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도시를 말하는가?
건축문화 2000년 10월호
“강경발견”은 제주와 무주에 이은 3번째의 서울건축학교 여름 워크숍이다. 모두 지방도시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제목에서 보듯이 도시를 관찰하고 해석하려는 공통점을 지닌다. 건축가들의 도시에 대한 이러한 집단적 관심과 운동을 어떤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을까? 도시를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워크숍의 속성 때문인가? 구제금융 이후 건축계가 처한 돌파구로서 도시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인가? 아니면 오랫동안 잠복해 왔던 한국건축의 본질적인 문제가 비로소 가시화 되는 현상인가? 그리고 이러한 한국건축계의 도시건축운동은 세계적 흐름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많은 건축인은 강경발견의 과정과 결과 못지 않게 이러한 질문을 갖는다.
나는 지난 8월 강경발견 크리틱에 참여한 일주일 뒤에 헬싱키에서 열렸던 제 9회 국제도시역사학회에 참여하여 강경워크숍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번 학회는 “중심-주변-지구화, 과거와 현재, Center-Periphery-Globalization, Past and Present” 라는 주제로 열렸었다. “지구화(Globalization)”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건축과 도시영역을 넘어 언론에서 가장 남용하는 화두로 회의에 참석한 한 학자는 이 두 단어를 "buzz word”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개념은 21세기 도시현상과 대안의 핵심임에 틀림없다. 회의가 열렸던 곳은 2차 대전후 유럽 최초의 전원교외도시 타피올라(Tapiola)를 포함하는 에스포(Espoo)였다. 헬싱키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에스포는 인구로 보면 핀란드의 제 2의 도시이지만 헬싱키와는 중심과 주변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 학회의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했다. 특히 주회의장이 알바 알토가 설계한 헬싱키 공대여서 그 의미가 더 했다. 나는 지난해 제2회 두물건축포럼에서 발표했던 양평연구를 영문으로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4일 동안 150편의 논문이 발표되어 내용을 일반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몇 가지 공통된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첫째, 지구화는 근본적으로 경제적 이유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사회계층을 가르고 이는 도시공간의 분절로 이어진다. 지구화의 양상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루어지지만 결과로 나타나는 도시문제는 고스란히 국가나 지방정부의 몫으로 남는다. 둘째, 도시와 건축은 점차 자본을 소유한 개인이나 기업에 의해서 움직이며 과거와 같은 위에서 아래 (Top-down)로의 도시계획이나 설계는 점차 무력화된다. 건축 역시 점차 상업자본에 의존하게 된다. 셋째, 지구화라는 거시적 현상 아래에는 지역의 사회, 문화, 정치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미시적 현상들이 나타난다. 지구화에도 불구하고 도시와 건축을 문제를 하나의 관점이나 방법론은 점차 불가능해진다. 셋째, 현재 이러한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지속가능성은 지구화와 달리 환경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며 실행이 되기 위해서는 상업자본과의 갈등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점차 아래에서 위(bottom-up)로의 전략이 필요해 진다.
나열한 내용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사실들이다. 그러나 지구화라는 거대한 힘 속에서 도시의 작은 부분을 잃어내고 미시적 실행전략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민간의 힘에서 시작되어 공공의 힘과 닿아야 한다는 제시는 다시 들어도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다. 스웨덴의 한 학자는 극단적 고밀도시와 저밀도 전원도시 사이의 중간형태를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가 예로든 고밀도는 50ㅡ100인/ha 이었다. 전원도시의 수식어가 붙었던 일산신도시의 주거지 밀도가 522인/ha이고 서울도심의 고층아파트는 1,200인/ha을 넘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우리의 자생적 도시읽기와 그에 따르는 건축실험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느낀다. 일제가 이 땅에 처음으로 도시계획을 이식한 후 우리에게는 거시적 도시계획 (city planning)은 있었지만 미시적 도시관찰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버니즘(Urbanism)에 대한 적절한 우리말이 없는 것은 바로 건축과 도시 담론의 부재를 뜻한다. 도시적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 베네볼로, 도시로부터 자신의 건축론을 전개한 알도 로시, 크리어 그리고 최근의 렘 쿨하스에서 보듯이 유럽의 건축은 도시라는 물리적 이론적 토대 위에 서 있다. 1990내 후반부터 시작된 건축계의 도시발견의 시도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근대 한국 건축가들이 철저하게 외면했거나 무지로 묻혀두었던 문제를 이제 꺼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시대에 건축가의 도시읽기는 꼬르뷰지에나 라이트가 꿈꾸었던 巨大敍事와는 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3회를 맞이한 서울건축학교 여름학교에서 기대한 것은 참여한 학생들의 체험과 과정 못지 않게 튜터들의 가치, 관점의 선언이었다. 1주간의 작업기간은 물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도시의 무엇을, 어떻게, 왜 보아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시간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창조자의 입장에서 연구자의 입장으로 먼저 돌아가는 것, 그것이 강경발견의 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각 스튜디오는 대부분은 관찰과 분석에 초점을 두었지만 구체적 건축안까지 실현한 경우도 있었다. 대상지역의 선정도 면, 선, 점등의 다양하였다. 그러나 이 도시가 가진 풍부한 역사와 이야기 거리에 비해서 튜터들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자기 목소리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침체된 강경을 살리고, 식민시대건축을 현재의 삶의 부분으로 바꾸고, 새로운 건축을 계획하는 그 전제가 무엇인지를, 특히 건축과 도시공간, 일상의 삶, 상업자본, 공공성에 관한 튜터들의 관점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점은 앞으로 지면을 통해서 워크숍에 참가하지 못했던 독자들을 위해 정리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그러나 더운 밤을 지새며 튜터와 학생들이 토론하고 공유하였던 부분은 발표, 전시회에 드러난 것 보다 깊고 풍부하리라 생각한다. 워크숍에 참가한 학생들의 열의와 팀워크 그리고 이들과 밤을 지새는 튜터들의 모습은 내게는 부러운 광경이었다. 강경발견의 최대의 수확은 바로 이런 각자의 마음속에 각인된 체험이 아닌가한다.
