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偉大한 길
Great Asian Streets, 싱가폴 국립대학교 건축대학 심포지엄
建築: 大韓建築學會誌, 2001.2 Vol.45, No.2, pp.62-65.
길은 무엇인가? 건축이 도시로 드러나는 곳, 도시에서 건축으로 들어가는 경계가 길이다. 그러나 길은 결코 건축을 채우고 남은 도시의 빈 공간이 아니다. 길은 일상이 펼쳐지는 사회적 장이다. 일터로 나가기 위해 우리는 길은 거쳐야만 한다. 그 곳에서 우리는 같은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과 만난다. 대화를 비록 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공유하는 사회, 문화적 코드를 나누고 습득한다. 길은 상업공간이다. 고대이래 길의 발달은 상업의 발달과 역사를 같이 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길이 뻗어나가는 곳에는 의례 상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길은 정치의 공간이기도하다. 조선시대이래 서울의 등뼈역할을 해왔던 종로는 왕이 백성의 삶을 체험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왕이 승하했을 때 죽음의 예식을 치르기 위해 거쳐가는 곳도 길이었다. 지금도 정치인이 민의를 파악한다고 나서는 공간이 길이며 분노와 항거와 기쁨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분출되는 곳도 길이다. 도시의 검은 힘과 주먹의 각축장도 길이다. 영토싸움은 길을 경계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길은 절제되고 안정된 도시공간이 아니라 항상 갈등이 잠복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잠복의 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도시는 건조한 도시이다. 사람의 장소를 자동차가 빼앗은 도시에서는 길은 한 지점에서 한 지점을 연결하는 통로로 격하된다. 길은 교통공학의 연구대상으로 인식되고 인문학적 내용은 탈색된다. 도시의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도시의 삶이 척박해진다는 것은 곧 길의 쇠퇴를 의미한다.
지난 1월 18일 싱가폴 국립대학에서는 색다른 국제학술회의, “아시아의 위대한 길 심포지엄 (Great Asian Streets Symposium)”이 열렸다. 일반적으로 국제 학술회는 100여명 이상이 연구논문을 발표하기 때문에 여러 세션이 동시에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는 세션과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든 세션에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다. 공학분야의 경우는 1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그야말로 매머드 학술회의가 열리기도 한다. 이 때 논문 발표를 하지 않고 전시만 하는 이른바 포스터 세션이 포함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국제학술회의는 어떤 주제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의 場이라기 보다는 국제적 학술동향을 파악하고 사교를 하는 장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번 싱가폴의 학회는 우선 주제를 ‘아시아의 길’로 국한하여 학회의 주제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점에서 기존의 학술회의와 차이가 있었다. 또한 논문발표자의 수를 10여명 내외로 한정하고 모든 발표자가 이틀동안의 회의에 모두 참가하여 토론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주제는 비록 아시아의 길이었지만 참가자와 주최자의 국적으로 보면 싱가폴,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홍콩, 프랑스, 호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1명 이상이 참가하여 탈 아시아적 성격을 띄었다. 주최도 국립싱가폴 대학과 호주의 멜본 대학이 공동으로 하였다.
길에 대한 연구 중 건축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60년대 초반 케빈 린치에 의한 도시의 연구일 것이다. 린치는 보스턴을 비롯한 도시를 관찰하여 어떤 요소가 도시를 우리의 심상에 남게 하는지를 규명하려고 했다. 길, 경계, 구역, 결절점, 랜드마크의 다섯 요소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그의 유명한 도시 이미지론은 도시연구에 하나의 전형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린치의 연구는 도시의 시각적 측면에 치우쳐 사회문화적 측면을 간과했다. 많은 건축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도시의 랜드마크로 주장하게 되는 것은 린치의 이미지론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후 북미의 학계에서는 도시공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시도를 하게된다. 1978년 MIT 출판사에서 출간한 “길에서(On Streets)”는 도시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연구의 전형을 보여준다. 1994년 버클리대 출판사가 출간한 “길(Streets)” 역시 좋은 예이다. 그러나 건축과 도시의 영역이 소원했던 우리학계에서는 길은 도시에도 건축에도 속할 수 없는 방치된 공간이었다. 길은 건축과 도시를 연결하는 필수적 매개체이다. 길을 말하지 않고 건축가는 결코 도시를 논할 수 없고 도시계획가는 길을 말하지 않고 건축을 이해할 수 없다.
