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독일의 공공성을 말하다
Space, 200511, pp262-263.
한독 퍼블릭스페이스 포럼, Germany-Korea Public Space Forum, 2005.10.14
프랑크푸르트 독일건축박물관 (Deutsches Architektur Museum, DAM)
전 세계에서 도시밀도가 가장 높은 서울, 간판으로 뒤덮인 상업건축과 그 이면에서 재개발을 기다리는 골목집, 지하층에서 지상층에 적층된 미로와 같은 노래방, 피씨방, 찜질방, 방방방... 일터와 더 나은 학교를 향해 사람들이 떠난 휑한 폐광촌, 포도송이처럼 뻗어나가는 신도시에 포위된 한국 최초의 집단 예술촌. 일견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이러한 혼성풍경은 정연한 도시공학론이나 시지각적 건축예술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담론의 사각지대다. 비단 한국 도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근대건축의 원류지인 유럽은 어떤가? 중심도 근교도 아닌 도시의 주변에 흩어진 웨어하우스, 공장과 같은 허접스런 건축,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으로 버려진 동구의 프리패브리캐이트 아파트, 강변의 콘테이터와 야적장. 이를 가장 합리적인 건축과 도시를 자부하는 독일의 풍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한독 퍼블릭스페이스 포럼은 다양하지만 하나의 관점이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지역 풍경을 세계의 보편적 건축·도시 이야기로 끌어내고자 하는 시도다. 한국이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 선정되면서 한국의 출판문화를 유럽에 알리려는 다양한 행사가 계획되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단순한 책전시 이벤트라기보다는 문자와 관련된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축제다. 건축포럼이 책, 전시, 공연과 함께 문화축제의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공무원 신분이지만 아도르노와 하버마스를 이야기하는 프랑크푸르트시 과학예술국 클라우스 클렘프와 독일최초의 건축박물관 수석큐레이터 피터슈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5년 1월 이 두 사람과 포럼주제를 논의하고자 만났다. 한독 건축의 현안을 논의하는 공동의 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했지만 주제인 “퍼블릭”으로 들어가자 이내 용어가 함의하는 문화적, 역사적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퍼블릭에 대한 개념과 인식의 근원적 차이가 바로 비교문화적 포럼의 단초가 되었다.
이번 포럼에서 두 지역 건축인들이 발표한 내용은 국가나 민족적 문화자긍심을 자랑하는 홍보도 아니었고, 건축잡지나 모노그래프에 실리는 스타 건축가의 현란한 작품도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의 퍼블릭스페이스가 얼마나 빈곤한 것인가를 드러내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 드러냄은 부끄러운 고백이라기보다는 한국도시의 일상이 얼마나 치열하며, 그 치열함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를 가장 역동적으로 만드는 동인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국측에서는 김성홍(서울시립대)이 서울의 공간구조에 내재하는 극단적 이원성을 읽어내고 정보화시대에서 그것이 갖는 새로운 사회공간적 잠재력을, 주대관(경기대학교, 엑토건축)은 폐광촌 철암의 삶을 읽어내고 함께하는 지역공간환경운동에서 건축의 새로운 공공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김종규(한국예술종합학교, 마루건축)는 헤이리아트밸리 프로젝트에서 제시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새로운 접목 방식과 건축가들의 집합적 도시문화운동을, 김광수(이화여자대학교, 팀반건축)는 한국 도시 경관을 지배하는 방의 문화와 공공공간의 위기와 거대 도시에서의 정주성을 진단했다.
독일측에서도 4인의 건축가가 이에 대응하는 주제로 갖고 발표에 나섰다. 네델란드 출신 건축이론가 바르트 로츠마는 서구의 건축도시이론에 잠재되어 있는 회고적 공공공간 이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미디어가 도시경관에 가져올 가능성을 제시했다. 무크 페체트는 사회주의 체제하의 집합주거를 현대화한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일상건축의 공공성을 모색하고, 니콜라우스 히르쉬는 건축가의 역할이 독자적 창조자에서 공적 조정자로 변모하는 현상을 참여 작품을 통하여 보여주었다. 마리 테레스 도이취는 15년간 지속적으로 참여한 프랑크푸르트 강변 도시공간 재생 프로젝트와 도시민의 일상 변화를 추적했다.
