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혜화동성당
동아일보 기획특집 [공간의 역사]
2009.8.26자
http://news.donga.com/fbin/output?n=200908260065
랜드 마크라고 하면 서울 남산 N타워나 여의도 63빌딩처럼 높고 커서 눈에 잘 띄는 것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런 건물들은 타지에서 온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 서울 사는 사람들의 삶을 아우르는 구심점은 아니다. 급하게 성장한 거대 도시 서울의 랜드 마크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촉발시키는 ‘방아쇠’ 같은 건축물이어야 하지 않을까. 덤덤한 외양을 가져 언뜻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 종로구 혜화동성당은 이런 가치를 품고 있는 건물이다.
매주 일요일 정오 무렵. 혜화동성당에서 동성중고등학교 앞을 지나 대학로로 이어지는 좁은 길에서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필리핀 출신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몰려든 이 나라 노동자들과, 이들에게 음식이나 일용품을 팔러 온 노점상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이들을 위해 일요일에 문을 여는 길 건너편 은행은 고향에 돈을 보내려는 사람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필리핀에서 온 사람들의 주말 시간을 풍성하게 채우는 삶의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혜화동은 필리핀 출신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곳은 아니다. 이곳은 이국땅에서 자신들의 연대를 확인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시적 이방 공간’이다. 그 공간 프로그램의 자생을 이끌어낸 구심점이 바로 혜화동성당이다.
본당 건물은 건축가 이희태(1925~1981)가 설계해 1960년 완공했다. 기둥이 없는 장방형(長方形)의 내부 공간, 볼트(vault·반원형의 지지 구조물) 없는 평천장, 간결한 제대(祭臺)의 모습은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가톨릭교회의 내부 공간은 중앙의 회중석(會衆席), 측면 복도, 폭이 좁고 깊은 제대로 구분된다. 회중석 천장은 일반적으로 측면 복도 천장보다 높으며, 제대도 별도의 천장 형태를 보인다. 혜화동성당은 이런 공간 분화의 정형을 과감히 탈피해 단순한 상자 모양을 가졌다. 밖에서 보면 교회인지 알아채기 쉽지 않을 정도로 입면 디자인이 모던하다. 조각가 김세중이 만든 육중한 사각형의 화강석 부조가 시선을 압도한다. 한국 가톨릭교회 건축을 폭넓게 연구한 김정신 단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혜화동성당 건축의 혁신성은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천명한 내적 쇄신과 현대화 정신에 부합한다”고 했다.
이희태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김수근과 김중업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건축가다. 절두산성당(1967), 국립극장(1972), 공주박물관(1973) 등의 작품은 ‘한국 전통 건축 요소의 현대화를 시도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디테일에 편중했다’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그의 초기작인 혜화동성당에는 관습적인 양식을 탈피한 과감성이 돋보인다. 가톨릭교회는 대개 고전적 형태를 따른 공간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인데, 당시 혜화동성당 성직자들은 아마도 대단히 혁신적인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형태미를 넘어서는 이 건축물의 커다란 힘은 이방의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한 공간 프로그램에 있다. 일요일 오후 열리는 종교 의식은 흩어져서 생활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불러 모아 서울이라는 도시에 독특한 거리 풍경을 더하게 했다. 불과 반나절 동안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것은 틀림없이 도시 문화의 한 갈래 신선한 파생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인구의 2%인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단일 민족 문화의 성격이 강하다. 서울 혜화동성당이 일요일마다 만들고 있는 ‘필리핀 장터’는 다문화 정책이 나아갈 색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건축물 하나로 인해 발생한 사람들의 자연스런 활동이 거리와 도시 전체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건축의 본질은 외양에서 드러나는 물질적 형태가 아니라, 잘 비워낸 공간에 채워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가는 사용자의 삶을 조율하는 ‘공간의 안무가(按舞家)’다. 49년 전 이희태가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먼 훗날 이런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고 상상했을지 궁금하다.