학회를 주최했던 싱가폴 국립대학 건축학과장 밀턴 탠교수는 매우 인상적인 개회인사를 했다. 학회가 열렸던 그 날 아침 싱가폴의 조간신문에는 캘리포니아주가 강제정전을 시행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진보적이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 우리나라 1960년대에 있었을 법한 정전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매스컴의 매력을 끌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도시가 지난 세기와 매우 다를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최근 탈도시와 전원주택에 대한 관심과 환경친화건축에 대한 학계의 동향은 도시에서 자연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도시화의 통계를 살펴보면 세계는 오히려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현재 지구상의 전 인구의 절반이 도시지역에 살고있다. 그러나 25년 뒤에는 전세계 인구의 2/3가 도시지역을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1950년대 백만은 넘는 도시는 단 하나 뿐이었다. 현재 백만은 넘는 도시는 46개에 이르며 서울처럼 천만이 넘는 메가폴리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도시화의 현상이 동일한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빈곤으로 허덕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도시화의 속도는 유럽이나 북미보다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도시화로 인한 도시구조와 건축의 변화와 압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인구의 절반아 수도권에 밀집한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과밀도시에서 길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학회 첫날 자카르타 건축도시환경 연구소의 프라티보박사는 수하르토의 퇴진과 하비비의 등장하는 과정에서 자카르타의 길이 겪는 정치적 과정을 발표하였다. 자카르타는 인구 1500만 명이 넘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중의 하나이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길을 점유하면서 길은 공공성을 상실하고 점차 사유화되어가고 있다. 환경측면에서도 자카르타의 길은 공해로 신음하고 있다. 1998년의 데모는 공간으로서의 길의 역할을 다시 인식하게 했지만 또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의 공간임을 매스컴을 통해 확인한 계기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대학교의 오거스티아난다 교수는 발리의 우부드라는 작은 전통마을이 1930년 이후 관광사업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연구하였다. 현재 발리의 인구 40% 이상이 생계를 관광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택은 토속상품을 파는 상점으로 개조되고 길의 성격은 종교적 우주론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관광으로 인한 도시공간의 변색은 제3세계의 도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태리의 도시 전역은 북쪽에서 밀려 내려오는 젊은 관광객으로 도시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길=관광상품화의 등식의 폐해는 서울의 종로나 인사동길에서도 겪는 문제이다. 홍콩中文大學의 푸렝 교수는 1930년대 싱가폴의 중국인 상가거리인 해밀턴路를 가족사를 통해 연구하여 도시민의 집합적 기억을 찾아내려고 시도하였다. 푸렝교수의 연구대상인 상점주택(shophouse)은 상점과 주택을 수직으로 결합한 유형으로 중국의 전통적 상점건축과 영국의 상점건축이 복합된 건축유형이다. 철근콘크리트 2층 구조의 상점주택은 1890년 이후 영국의 기술자들에 의해 싱가폴에 지어진 건축유형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식은 싱가폴뿐만 아니라 영국식민지를 겪었던 아시아의 여러나라에서 발견되는 유형임을 알게되었다. 우리나라의 市廛상가와 비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현재 싱가폴의 차이나타운의 상점주택은 정부차원에서 복원, 보존되고 있다. 멜본 대학의 플래니건 교수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기술에 중점을 두었던 앞의 연구와 달리 길을 도시설계 입장에서 계획할 수 있는가 하는 논의했다. 좋은 길은 항상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목적과 용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 길의 사회문화적 기능을 옹호하는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위대한 미국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명저를 썼던 제인 제이콥스나 “작은 도시공간에서의 사회적 삶”을 썼던 윌리암 화이트의 이론이 대표적이다. 