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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omad의 글쓰기

도시 관문인가 소비공간인가 (2009.10)

공공-상업성 뒤섞인 강남의 관문-서울 서초구 반포동 고속터미널과 센트럴시티
2009.10.7 동아일보 A20면
http://news.donga.com/fbin/output?n=200910070146

황량한 벌판에 건물과 주차장만 덩그러니 놓인 서울시의 한 조감도(鳥瞰圖)가 25년 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을 실감케하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경부선과 호남․영동선의 고속터미널과 3개의 지하철 노선이 교차하는 서울고속터미널이다. 용산역, 서울역처럼 교통의 관문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거대한 복합상업건축을 포함한 연면적 39만m2의 센트럴시티로 몸집이 불었다. 주위에는 최근 입주한 최고가의 아파트단지와 서울강남성모병원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1975년 구자춘 서울시장은 강북의 교통체증을 해소하고 강남개발을 촉진하는 교두보로 강남고속터미널 건설계획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서민들은 시내버스를 타고 제1한강교와 제3한강교를 건널 수밖에 없었던 대중교통의 사각지대였다. 실개천이 흐르고 앞산이 가로막고 있었던 당시 풍경은 수도 서울의 종합터미널의 입지로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도시계획사를 쓴 서울시립대 손정목교수는 잠수교의 건설도 고속터미널과 강북을 연결하고자 했던 구시장의 의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985년 개통된 지하철3호선이 한강을 건너 곧바로 남진하지 않고 한참을 돌아간 것은 고속터미널 때문이었다.

동쪽의 지하1층 지상 9층 경부선터미널은 1981년 준공되었다. 그러나 서쪽의 1/3의 땅은 당시 혜성처럼 부상했던 신흥재벌 율산그룹에 매각되었다. 하지만 율산의 몰락으로 대형터미널 계획은 무산되었고 20년간 허름한 호남영동선 터미널로 남았다. 동서의 지역차별이 이곳에서도 상징적으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2000년 마침내 터미널, 백화점, 호텔, 컨벤션센터, 영화관, 서점, 식당, 상점을 포함하는 지하5층 지상33층의 센트럴시티가 완공되었다.

센트럴시티에는 서울을 들어오고 나가는 여행자, 지하를 이동하는 시민, 호텔의 투숙객, 백화점의 고객, 복합시설의 이용객, 이렇게 다섯 종류의 뚜렷한 움직임이 교차하는데 그 모습은 우리 도시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경부선터미널은 최초의 계획과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지만 여전히 주인공은 여행객이다.

그로부터 20년 후에 들어선 센트럴시티의 주인공은 백화점과 호텔의 고객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호남영동선 터미널로 가는 통로 좌우는 서점, 영화관, 상점, 식당이 빽빽이 들어차 미로와 같다. 백화점과 호텔사이에 샌드위치처럼 위축된 좁은 실내공간에 모든 동선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호텔로비와 거대한 백화점의 아트리움과 대조적이다. 외부공간도 비슷하다. 지하철 3호선 출구를 나오면 두 터미널의 중간지대에 있는 허름한 주차장과 만난다. 제일 좋은 외부공간은 호텔과 백화점의 전면공간과 VIP 주차장이다.

경부-호남 고속터미널은 20년의 시간적 간극이외에도 공공자본과 상업자본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센트럴시티는 재미건축가 김태수를 비롯한 미국과 일본의 전문 건축사사무소가 참여해 최고수준의 상업건축을 만들어냈다. 호텔과 백화점 설계는 기획단계부터 인테리어 설계까지 고도의 전문성과 분업화가 필요하다. 또한 여객공간과 소비공간을 분리하면서도 최대의 상업적 이윤을 이끌어내는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현재 센트럴시티는 분명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최근 들어선 주변의 대단위 아파트와 브랜드 가치를 서로 상승시키며 입지를 굳히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관문을 상업적 성공만으로 말할 수 있을까? 고대 이래 길은 상업건축과 함께 형성되었고, 상업건축은 길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19세기 중반 세계의 도시로 확산되었던 지붕을 덮은 길, 즉 아케이드를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마크 트웨인이 극찬한 것은 시민을 배려한 공공성 때문이었다.

견고하고 아름다우며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건축의 삼위일체를 만족시킨다고 하더라도 도시와 접목하는 조정자가 없을 때 건축은 불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도시속의 도시를 표방하는 센트럴시티는 가장 중요한 것을 결여하고 있다. 동서 터미널을 연결하는 아케이드, 높은 사평로와 낮은 신반포로를 연결하는 보행로, 지하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위한 광장이다. 건축의 방만 있고 도시의 광장은 없는 곳이 현재의 센트럴시티다.

최근 서울시 서초구는 우면산에서 반포천을 따라 한강에 이르는 보행로를 완성하기 위해 서리풀공원과 몽마르트 공원을 연결하는 ‘그린 아트교’를 설치하고 있다. 아쉽게도 센트럴시티를 우회해서 지난다. 서초구에서 서울시로, 소비공간에서 도시공간의 큰 틀로  눈을 돌려보는 것이 어떨까? 남쪽으로는 센트럴시티 다리를 지나 서래마을의 카페촌으로, 북으로는 반원길을 따라 한강시민공원으로 초대하는 역발상을 해보는 것이다. 그 것이 도시의 관문, 센트럴시티의 역할이 아닐까?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