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텍토닉과 프로페셔널리즘 - 솔토의 건축
SOLTOS Architects, 솔토건축작품집 서문, pp4-7. 2004
1980년대 이후 한국건축계는 두 가지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하나는 김수근과 김중업으로 대표되었던 1세대 이후의 건축가群이 아틀리에형 사무실을 중심으로 형성하는 지형도다. 이들은 건축의 공공성을 주장하고 사회비판적 의식을 갖지만 역설적으로 집단보다는 개인역량, 미디어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이들의 주 고객은 미디어를 통하여 자본을 축적하려는 사회계층이기 때문이다. 아틀리에 건축가의 결실은 구성원 전체의 것으로 환원되지 못하고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이들의 연대는 실천적 이데올로기보다는 동질성을 확인하고 공고화하려는 기계적 연대에 가깝다.
둘째 지형도를 형성하는 건축가는 자본, 기술, 효용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쟁을 벌이는 기업형사무실의 경영자 혹은 구성원이다.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이 오히려 이들에겐 성장 동력이 되었고 관료조직과 건설회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이들은 공공성보다 회사의 성장을 중요시하지만 아틀리에사무실보다 분배의 원칙에는 충실하다. 그것이 조직을 결속하고 유지해나가는 가장 큰 힘이기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존은 정치와 제도권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두 지형도는 1960년대 이후 서구 건축계가 변모하는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거장 건축가들이 사라진 서구 건축계의 빈 자리를 이론중심의 학구주의와 기술중심의 미래주의가 메우고 있었다. 학구주의 건축가는 실무보다는 저널과 건축지를 통하여 등단하여 자신들만의 담론을 형성해갔다. 가부장적 근대주의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했지만 건축과 사회의 소통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는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을 여전히 답습했다. 한편 기술과 조직을 바탕으로 한 대형사무소는 전 세계의 상업건축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특히 미국의 대형사무소는 건축의 절대적 교리나 자율성을 고집하지 않고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건축은 작품이 아니라 생산품이며, 건축가는 작가가 아니라 프로페셔널이다. 레이너 밴험이 간파했던 학구주의와 미래주의는 그의 예견과는 달리 이러한 극단의 모습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대학과 현장이 유리된 현상은 모더니즘의 작가주의가 뿌려놓은 씨앗이며, 그 결과 스타건축가는 화려하지만 건축계 전체는 왜소해지는 기형적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서구 건축계의 양극화 사이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는 지형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간과한다. 스타건축가들의 특별해 이면에 무수히 반복되는 일반해가 있다는 사실, 대형사무소가 대량생산하는 거대건축은 기술적 축적이 전제가 된다는 사실을 한국건축계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 건축계는 양극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가와 사무실이 절실히 요구된다. 건축이 독자적 규율과 질서를 잃지 않으면서도 외적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 건축가가 작가적 정신과 지적태도를 지키면서도 생존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냉정하게 계산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솔토가 보여준 지난 몇 년간의 작업과정은 한국 건축지형도에 새로운 줄기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 전통논쟁 이후 한국건축은 기념비적 상징주의의 굴레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이코노그래피를 변형하는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모더니즘의 시지각적 미학주의는 여전히 건축가들이 집착하는 건축설계의 규율이었다. 한국 건축계의 이러한 관성에 파장을 일으킨 것이 바로 새로운 구법과 재료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도입된 목재와 금속재는 철근콘크리트와 조적조에 익숙했던 일반인의 건축적 감성을 형태에서 물성으로, 시각에서 촉각으로 확장시켰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가는 목재나 금속재를 구조재보다는 여전히 외장재로 간주했다. 습식공법을 대체하는 건식구법과 피복기술을 실험한 것이 아니라 시지각적 미학주의의 연장선에서 목재루버나 코르텐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던 것이다.