플래니건 교수의 연구는 이러한 복합가로의 가설을 바탕으로 어떻게 상인의 구성을 계획적 측면에서 조절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성공적 쇼핑몰내의 상점의 종별 비율에 착안하여 상업가로에 일종의 지역지구제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플래니건 교수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로스엔젤리스의 산타모니카의 상업가로는 이러한 개념을 도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학회 이튿날 멜본대학의 라도빅 교수는 호주학자로서 북경의 호동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자금성 북쪽에 주택가 루구시앙 지역은 호동의 형태가 잘 보존된 지역이었으나 재개발로 전통환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라도빅 교수는 지역적 전통적 지구화를 접목하는 새로운 개발과 보존의 접근방법을 제시하였다. 홍콩대의 후이 교수는 홍콩의 대표적 가로인 퀸스路의 시대적 변화를 연구하였다. 퀸스路는 1840년 경 홍콩이 중국의 식민도시가 되면서 생긴 길로서 홍콩의 정치적 상징공간이자 공공공간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홍콩이 국제적 도시로 발돋움하면서 퀸스路의 성격도 변해왔다. 후이교수의 연구는 식민시대로부터 탈식민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 도시의 대표적 가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하여 도시역사의 전체적으로 조명한 것이었다. 싱가폴 국립대학의 찬교수와 헹교수는 싱가폴의 대표적 쇼핑가로인 오챠드路와 상점주택을 쇼핑몰로 개조한 부기스路에 대하여 각각 발표하였다. 오챠드路는 상점주택이 늘어섰던 도심북쪽의 한적한 길이었으나 1960년 이후 대형 쇼핑몰이 선형으로 늘어선 관광상업가로 변모한 곳이다. 찬교수는 대형 건축물의 개발로 보행자로가 단절된 점을 지적하고 도시설계의 지침을 마련하여 발표하였다. 부기스路는 19세기말부터 紅燈街로 알려져 왔으나 1930년대 이후 매춘이 불법화되면서 상업지역으로 변모한 곳이다. 1980년대 이 지역의 전통 상점주택을 덮어 내부몰로 개조하여 현재 싱가폴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거리가 되었다. 헹교수는 부기스路의 역사, 개발과정 그리고 장단점을 논하였다. 홍콩 중문대학의 프랑스 국적의 뽀르떼페 박사는 역사, 사회, 문화적 측면보다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홍콩의 길들을 관찰하였다. 경사가 심한 홍콩에 바다에 인접한 지역과 높은 지역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새로운 길의 대안으로 보았다. 뽀르떼페 교수의 관찰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에 대한 관찰과 유사하여 유럽인의 시각에서 동양의 도시를 관찰했다는 점이 특이했다.
나는 첫날 “귀족사회에서 상업사회로: 서울의 종로 (From the Aristocratic to the Commercial: Chongno Street in Seoul)”을 발표하였다. 조선시대의 서울은 왕권과 사대부가 지배하는 정치도시였다. 권력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도시에서 모든 물리적 요소는 어떤 형태로는 권력이 위치하는 중심공간과 관계를 맺는다. 서울의 중심을 동서로 관통하는 종로는 상업가로로 건설되었지만 유럽의 상업가로나 자본주의체제에서 계획된 상업가로와는 도시구조 및 조직이 다르다는 것이 연구의 가설이었다. 나의 연구는 한양천도와 함께 건설된 조선 초의 市廛이 있었던 종로 2가 지역을 14세기부터 현재까지 변화되는 모습을 기술하는 것이었다. 종로는 空間依存的 건축과 超空間的 건축이 새로운 사회, 경제, 문화환경 속에서 전환되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종로의 도시구조는 ‘線-面’의 이중성에서 출발한다. 조선시대 상류주택은 길과의 관계보다는 권력의 중심인 궁궐에 근접하면서도 間이라는 단위요소와 이를 결합하여 寨를 이루는 독자적 구성원리를 중시했다. 반면 이를 감싸기 위해서 시전행랑은 선형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집이 길에 의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에 의해 길이 형성되는 ‘先住宅 後街路’의 과정이었다. 당의 장안, 일본의 교토, 중세유럽도시의 건축이 분할된 面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면 조선시대의 주택은 단위와 조합이라는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즉 전자의 도시와 건축은 ‘나누는’ 문제, ‘분할’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면 조선시대 서울의 주택과 상업건축은 ‘더해 가는’ 문제, ‘확장’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산업화, 도시화, 상업자본주의 앞에서 이러한 ‘線-面의 二次元的 二重性’은 세 가지의 압력을 견뎌낼 수 없게 된다. 첫째, 권력공간과의 근접성에 의존했던 ‘超空間的 面’은 주택지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고 상업공간 중에서도 超空間的 성향을 지닌 2차 상업공간으로 전락한다. 둘째, ‘街路依存的-線’은 상업공간의 절대적 부족으로 수직화의 압력을 받는다. 유럽과 북미의 도심상업건축이 1층-상업공간, 상층부-주거공간으로 이분된 반면 종로변 상업건축은 위상학적 깊이에 따라 空間依存的 상업공간과 超空間的 상업공간이 수직방향으로 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밀도 높은 상업가로경관과 배면이 이중성을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셋째, 貫流空間과 場所로서의 양면성을 지녔던 종로는 자동차에 의해 점유되면서 장소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관류공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세 가지 압력과 변화의 결과 종로에 모자이크의 도시유형과 상업건축유형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연구의 핵심이었다.