포럼 자체는 도서전 개막전 하루 행사였지만 포럼의 주제와 구성에 따라 8개의 에세이를 하나의 묶음으로 엮어 책을 만드는 작업은 열 달동안 진행되었다. 작업과정에서 인터넷을 통한 지역간의 새로운 소통방식의 잠재력을 확인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건축계의 던진 우리 스스로의 질문이다. 객관적 분석과 고증에 충실하되 우리도시와 건축의 리얼리티를 담아내지 못하는 건축역사학과 실증주의적 건축연구, 아이코노그래피와 修辭로 포장하지만 일상과 소통하는 언어를 잃어가는 건축실천계 사이의 영역은 과연 없는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그 질문은 책임이나 윤리와 같은 거대서사에서 출발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론과 실험, 학자와 건축가, 기술과 예술, 역사와 현실, 이러한 이분법으로는 읽어내기에는 한국 건축도시의 리얼리티가 너무나도 다면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이점은 유럽 건축가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배웠던, 지금도 배우고 있는 근대건축은 이미 그들에게는 고전이며, 오히려 아시아의 활력과 강력함에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한독 퍼블릭스페이스 포럼은 해답을 기대하는 학술회의가 아니었다. 우리시대의 퍼블릭스페이스는 아고라와 삐아짜와 같은 장소도 아니고, 인테넷으로 대체된 버츄얼공간도 아니다. 이번 포럼은 가상과 현실의 사이, 공간과 초공간적 커뮤니티 사이, 중심과 주변의 사이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흩어져 있는 “언저리”들을 조명하고자 하는 첫 출발일 뿐이다.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한독 퍼블릭스페이스 포럼기획자
Space, 200511, pp262-263.
한독 퍼블릭스페이스 포럼, Germany-Korea Public Space Forum, 2005.10.14
프랑크푸르트 독일건축박물관 (Deutsches Architektur Museum, DAM)
전 세계에서 도시밀도가 가장 높은 서울, 간판으로 뒤덮인 상업건축과 그 이면에서 재개발을 기다리는 골목집, 지하층에서 지상층에 적층된 미로와 같은 노래방, 피씨방, 찜질방, 방방방... 일터와 더 나은 학교를 향해 사람들이 떠난 휑한 폐광촌, 포도송이처럼 뻗어나가는 신도시에 포위된 한국 최초의 집단 예술촌. 일견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이러한 혼성풍경은 정연한 도시공학론이나 시지각적 건축예술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담론의 사각지대다. 비단 한국 도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근대건축의 원류지인 유럽은 어떤가? 중심도 근교도 아닌 도시의 주변에 흩어진 웨어하우스, 공장과 같은 허접스런 건축,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으로 버려진 동구의 프리패브리캐이트 아파트, 강변의 콘테이터와 야적장. 이를 가장 합리적인 건축과 도시를 자부하는 독일의 풍경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한독 퍼블릭스페이스 포럼은 다양하지만 하나의 관점이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러한 지역 풍경을 세계의 보편적 건축·도시 이야기로 끌어내고자 하는 시도다. 한국이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 선정되면서 한국의 출판문화를 유럽에 알리려는 다양한 행사가 계획되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단순한 책전시 이벤트라기보다는 문자와 관련된 장르를 아우르는 종합축제다. 건축포럼이 책, 전시, 공연과 함께 문화축제의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공무원 신분이지만 아도르노와 하버마스를 이야기하는 프랑크푸르트시 과학예술국 클라우스 클렘프와 독일최초의 건축박물관 수석큐레이터 피터슈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5년 1월 이 두 사람과 포럼주제를 논의하고자 만났다. 한독 건축의 현안을 논의하는 공동의 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공감했지만 주제인 “퍼블릭”으로 들어가자 이내 용어가 함의하는 문화적, 역사적 차이가 얼마나 큰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역설적으로 퍼블릭에 대한 개념과 인식의 근원적 차이가 바로 비교문화적 포럼의 단초가 되었다.