텍토닉을 현대건축의 하나의 대안으로 보았던 케니스 프램톤 역시 물성의 기술적 측면보다는 존재론적 측면을 부각했다. 건축의 가장 원초적 형태는 직물의 매듭에 비유될 수 있는 가구식구조이며, 때문에 건축의 진정한 의미는 재료가 만나는 디테일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램톤의 텍토닉론은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와 같은 형식집착을 비판하는 이론 틀로서는 당위성이 있으나 건축을 신비화, 개인화하는 함정에 빠진다.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한국건축가들은 체계적 학습을 통해 나무의 물성과 효용을 소화하지 않는 채 앞 다투어 목구조를 사용했다. 검증되지 않는 구법과 재료를 개인의 언어로 선점하고자 했던 것이다.
솔토가 건축저널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1999년 당시 그들이 직접 시공한 신원동주택에서 나는 한국적 텍토닉의 가능성을 보았다. 배스우드로 제작한 1/20의 정교한 모형이 전시용이 아니라 시공을 위한 검증과정이었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한국의 주거문화와 서구의 다양한 건축구법을 결합하려 했던 그들의 실험이 신선했다. 북미와 호주의 경골목구조는 바닥을 카펫이나 마루로 마감하고 물청소를 하지 않는 생활양식에 적합한 구법이다. 바닥습기와 층간소음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목재를 다양하게 구사한 신원동주택은 스테레오토믹과 텍토닉의 결합만이 아니었다. 가짜 경골목구조와 저가 사이딩은 업자들의 설익은 손을 거쳐 전국의 전원풍경을 급속히 오염시키고 있다. 전통목구조를 고집하는 복고론자들은 이를 서양의 것으로 매도한다. 솔토는 이것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선입관이란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도고연수원에서 솔토의 텍토닉은 내부공간에서 외부공간으로, 인공지형에서 자연지형으로 확대되고 이전보다 성숙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표출된다. 글루램과 철물을 결합한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의 기둥은 나무의 정원으로, 수공간과 목재말뚝을 이용한 옥외덱크는 전통건축의 樓로 은유화된다. 이들이 구사하는 은유가 힘을 지니면서도 과하지 않는 것은 텍토닉에 단순한 건축모폴로지를 더하기 때문이다. 작가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건축가는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면서 새로운 건축언어를 찾아야 하는 강박관념에 빠진다. 건축공간의 집합적 동질성조차도 실험의 대상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언어적 유희로 끝난다. 모폴로지를 건축과 사회가 소통하는 집합적 언어로 보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 빠롤로 보기 때문이다. 도고연수원, 청평비전센터, 남원스위트에코센터에서는 ‘방’과 ‘복도’의 모폴로지가 결합되어 공간의 구조적 얼개를 이룬다. 반면 초기의 신원동주택에서는 ‘매트릭스,’ 최근의 이천프로젝트에서는 ‘매트릭스’와 ‘복도’가 결합된다. 이는 주택, 연수원, 사무실과 같은 시설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직, 수평 공간의 기교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모폴로지와 텍토닉을 결합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태도에서 나온다. 남원스위트센터나 이천프로젝트에서 절제된 기하학은 부분적으로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의도된 시지각적 형태가 아니라 협동작업과정에서 나타난 아포스테리오리에 가깝다. 작은 시각적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기하학적 변형은 현장성과 구조적 합리성을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솔토가 한국건축계에 보여주는 또 다른 가능성은 사무소의 조직과 시스템에 있다. 솔토는 작가 개인보다는 업무의 분화와 책임, 팀웤에 의해 움직인다. 파트너들은 각각 고유의 업무를 갖고 수평적으로 일한다. 디자인, 매니지먼트, 대외업무로 흔히 나누어지는 미국의 파트너십과 매우 흡사하다. 10년 이상의 다수 경력자들이 조직의 허리에 포진해있는 솔토의 구성은 일반적 중규모 사무실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솔토의 구성원에게 설계와 감리는 법률적 구분이 아니라 디자인과 현장을 연결하는 과정이다. 시공에서 필요한 부분만 도면에 표현되고 많은 경우 현장에서 도면이 그려진다. 조건에 우선하는 개념의 건축보다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를 디자인의 가능성으로 열어두는 것이다. 