학회가 끝나고 주최측과 참가자 모두는 이러한 이 학회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발표한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싱가폴 국립대학 건축대학이 현재 출간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건축지 (Journal of Southeast Asian Architecture)에 게재할 것도 결정하였다. 이 저널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학술지로 이 지역의 학자들이 논문을 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이번 여행은 학회 자체뿐만 아니라 싱가폴이 지닌 학술적 위상을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 싱가폴은 중국, 영국, 말레이, 그리고 인도문명이 복합된 아시아의 문화용광로였다. 특히 중국문화와 영국문화의 기묘한 공존은 싱가폴을 국제적 요충지로 만드는 동인이다.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 아닌가 한다. 홍콩이 유사한 상황이지만 중국에 반환된 이후 중립적 위치의 매력은 희석되었다. 반면 싱가폴은 중국, 영국, 그리고 호주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싱가폴, 홍콩, 호주의 학술적 교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강했다. 한국, 중국, 일본이 이웃을 하고 있지만 학술교류가 형식적인 반면 싱가폴의 네트워크는 실질적으로 인적 자원이 서로 교류되고 있었다. 이점에서 싱가폴은 서양의 문화가 중국으로 들어오는 출입구라 할 만하다.
나는 싱가폴학회에 가기 몇 달전 렘 쿨하스의 “S, M, L, XL” 중 “Singapore Songline”을 읽은 바 있다. 이 글은 싱가폴을 매우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렘쿨하스는 기존의 전통문화가 없는 곳에 잡문화를 이식시킨 유교적 포스트모던 도시의 전형이라고 보고 있다. 도시전역을 쇼핑몰로 만들거나 조경으로 뒤덮는 것은 상업자본주의의 저속한 버내큘러 문화라고 말한다. 싱가폴은 한편 거대 중국의 실험장이다. 실무경력 2~3년차의 건축가가 중국내륙의 초고층 건물을 설계하는 곳이 싱가폴이다. 미래 중국은 새로운 싱가폴이 될 것이라는 렘 쿨하스의 예견이다. 그의 지적은 예리한 데가 있다. 싱가폴은 나에게도 국가나 도시라기보다는 잘 경영되는 거대한 회사처럼 느껴졌다. 입국증서 뒤에는 “마약거래시 사형”이라는 섬뜩한 문구가 적혀있고 지하철 안에는 “음식 500달러, 흡연 1,000달러 벌금”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자동차를 구입하기 전 자동차 값보다도 비싼 운행허가증을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곳이 싱가폴이다. 몇 년전 미국 관광객 청년이 범법을 하여 곤장을 맞은 사례는 유명하다. 그러나 렘 쿨하스의 냉소적 비판에는 상업자본주의에 편승하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다. 그에게 글은 건축과 함께 일종의 마케팅의 수단이다. 유럽과 비교할 수 없는 고밀도의 다문화 사회에서 생존하는 싱가폴의 모습이 유럽 우월주의에 의해 구타당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렘 쿨하스의 지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싱가폴은 서구를 향한 아시아의 첨병임은 틀림없다. 건축학계 역시 그 첨병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번 심포지엄에서 얻은 최대의 수확이다. 렘쿨하스는 글의 말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Singapore mantra: don't forget to confirm your return flight.” 이 마지막 문구는 한 네델란드 건축가의 동양도시에 대한 냉소적 비판이라기보다는 유혹의 呪文으로 읽혀진다.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Great Asian Streets, 싱가폴 국립대학교 건축대학 심포지엄
建築: 大韓建築學會誌, 2001.2 Vol.45, No.2, pp.62-65.