강경발견은 이제 도시를 탐구하는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점에서 서울건축학교에 몇 가지를 기대하고 제안해 본다. 첫째, 자본, 기술, 의지 모든 면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의 중소도시를 탐구하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하고 이는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 기록은 담론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선결조건이다. 둘째, 도시탐구의 목적, 과정, 결과는 건축의 영역을 넘어 공공기관, 시민단체, 언론, 기업에 알려져야 한다. 지방화 시대에 아래에서 위로의 전략의 중요성은 커진다. 이제 건축가는 일을 받아서 하는 수동적 입장에서 건축과 도시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행동인의 역할로 나아가야 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라는 구호는 이제 “Think locally, act globally.”로 바뀌고 있다. 셋째, 중소도시의 문제는 더 이상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담론이 변방의 담론으로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문화, 인문지리적 조건을 공유하고 있는 극동 아시아라는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문제를 접근하고 우리와 사회, 문화, 인문지리적 조건을 공유하고 있는 중국, 대만, 일본과의 교류를 시작했으면 한다. 이점에서 비록 개인적 자격이지만 한국의 작은 도시에 관심을 갖고 최욱씨와 스튜디오를 이끌었던 히로시 인나미씨는 강경발견의 무게를 더해 주었다. 그리고 시간과 경비까지 스스로 부담하면서 서울건축학교 튜터들이 일구어 낸 작은 수확은 분명 더 큰 담론으로 향한 시작임에 틀림없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건축문화 2000년 10월호
“강경발견”은 제주와 무주에 이은 3번째의 서울건축학교 여름 워크숍이다. 모두 지방도시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제목에서 보듯이 도시를 관찰하고 해석하려는 공통점을 지닌다. 건축가들의 도시에 대한 이러한 집단적 관심과 운동을 어떤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을까? 도시를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워크숍의 속성 때문인가? 구제금융 이후 건축계가 처한 돌파구로서 도시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인가? 아니면 오랫동안 잠복해 왔던 한국건축의 본질적인 문제가 비로소 가시화 되는 현상인가? 그리고 이러한 한국건축계의 도시건축운동은 세계적 흐름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많은 건축인은 강경발견의 과정과 결과 못지 않게 이러한 질문을 갖는다.
나는 지난 8월 강경발견 크리틱에 참여한 일주일 뒤에 헬싱키에서 열렸던 제 9회 국제도시역사학회에 참여하여 강경워크숍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번 학회는 “중심-주변-지구화, 과거와 현재, Center-Periphery-Globalization, Past and Present” 라는 주제로 열렸었다. “지구화(Globalization)”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건축과 도시영역을 넘어 언론에서 가장 남용하는 화두로 회의에 참석한 한 학자는 이 두 단어를 "buzz word”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개념은 21세기 도시현상과 대안의 핵심임에 틀림없다. 회의가 열렸던 곳은 2차 대전후 유럽 최초의 전원교외도시 타피올라(Tapiola)를 포함하는 에스포(Espoo)였다. 헬싱키와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에스포는 인구로 보면 핀란드의 제 2의 도시이지만 헬싱키와는 중심과 주변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 학회의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했다. 특히 주회의장이 알바 알토가 설계한 헬싱키 공대여서 그 의미가 더 했다. 나는 지난해 제2회 두물건축포럼에서 발표했던 양평연구를 영문으로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4일 동안 150편의 논문이 발표되어 내용을 일반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몇 가지 공통된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첫째, 지구화는 근본적으로 경제적 이유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사회계층을 가르고 이는 도시공간의 분절로 이어진다. 지구화의 양상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이루어지지만 결과로 나타나는 도시문제는 고스란히 국가나 지방정부의 몫으로 남는다. 둘째, 도시와 건축은 점차 자본을 소유한 개인이나 기업에 의해서 움직이며 과거와 같은 위에서 아래 (Top-down)로의 도시계획이나 설계는 점차 무력화된다. 건축 역시 점차 상업자본에 의존하게 된다. 셋째, 지구화라는 거시적 현상 아래에는 지역의 사회, 문화, 정치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미시적 현상들이 나타난다. 지구화에도 불구하고 도시와 건축을 문제를 하나의 관점이나 방법론은 점차 불가능해진다. 셋째, 현재 이러한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지속가능성은 지구화와 달리 환경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며 실행이 되기 위해서는 상업자본과의 갈등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점차 아래에서 위(bottom-up)로의 전략이 필요해 진다.