솔토의 건축에서 양식의 일관성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은 대지와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언어들을 발굴해나가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건축 1세대는 조직의 효용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우리시대의 아틀리에형 사무소는 작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냉철한 시스템과 운영방법을 필요로 한다. 기업형사무소 역시 해외진출과 건강한 국내경쟁을 위해 턴키수주와 같은 규모위주의 경쟁에서 기술집적 디자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상설계나 개발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작지만 품격있는 건축을 만들어 나가는 솔토의 역량을 지켜보면서, 나는 건축이 고도의 지적작업이면서 현장의 실제성을 담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또한 건축가가 주어지는 것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수동적 프로페셔널에서 인간의 삶을 조직하고 기획하는 조정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도 갖게 된다. 그러나 솔토가 부닥쳐야 할 숙제와 도전은 결코 만만치 많다. 상업자본주의는 스타건축가와 기업형사무소 사이에 그다지 많은 활동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밖으로는 건축저널리즘의 유혹과 건설시장의 힘에 대응하면서, 안으로는 작가와 프로페셔널로서의 건축가의 균형을 유지하는 고도의 생존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이글을 쓰기 전에 솔토의 건축을 몸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한때 전국의 온천 명소였던 도고는 고속도로변 신흥 관광지의 힘에 밀려 한적한 시골마을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산자락에 기대어 마을을 내려다보는 밤의 게스트하우스는 분명 새로운 生氣였다.
대중에게 가까이 가면서도 건축이 자율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절대적 건축언어나 현란한 修辭없이도 건축이 힘과 깊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솔토의 건축이 보여주고 있었다.
김성홍 /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SOLTOS Architects, 솔토건축작품집 서문, pp4-7. 2004
1980년대 이후 한국건축계는 두 가지의 새로운 지형도를 그리고 있다. 하나는 김수근과 김중업으로 대표되었던 1세대 이후의 건축가群이 아틀리에형 사무실을 중심으로 형성하는 지형도다. 이들은 건축의 공공성을 주장하고 사회비판적 의식을 갖지만 역설적으로 집단보다는 개인역량, 미디어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 이들의 주 고객은 미디어를 통하여 자본을 축적하려는 사회계층이기 때문이다. 아틀리에 건축가의 결실은 구성원 전체의 것으로 환원되지 못하고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이들의 연대는 실천적 이데올로기보다는 동질성을 확인하고 공고화하려는 기계적 연대에 가깝다.
둘째 지형도를 형성하는 건축가는 자본, 기술, 효용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쟁을 벌이는 기업형사무실의 경영자 혹은 구성원이다. 경제위기와 구조조정이 오히려 이들에겐 성장 동력이 되었고 관료조직과 건설회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이들은 공공성보다 회사의 성장을 중요시하지만 아틀리에사무실보다 분배의 원칙에는 충실하다. 그것이 조직을 결속하고 유지해나가는 가장 큰 힘이기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생존은 정치와 제도권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두 지형도는 1960년대 이후 서구 건축계가 변모하는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거장 건축가들이 사라진 서구 건축계의 빈 자리를 이론중심의 학구주의와 기술중심의 미래주의가 메우고 있었다. 학구주의 건축가는 실무보다는 저널과 건축지를 통하여 등단하여 자신들만의 담론을 형성해갔다. 가부장적 근대주의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했지만 건축과 사회의 소통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는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을 여전히 답습했다. 