길은 무엇인가? 건축이 도시로 드러나는 곳, 도시에서 건축으로 들어가는 경계가 길이다. 그러나 길은 결코 건축을 채우고 남은 도시의 빈 공간이 아니다. 길은 일상이 펼쳐지는 사회적 장이다. 일터로 나가기 위해 우리는 길은 거쳐야만 한다. 그 곳에서 우리는 같은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과 만난다. 대화를 비록 하지 않더라도 서로가 공유하는 사회, 문화적 코드를 나누고 습득한다. 길은 상업공간이다. 고대이래 길의 발달은 상업의 발달과 역사를 같이 했다. 동서를 막론하고 길이 뻗어나가는 곳에는 의례 상인들이 그 뒤를 따랐다. 길은 정치의 공간이기도하다. 조선시대이래 서울의 등뼈역할을 해왔던 종로는 왕이 백성의 삶을 체험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왕이 승하했을 때 죽음의 예식을 치르기 위해 거쳐가는 곳도 길이었다. 지금도 정치인이 민의를 파악한다고 나서는 공간이 길이며 분노와 항거와 기쁨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분출되는 곳도 길이다. 도시의 검은 힘과 주먹의 각축장도 길이다. 영토싸움은 길을 경계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길은 절제되고 안정된 도시공간이 아니라 항상 갈등이 잠복하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잠복의 공간을 가지지 못하는 도시는 건조한 도시이다. 사람의 장소를 자동차가 빼앗은 도시에서는 길은 한 지점에서 한 지점을 연결하는 통로로 격하된다. 길은 교통공학의 연구대상으로 인식되고 인문학적 내용은 탈색된다. 도시의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도시의 삶이 척박해진다는 것은 곧 길의 쇠퇴를 의미한다.
지난 1월 18일 싱가폴 국립대학에서는 색다른 국제학술회의, “아시아의 위대한 길 심포지엄 (Great Asian Streets Symposium)”이 열렸다. 일반적으로 국제 학술회는 100여명 이상이 연구논문을 발표하기 때문에 여러 세션이 동시에 열리는 것이 보통이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는 세션과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든 세션에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다. 공학분야의 경우는 1000명 이상이 참가하는 그야말로 매머드 학술회의가 열리기도 한다. 이 때 논문 발표를 하지 않고 전시만 하는 이른바 포스터 세션이 포함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국제학술회의는 어떤 주제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의 場이라기 보다는 국제적 학술동향을 파악하고 사교를 하는 장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번 싱가폴의 학회는 우선 주제를 ‘아시아의 길’로 국한하여 학회의 주제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점에서 기존의 학술회의와 차이가 있었다. 또한 논문발표자의 수를 10여명 내외로 한정하고 모든 발표자가 이틀동안의 회의에 모두 참가하여 토론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주제는 비록 아시아의 길이었지만 참가자와 주최자의 국적으로 보면 싱가폴,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홍콩, 프랑스, 호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1명 이상이 참가하여 탈 아시아적 성격을 띄었다. 주최도 국립싱가폴 대학과 호주의 멜본 대학이 공동으로 하였다.
길에 대한 연구 중 건축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1960년대 초반 케빈 린치에 의한 도시의 연구일 것이다. 린치는 보스턴을 비롯한 도시를 관찰하여 어떤 요소가 도시를 우리의 심상에 남게 하는지를 규명하려고 했다. 길, 경계, 구역, 결절점, 랜드마크의 다섯 요소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그의 유명한 도시 이미지론은 도시연구에 하나의 전형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린치의 연구는 도시의 시각적 측면에 치우쳐 사회문화적 측면을 간과했다. 많은 건축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도시의 랜드마크로 주장하게 되는 것은 린치의 이미지론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후 북미의 학계에서는 도시공간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시도를 하게된다. 1978년 MIT 출판사에서 출간한 “길에서(On Streets)”는 도시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연구의 전형을 보여준다. 1994년 버클리대 출판사가 출간한 “길(Streets)” 역시 좋은 예이다. 그러나 건축과 도시의 영역이 소원했던 우리학계에서는 길은 도시에도 건축에도 속할 수 없는 방치된 공간이었다. 길은 건축과 도시를 연결하는 필수적 매개체이다. 길을 말하지 않고 건축가는 결코 도시를 논할 수 없고 도시계획가는 길을 말하지 않고 건축을 이해할 수 없다.