김성홍·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동아일보 기획특집 [공간의 역사]
2009.8.26자
http://news.donga.com/fbin/output?n=200908260065
랜드 마크라고 하면 서울 남산 N타워나 여의도 63빌딩처럼 높고 커서 눈에 잘 띄는 것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런 건물들은 타지에서 온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 서울 사는 사람들의 삶을 아우르는 구심점은 아니다. 급하게 성장한 거대 도시 서울의 랜드 마크는 다양한 문화 활동을 촉발시키는 ‘방아쇠’ 같은 건축물이어야 하지 않을까. 덤덤한 외양을 가져 언뜻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 종로구 혜화동성당은 이런 가치를 품고 있는 건물이다.
매주 일요일 정오 무렵. 혜화동성당에서 동성중고등학교 앞을 지나 대학로로 이어지는 좁은 길에서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필리핀 출신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몰려든 이 나라 노동자들과, 이들에게 음식이나 일용품을 팔러 온 노점상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이들을 위해 일요일에 문을 여는 길 건너편 은행은 고향에 돈을 보내려는 사람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필리핀에서 온 사람들의 주말 시간을 풍성하게 채우는 삶의 공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혜화동은 필리핀 출신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곳은 아니다. 이곳은 이국땅에서 자신들의 연대를 확인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일시적 이방 공간’이다. 그 공간 프로그램의 자생을 이끌어낸 구심점이 바로 혜화동성당이다.
본당 건물은 건축가 이희태(1925~1981)가 설계해 1960년 완공했다. 기둥이 없는 장방형(長方形)의 내부 공간, 볼트(vault·반원형의 지지 구조물) 없는 평천장, 간결한 제대(祭臺)의 모습은 지금 봐도 파격적이다. 가톨릭교회의 내부 공간은 중앙의 회중석(會衆席), 측면 복도, 폭이 좁고 깊은 제대로 구분된다. 회중석 천장은 일반적으로 측면 복도 천장보다 높으며, 제대도 별도의 천장 형태를 보인다. 혜화동성당은 이런 공간 분화의 정형을 과감히 탈피해 단순한 상자 모양을 가졌다. 밖에서 보면 교회인지 알아채기 쉽지 않을 정도로 입면 디자인이 모던하다. 조각가 김세중이 만든 육중한 사각형의 화강석 부조가 시선을 압도한다. 한국 가톨릭교회 건축을 폭넓게 연구한 김정신 단국대 건축학과 교수는 “혜화동성당 건축의 혁신성은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천명한 내적 쇄신과 현대화 정신에 부합한다”고 했다.
이희태는 같은 시기에 활동한 김수근과 김중업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건축가다. 절두산성당(1967), 국립극장(1972), 공주박물관(1973) 등의 작품은 ‘한국 전통 건축 요소의 현대화를 시도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디테일에 편중했다’는 비판을 함께 받았다. 그의 초기작인 혜화동성당에는 관습적인 양식을 탈피한 과감성이 돋보인다. 가톨릭교회는 대개 고전적 형태를 따른 공간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인데, 당시 혜화동성당 성직자들은 아마도 대단히 혁신적인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형태미를 넘어서는 이 건축물의 커다란 힘은 이방의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형성한 공간 프로그램에 있다. 일요일 오후 열리는 종교 의식은 흩어져서 생활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불러 모아 서울이라는 도시에 독특한 거리 풍경을 더하게 했다. 불과 반나절 동안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것은 틀림없이 도시 문화의 한 갈래 신선한 파생이다.
국내 거주 외국인이 인구의 2%인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단일 민족 문화의 성격이 강하다. 서울 혜화동성당이 일요일마다 만들고 있는 ‘필리핀 장터’는 다문화 정책이 나아갈 색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건축물 하나로 인해 발생한 사람들의 자연스런 활동이 거리와 도시 전체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건축의 본질은 외양에서 드러나는 물질적 형태가 아니라, 잘 비워낸 공간에 채워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가는 사용자의 삶을 조율하는 ‘공간의 안무가(按舞家)’다. 49년 전 이희태가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이 먼 훗날 이런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고 상상했을지 궁금하다.
김성홍·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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