한편 기술과 조직을 바탕으로 한 대형사무소는 전 세계의 상업건축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특히 미국의 대형사무소는 건축의 절대적 교리나 자율성을 고집하지 않고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전략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건축은 작품이 아니라 생산품이며, 건축가는 작가가 아니라 프로페셔널이다. 레이너 밴험이 간파했던 학구주의와 미래주의는 그의 예견과는 달리 이러한 극단의 모습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다. 대학과 현장이 유리된 현상은 모더니즘의 작가주의가 뿌려놓은 씨앗이며, 그 결과 스타건축가는 화려하지만 건축계 전체는 왜소해지는 기형적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서구 건축계의 양극화 사이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는 지형도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간과한다. 스타건축가들의 특별해 이면에 무수히 반복되는 일반해가 있다는 사실, 대형사무소가 대량생산하는 거대건축은 기술적 축적이 전제가 된다는 사실을 한국건축계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 건축계는 양극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가와 사무실이 절실히 요구된다. 건축이 독자적 규율과 질서를 잃지 않으면서도 외적조건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 건축가가 작가적 정신과 지적태도를 지키면서도 생존의 프로페셔널리즘을 냉정하게 계산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솔토가 보여준 지난 몇 년간의 작업과정은 한국 건축지형도에 새로운 줄기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 전통논쟁 이후 한국건축은 기념비적 상징주의의 굴레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이코노그래피를 변형하는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모더니즘의 시지각적 미학주의는 여전히 건축가들이 집착하는 건축설계의 규율이었다. 한국 건축계의 이러한 관성에 파장을 일으킨 것이 바로 새로운 구법과 재료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도입된 목재와 금속재는 철근콘크리트와 조적조에 익숙했던 일반인의 건축적 감성을 형태에서 물성으로, 시각에서 촉각으로 확장시켰다. 그러나 대부분의 건축가는 목재나 금속재를 구조재보다는 여전히 외장재로 간주했다. 습식공법을 대체하는 건식구법과 피복기술을 실험한 것이 아니라 시지각적 미학주의의 연장선에서 목재루버나 코르텐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던 것이다.
텍토닉을 현대건축의 하나의 대안으로 보았던 케니스 프램톤 역시 물성의 기술적 측면보다는 존재론적 측면을 부각했다. 건축의 가장 원초적 형태는 직물의 매듭에 비유될 수 있는 가구식구조이며, 때문에 건축의 진정한 의미는 재료가 만나는 디테일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램톤의 텍토닉론은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와 같은 형식집착을 비판하는 이론 틀로서는 당위성이 있으나 건축을 신비화, 개인화하는 함정에 빠진다. 1990년대 이후 대부분의 한국건축가들은 체계적 학습을 통해 나무의 물성과 효용을 소화하지 않는 채 앞 다투어 목구조를 사용했다. 검증되지 않는 구법과 재료를 개인의 언어로 선점하고자 했던 것이다.
솔토가 건축저널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1999년 당시 그들이 직접 시공한 신원동주택에서 나는 한국적 텍토닉의 가능성을 보았다. 배스우드로 제작한 1/20의 정교한 모형이 전시용이 아니라 시공을 위한 검증과정이었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한국의 주거문화와 서구의 다양한 건축구법을 결합하려 했던 그들의 실험이 신선했다. 북미와 호주의 경골목구조는 바닥을 카펫이나 마루로 마감하고 물청소를 하지 않는 생활양식에 적합한 구법이다. 바닥습기와 층간소음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목재를 다양하게 구사한 신원동주택은 스테레오토믹과 텍토닉의 결합만이 아니었다. 가짜 경골목구조와 저가 사이딩은 업자들의 설익은 손을 거쳐 전국의 전원풍경을 급속히 오염시키고 있다. 전통목구조를 고집하는 복고론자들은 이를 서양의 것으로 매도한다. 솔토는 이것이 편협한 민족주의적 선입관이란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도고연수원에서 솔토의 텍토닉은 내부공간에서 외부공간으로, 인공지형에서 자연지형으로 확대되고 이전보다 성숙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표출된다. 글루램과 철물을 결합한 게스트하우스 라운지의 기둥은 나무의 정원으로, 수공간과 목재말뚝을 이용한 옥외덱크는 전통건축의 樓로 은유화된다. 이들이 구사하는 은유가 힘을 지니면서도 과하지 않는 것은 텍토닉에 단순한 건축모폴로지를 더하기 때문이다. 