학회를 주최했던 싱가폴 국립대학 건축학과장 밀턴 탠교수는 매우 인상적인 개회인사를 했다. 학회가 열렸던 그 날 아침 싱가폴의 조간신문에는 캘리포니아주가 강제정전을 시행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진보적이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 우리나라 1960년대에 있었을 법한 정전조치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매스컴의 매력을 끌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도시가 지난 세기와 매우 다를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최근 탈도시와 전원주택에 대한 관심과 환경친화건축에 대한 학계의 동향은 도시에서 자연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도시화의 통계를 살펴보면 세계는 오히려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현재 지구상의 전 인구의 절반이 도시지역에 살고있다. 그러나 25년 뒤에는 전세계 인구의 2/3가 도시지역을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1950년대 백만은 넘는 도시는 단 하나 뿐이었다. 현재 백만은 넘는 도시는 46개에 이르며 서울처럼 천만이 넘는 메가폴리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도시화의 현상이 동일한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빈곤으로 허덕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도시화의 속도는 유럽이나 북미보다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 지역에서 도시화로 인한 도시구조와 건축의 변화와 압력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인구의 절반아 수도권에 밀집한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과밀도시에서 길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학회 첫날 자카르타 건축도시환경 연구소의 프라티보박사는 수하르토의 퇴진과 하비비의 등장하는 과정에서 자카르타의 길이 겪는 정치적 과정을 발표하였다. 자카르타는 인구 1500만 명이 넘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중의 하나이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자동차가 길을 점유하면서 길은 공공성을 상실하고 점차 사유화되어가고 있다. 환경측면에서도 자카르타의 길은 공해로 신음하고 있다. 1998년의 데모는 공간으로서의 길의 역할을 다시 인식하게 했지만 또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폭력의 공간임을 매스컴을 통해 확인한 계기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대학교의 오거스티아난다 교수는 발리의 우부드라는 작은 전통마을이 1930년 이후 관광사업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연구하였다. 현재 발리의 인구 40% 이상이 생계를 관광에 의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택은 토속상품을 파는 상점으로 개조되고 길의 성격은 종교적 우주론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관광으로 인한 도시공간의 변색은 제3세계의 도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태리의 도시 전역은 북쪽에서 밀려 내려오는 젊은 관광객으로 도시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길=관광상품화의 등식의 폐해는 서울의 종로나 인사동길에서도 겪는 문제이다. 홍콩中文大學의 푸렝 교수는 1930년대 싱가폴의 중국인 상가거리인 해밀턴路를 가족사를 통해 연구하여 도시민의 집합적 기억을 찾아내려고 시도하였다. 푸렝교수의 연구대상인 상점주택(shophouse)은 상점과 주택을 수직으로 결합한 유형으로 중국의 전통적 상점건축과 영국의 상점건축이 복합된 건축유형이다. 철근콘크리트 2층 구조의 상점주택은 1890년 이후 영국의 기술자들에 의해 싱가폴에 지어진 건축유형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식은 싱가폴뿐만 아니라 영국식민지를 겪었던 아시아의 여러나라에서 발견되는 유형임을 알게되었다. 우리나라의 市廛상가와 비교할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현재 싱가폴의 차이나타운의 상점주택은 정부차원에서 복원, 보존되고 있다. 멜본 대학의 플래니건 교수는 과거와 현재에 대한 기술에 중점을 두었던 앞의 연구와 달리 길을 도시설계 입장에서 계획할 수 있는가 하는 논의했다. 좋은 길은 항상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목적과 용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 길의 사회문화적 기능을 옹호하는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위대한 미국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명저를 썼던 제인 제이콥스나 “작은 도시공간에서의 사회적 삶”을 썼던 윌리암 화이트의 이론이 대표적이다. 플래니건 교수의 연구는 이러한 복합가로의 가설을 바탕으로 어떻게 상인의 구성을 계획적 측면에서 조절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성공적 쇼핑몰내의 상점의 종별 비율에 착안하여 상업가로에 일종의 지역지구제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플래니건 교수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로스엔젤리스의 산타모니카의 상업가로는 이러한 개념을 도입했다고 밝히고 있다.