이번 포럼에서 두 지역 건축인들이 발표한 내용은 국가나 민족적 문화자긍심을 자랑하는 홍보도 아니었고, 건축잡지나 모노그래프에 실리는 스타 건축가의 현란한 작품도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의 퍼블릭스페이스가 얼마나 빈곤한 것인가를 드러내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 드러냄은 부끄러운 고백이라기보다는 한국도시의 일상이 얼마나 치열하며, 그 치열함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를 가장 역동적으로 만드는 동인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국측에서는 김성홍(서울시립대)이 서울의 공간구조에 내재하는 극단적 이원성을 읽어내고 정보화시대에서 그것이 갖는 새로운 사회공간적 잠재력을, 주대관(경기대학교, 엑토건축)은 폐광촌 철암의 삶을 읽어내고 함께하는 지역공간환경운동에서 건축의 새로운 공공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김종규(한국예술종합학교, 마루건축)는 헤이리아트밸리 프로젝트에서 제시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새로운 접목 방식과 건축가들의 집합적 도시문화운동을, 김광수(이화여자대학교, 팀반건축)는 한국 도시 경관을 지배하는 방의 문화와 공공공간의 위기와 거대 도시에서의 정주성을 진단했다.
독일측에서도 4인의 건축가가 이에 대응하는 주제로 갖고 발표에 나섰다. 네델란드 출신 건축이론가 바르트 로츠마는 서구의 건축도시이론에 잠재되어 있는 회고적 공공공간 이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미디어가 도시경관에 가져올 가능성을 제시했다. 무크 페체트는 사회주의 체제하의 집합주거를 현대화한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일상건축의 공공성을 모색하고, 니콜라우스 히르쉬는 건축가의 역할이 독자적 창조자에서 공적 조정자로 변모하는 현상을 참여 작품을 통하여 보여주었다. 마리 테레스 도이취는 15년간 지속적으로 참여한 프랑크푸르트 강변 도시공간 재생 프로젝트와 도시민의 일상 변화를 추적했다.
포럼 자체는 도서전 개막전 하루 행사였지만 포럼의 주제와 구성에 따라 8개의 에세이를 하나의 묶음으로 엮어 책을 만드는 작업은 열 달동안 진행되었다. 작업과정에서 인터넷을 통한 지역간의 새로운 소통방식의 잠재력을 확인한 것이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건축계의 던진 우리 스스로의 질문이다. 객관적 분석과 고증에 충실하되 우리도시와 건축의 리얼리티를 담아내지 못하는 건축역사학과 실증주의적 건축연구, 아이코노그래피와 修辭로 포장하지만 일상과 소통하는 언어를 잃어가는 건축실천계 사이의 영역은 과연 없는가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그 질문은 책임이나 윤리와 같은 거대서사에서 출발한 것이 결코 아니다. 이론과 실험, 학자와 건축가, 기술과 예술, 역사와 현실, 이러한 이분법으로는 읽어내기에는 한국 건축도시의 리얼리티가 너무나도 다면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이점은 유럽 건축가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배웠던, 지금도 배우고 있는 근대건축은 이미 그들에게는 고전이며, 오히려 아시아의 활력과 강력함에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한독 퍼블릭스페이스 포럼은 해답을 기대하는 학술회의가 아니었다. 우리시대의 퍼블릭스페이스는 아고라와 삐아짜와 같은 장소도 아니고, 인테넷으로 대체된 버츄얼공간도 아니다. 이번 포럼은 가상과 현실의 사이, 공간과 초공간적 커뮤니티 사이, 중심과 주변의 사이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는 흩어져 있는 “언저리”들을 조명하고자 하는 첫 출발일 뿐이다.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한독 퍼블릭스페이스 포럼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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