작가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건축가는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면서 새로운 건축언어를 찾아야 하는 강박관념에 빠진다. 건축공간의 집합적 동질성조차도 실험의 대상이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언어적 유희로 끝난다. 모폴로지를 건축과 사회가 소통하는 집합적 언어로 보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 빠롤로 보기 때문이다. 도고연수원, 청평비전센터, 남원스위트에코센터에서는 ‘방’과 ‘복도’의 모폴로지가 결합되어 공간의 구조적 얼개를 이룬다. 반면 초기의 신원동주택에서는 ‘매트릭스,’ 최근의 이천프로젝트에서는 ‘매트릭스’와 ‘복도’가 결합된다. 이는 주택, 연수원, 사무실과 같은 시설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직, 수평 공간의 기교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모폴로지와 텍토닉을 결합하고자 하는 건축가의 태도에서 나온다. 남원스위트센터나 이천프로젝트에서 절제된 기하학은 부분적으로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의도된 시지각적 형태가 아니라 협동작업과정에서 나타난 아포스테리오리에 가깝다. 작은 시각적 즐거움으로 느껴지는 기하학적 변형은 현장성과 구조적 합리성을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솔토가 한국건축계에 보여주는 또 다른 가능성은 사무소의 조직과 시스템에 있다. 솔토는 작가 개인보다는 업무의 분화와 책임, 팀웤에 의해 움직인다. 파트너들은 각각 고유의 업무를 갖고 수평적으로 일한다. 디자인, 매니지먼트, 대외업무로 흔히 나누어지는 미국의 파트너십과 매우 흡사하다. 10년 이상의 다수 경력자들이 조직의 허리에 포진해있는 솔토의 구성은 일반적 중규모 사무실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솔토의 구성원에게 설계와 감리는 법률적 구분이 아니라 디자인과 현장을 연결하는 과정이다. 시공에서 필요한 부분만 도면에 표현되고 많은 경우 현장에서 도면이 그려진다. 조건에 우선하는 개념의 건축보다는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변수를 디자인의 가능성으로 열어두는 것이다. 솔토의 건축에서 양식의 일관성을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은 대지와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언어들을 발굴해나가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건축 1세대는 조직의 효용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그들과 달리 우리시대의 아틀리에형 사무소는 작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냉철한 시스템과 운영방법을 필요로 한다. 기업형사무소 역시 해외진출과 건강한 국내경쟁을 위해 턴키수주와 같은 규모위주의 경쟁에서 기술집적 디자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상설계나 개발회사에 의존하지 않고 작지만 품격있는 건축을 만들어 나가는 솔토의 역량을 지켜보면서, 나는 건축이 고도의 지적작업이면서 현장의 실제성을 담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또한 건축가가 주어지는 것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수동적 프로페셔널에서 인간의 삶을 조직하고 기획하는 조정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도 갖게 된다. 그러나 솔토가 부닥쳐야 할 숙제와 도전은 결코 만만치 많다. 상업자본주의는 스타건축가와 기업형사무소 사이에 그다지 많은 활동공간을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밖으로는 건축저널리즘의 유혹과 건설시장의 힘에 대응하면서, 안으로는 작가와 프로페셔널로서의 건축가의 균형을 유지하는 고도의 생존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이글을 쓰기 전에 솔토의 건축을 몸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한때 전국의 온천 명소였던 도고는 고속도로변 신흥 관광지의 힘에 밀려 한적한 시골마을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산자락에 기대어 마을을 내려다보는 밤의 게스트하우스는 분명 새로운 生氣였다.
대중에게 가까이 가면서도 건축이 자율성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절대적 건축언어나 현란한 修辭없이도 건축이 힘과 깊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솔토의 건축이 보여주고 있었다.
김성홍 /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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