학회 이튿날 멜본대학의 라도빅 교수는 호주학자로서 북경의 호동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자금성 북쪽에 주택가 루구시앙 지역은 호동의 형태가 잘 보존된 지역이었으나 재개발로 전통환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라도빅 교수는 지역적 전통적 지구화를 접목하는 새로운 개발과 보존의 접근방법을 제시하였다. 홍콩대의 후이 교수는 홍콩의 대표적 가로인 퀸스路의 시대적 변화를 연구하였다. 퀸스路는 1840년 경 홍콩이 중국의 식민도시가 되면서 생긴 길로서 홍콩의 정치적 상징공간이자 공공공간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홍콩이 국제적 도시로 발돋움하면서 퀸스路의 성격도 변해왔다. 후이교수의 연구는 식민시대로부터 탈식민시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 도시의 대표적 가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하여 도시역사의 전체적으로 조명한 것이었다. 싱가폴 국립대학의 찬교수와 헹교수는 싱가폴의 대표적 쇼핑가로인 오챠드路와 상점주택을 쇼핑몰로 개조한 부기스路에 대하여 각각 발표하였다. 오챠드路는 상점주택이 늘어섰던 도심북쪽의 한적한 길이었으나 1960년 이후 대형 쇼핑몰이 선형으로 늘어선 관광상업가로 변모한 곳이다. 찬교수는 대형 건축물의 개발로 보행자로가 단절된 점을 지적하고 도시설계의 지침을 마련하여 발표하였다. 부기스路는 19세기말부터 紅燈街로 알려져 왔으나 1930년대 이후 매춘이 불법화되면서 상업지역으로 변모한 곳이다. 1980년대 이 지역의 전통 상점주택을 덮어 내부몰로 개조하여 현재 싱가폴에서 가장 유명한 쇼핑거리가 되었다. 헹교수는 부기스路의 역사, 개발과정 그리고 장단점을 논하였다. 홍콩 중문대학의 프랑스 국적의 뽀르떼페 박사는 역사, 사회, 문화적 측면보다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홍콩의 길들을 관찰하였다. 경사가 심한 홍콩에 바다에 인접한 지역과 높은 지역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를 새로운 길의 대안으로 보았다. 뽀르떼페 교수의 관찰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에 대한 관찰과 유사하여 유럽인의 시각에서 동양의 도시를 관찰했다는 점이 특이했다.
나는 첫날 “귀족사회에서 상업사회로: 서울의 종로 (From the Aristocratic to the Commercial: Chongno Street in Seoul)”을 발표하였다. 조선시대의 서울은 왕권과 사대부가 지배하는 정치도시였다. 권력이 한 곳으로 집중되는 도시에서 모든 물리적 요소는 어떤 형태로는 권력이 위치하는 중심공간과 관계를 맺는다. 서울의 중심을 동서로 관통하는 종로는 상업가로로 건설되었지만 유럽의 상업가로나 자본주의체제에서 계획된 상업가로와는 도시구조 및 조직이 다르다는 것이 연구의 가설이었다. 나의 연구는 한양천도와 함께 건설된 조선 초의 市廛이 있었던 종로 2가 지역을 14세기부터 현재까지 변화되는 모습을 기술하는 것이었다. 종로는 空間依存的 건축과 超空間的 건축이 새로운 사회, 경제, 문화환경 속에서 전환되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종로의 도시구조는 ‘線-面’의 이중성에서 출발한다. 조선시대 상류주택은 길과의 관계보다는 권력의 중심인 궁궐에 근접하면서도 間이라는 단위요소와 이를 결합하여 寨를 이루는 독자적 구성원리를 중시했다. 반면 이를 감싸기 위해서 시전행랑은 선형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집이 길에 의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집에 의해 길이 형성되는 ‘先住宅 後街路’의 과정이었다. 당의 장안, 일본의 교토, 중세유럽도시의 건축이 분할된 面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면 조선시대의 주택은 단위와 조합이라는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즉 전자의 도시와 건축은 ‘나누는’ 문제, ‘분할’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면 조선시대 서울의 주택과 상업건축은 ‘더해 가는’ 문제, ‘확장’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산업화, 도시화, 상업자본주의 앞에서 이러한 ‘線-面의 二次元的 二重性’은 세 가지의 압력을 견뎌낼 수 없게 된다. 첫째, 권력공간과의 근접성에 의존했던 ‘超空間的 面’은 주택지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고 상업공간 중에서도 超空間的 성향을 지닌 2차 상업공간으로 전락한다. 둘째, ‘街路依存的-線’은 상업공간의 절대적 부족으로 수직화의 압력을 받는다. 유럽과 북미의 도심상업건축이 1층-상업공간, 상층부-주거공간으로 이분된 반면 종로변 상업건축은 위상학적 깊이에 따라 空間依存的 상업공간과 超空間的 상업공간이 수직방향으로 분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밀도 높은 상업가로경관과 배면이 이중성을 보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셋째, 貫流空間과 場所로서의 양면성을 지녔던 종로는 자동차에 의해 점유되면서 장소로서의 기능은 상실하고 관류공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세 가지 압력과 변화의 결과 종로에 모자이크의 도시유형과 상업건축유형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연구의 핵심이었다.