나열한 내용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사실들이다. 그러나 지구화라는 거대한 힘 속에서 도시의 작은 부분을 잃어내고 미시적 실행전략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민간의 힘에서 시작되어 공공의 힘과 닿아야 한다는 제시는 다시 들어도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다. 스웨덴의 한 학자는 극단적 고밀도시와 저밀도 전원도시 사이의 중간형태를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가 예로든 고밀도는 50ㅡ100인/ha 이었다. 전원도시의 수식어가 붙었던 일산신도시의 주거지 밀도가 522인/ha이고 서울도심의 고층아파트는 1,200인/ha을 넘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우리의 자생적 도시읽기와 그에 따르는 건축실험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느낀다. 일제가 이 땅에 처음으로 도시계획을 이식한 후 우리에게는 거시적 도시계획 (city planning)은 있었지만 미시적 도시관찰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버니즘(Urbanism)에 대한 적절한 우리말이 없는 것은 바로 건축과 도시 담론의 부재를 뜻한다. 도시적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한 베네볼로, 도시로부터 자신의 건축론을 전개한 알도 로시, 크리어 그리고 최근의 렘 쿨하스에서 보듯이 유럽의 건축은 도시라는 물리적 이론적 토대 위에 서 있다. 1990내 후반부터 시작된 건축계의 도시발견의 시도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근대 한국 건축가들이 철저하게 외면했거나 무지로 묻혀두었던 문제를 이제 꺼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시대에 건축가의 도시읽기는 꼬르뷰지에나 라이트가 꿈꾸었던 巨大敍事와는 달라야 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3회를 맞이한 서울건축학교 여름학교에서 기대한 것은 참여한 학생들의 체험과 과정 못지 않게 튜터들의 가치, 관점의 선언이었다. 1주간의 작업기간은 물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도시의 무엇을, 어떻게, 왜 보아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시간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창조자의 입장에서 연구자의 입장으로 먼저 돌아가는 것, 그것이 강경발견의 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각 스튜디오는 대부분은 관찰과 분석에 초점을 두었지만 구체적 건축안까지 실현한 경우도 있었다. 대상지역의 선정도 면, 선, 점등의 다양하였다. 그러나 이 도시가 가진 풍부한 역사와 이야기 거리에 비해서 튜터들의 도시와 건축에 대한 자기 목소리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침체된 강경을 살리고, 식민시대건축을 현재의 삶의 부분으로 바꾸고, 새로운 건축을 계획하는 그 전제가 무엇인지를, 특히 건축과 도시공간, 일상의 삶, 상업자본, 공공성에 관한 튜터들의 관점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점은 앞으로 지면을 통해서 워크숍에 참가하지 못했던 독자들을 위해 정리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그러나 더운 밤을 지새며 튜터와 학생들이 토론하고 공유하였던 부분은 발표, 전시회에 드러난 것 보다 깊고 풍부하리라 생각한다. 워크숍에 참가한 학생들의 열의와 팀워크 그리고 이들과 밤을 지새는 튜터들의 모습은 내게는 부러운 광경이었다. 강경발견의 최대의 수확은 바로 이런 각자의 마음속에 각인된 체험이 아닌가한다.
강경발견은 이제 도시를 탐구하는 하나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점에서 서울건축학교에 몇 가지를 기대하고 제안해 본다. 첫째, 자본, 기술, 의지 모든 면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의 중소도시를 탐구하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하고 이는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 기록은 담론의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선결조건이다. 둘째, 도시탐구의 목적, 과정, 결과는 건축의 영역을 넘어 공공기관, 시민단체, 언론, 기업에 알려져야 한다. 지방화 시대에 아래에서 위로의 전략의 중요성은 커진다. 이제 건축가는 일을 받아서 하는 수동적 입장에서 건축과 도시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행동인의 역할로 나아가야 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라는 구호는 이제 “Think locally, act globally.”로 바뀌고 있다. 셋째, 중소도시의 문제는 더 이상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담론이 변방의 담론으로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 문화, 인문지리적 조건을 공유하고 있는 극동 아시아라는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문제를 접근하고 우리와 사회, 문화, 인문지리적 조건을 공유하고 있는 중국, 대만, 일본과의 교류를 시작했으면 한다. 이점에서 비록 개인적 자격이지만 한국의 작은 도시에 관심을 갖고 최욱씨와 스튜디오를 이끌었던 히로시 인나미씨는 강경발견의 무게를 더해 주었다. 그리고 시간과 경비까지 스스로 부담하면서 서울건축학교 튜터들이 일구어 낸 작은 수확은 분명 더 큰 담론으로 향한 시작임에 틀림없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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