 매기는 터무니없는 관행은 이제 바뀌어져야 한다. 외국의 설계사무소와 협력하면서 그들의 지적작업의 대가를 시간으로 계산하여 지불하면서 한국의 건축사들에게는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현실은 성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결국 자신의 시간, 땀, 지적행위의 결과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최대의 피해자들로부터 나와야 하고 그 목소리는 당당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미 궤도에 오른 설계사무소는 건축계 전체를 위해, 아니 자신의 전통과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건축비를 깎는 일은 삼가야 한다. 건축계의 치부인 설계비에 대한 사회문화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현실에서 좋은 건축을 바라는 것은 고문이다. 이제 누구이든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자.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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