학회가 끝나고 주최측과 참가자 모두는 이러한 이 학회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발표한 논문을 수정 보완하여 싱가폴 국립대학 건축대학이 현재 출간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건축지 (Journal of Southeast Asian Architecture)에 게재할 것도 결정하였다. 이 저널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학술지로 이 지역의 학자들이 논문을 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이번 여행은 학회 자체뿐만 아니라 싱가폴이 지닌 학술적 위상을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 싱가폴은 중국, 영국, 말레이, 그리고 인도문명이 복합된 아시아의 문화용광로였다. 특히 중국문화와 영국문화의 기묘한 공존은 싱가폴을 국제적 요충지로 만드는 동인이다. 영어와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 아닌가 한다. 홍콩이 유사한 상황이지만 중국에 반환된 이후 중립적 위치의 매력은 희석되었다. 반면 싱가폴은 중국, 영국, 그리고 호주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싱가폴, 홍콩, 호주의 학술적 교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강했다. 한국, 중국, 일본이 이웃을 하고 있지만 학술교류가 형식적인 반면 싱가폴의 네트워크는 실질적으로 인적 자원이 서로 교류되고 있었다. 이점에서 싱가폴은 서양의 문화가 중국으로 들어오는 출입구라 할 만하다.
나는 싱가폴학회에 가기 몇 달전 렘 쿨하스의 “S, M, L, XL” 중 “Singapore Songline”을 읽은 바 있다. 이 글은 싱가폴을 매우 비판적으로 그리고 있다. 렘쿨하스는 기존의 전통문화가 없는 곳에 잡문화를 이식시킨 유교적 포스트모던 도시의 전형이라고 보고 있다. 도시전역을 쇼핑몰로 만들거나 조경으로 뒤덮는 것은 상업자본주의의 저속한 버내큘러 문화라고 말한다. 싱가폴은 한편 거대 중국의 실험장이다. 실무경력 2~3년차의 건축가가 중국내륙의 초고층 건물을 설계하는 곳이 싱가폴이다. 미래 중국은 새로운 싱가폴이 될 것이라는 렘 쿨하스의 예견이다. 그의 지적은 예리한 데가 있다. 싱가폴은 나에게도 국가나 도시라기보다는 잘 경영되는 거대한 회사처럼 느껴졌다. 입국증서 뒤에는 “마약거래시 사형”이라는 섬뜩한 문구가 적혀있고 지하철 안에는 “음식 500달러, 흡연 1,000달러 벌금”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자동차를 구입하기 전 자동차 값보다도 비싼 운행허가증을 얻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곳이 싱가폴이다. 몇 년전 미국 관광객 청년이 범법을 하여 곤장을 맞은 사례는 유명하다. 그러나 렘 쿨하스의 냉소적 비판에는 상업자본주의에 편승하는 고도의 전략이 숨어있다. 그에게 글은 건축과 함께 일종의 마케팅의 수단이다. 유럽과 비교할 수 없는 고밀도의 다문화 사회에서 생존하는 싱가폴의 모습이 유럽 우월주의에 의해 구타당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렘 쿨하스의 지적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싱가폴은 서구를 향한 아시아의 첨병임은 틀림없다. 건축학계 역시 그 첨병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번 심포지엄에서 얻은 최대의 수확이다. 렘쿨하스는 글의 말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Singapore mantra: don't forget to confirm your return flight.” 이 마지막 문구는 한 네델란드 건축가의 동양도시에 대한 냉소적 비판이라기보다는 유혹의 呪文으로 읽혀진다.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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