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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omad의 글쓰기

건축과 관객: 소비문화의 상점건축 (1996.05)

建築과 觀客: 消費文化의 商店建築
Architecture and Spectator: Shop Architecture in the Culture of Consumption
大韓建築學會論文集 125號 通卷9119965月號
pp.53-62. 1996.5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Abstract
Designing a shop involves the dilemma of embracing the practical necessity of retailing and the concomitant demands for autonomous architectural exploration. The paper investigates a possibility of resolving this problem by looking at the way in which shop formulates the visual and spatial relationships between shoppers, commodity objects and sellers. Two contrasting approaches are portrayed. The first presupposes that there is a direct association between architectural form in isolation and its referent. This object-based approch reduces symbolism to iconography. The second is guided by the more abstract aim of restructuring the modes of moving, seeing, and being seen. This approch attempts to retrieve the symbolic from the material things and return them to the social dimensions of shopping activity. In this way, there is still a significiant critical design activity in the culture of consumption.

1. 서론

        脫近代主義 이후 서구의 건축사조가 한국건축의 토양에 쉽게 이식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 이론과 형태가 消費文化라는 더 광범위한 범주와 더불어 수입되어 왔기 때문이다. 70년대 이후 한국의 도시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대형유통시설들은 새로운 생활양식을 도시민에게 가져다 주었다. 이러한 유형의 건축이 한국 건축계의 오랜 전통논쟁의 범주 밖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소비’라는 생활양식이 전통논쟁으로는 다룰 수 없는 영역 밖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을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가치관과 사상의 표현 뿐만 아니라 문화의 場으로 볼 때 건축이론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지배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건축이 담론의 주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의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소비문화와 건축의 함수관계가 생소하다기 보다는 이러한 건축행위가 건축가가 추구하는 창작의도와 근본적으로 궤도를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목표는 상품의 판매이다. 고객의 입장에서 건축설계는 상품의 소비를 극대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건축 역시 상품처럼 텔레비전이나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 대중의 소비취향을 따르게 된다. 이는 건축형태가 항구성을 상실하고 ‘양식’의 문제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양식은 건축형태의 전체성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일시적이고 단편적이 된다.

        이점에서 소비라는 개념은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와 같은 商店建築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건축 전반에 관한 문제로 다가온다. 그러나 아도르노를 포함한 서구의 批判理論에 의한다면 우리시대의 건축행위나 비평행위가 차지할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대중문화를 저급한 문화로 간주하는 엘리트적 비평자세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脫近代主義理論에 의한다면 건축가는 ‘문화에서의 가치란 무엇인가?’ 혹은 ‘미적 판단 기준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등을 돌림으로써 건축가의 문화에 대한 비평적 자세를 무너뜨린다. 어떤 문화 내에 공존하는 가치의 차별성을 무시함으로써 예술행위의 독자성을 묵시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Featherstone, 1991).

        우리시대의 건축행위가 당위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이 양극과 동시에 긴장된 관계를 두고 있는 어떤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건축의 상품화에 대한 거부는 설계행위와 유리된 이론적 논쟁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또한 일관된 이론적 바탕이 없는 설계행위는 물리적 효용을 가장한 비논리성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러한 건축행위의 가능성을 商店設計의 실례를 통해 모색해 보고자 한다. 이는 상점의 기능이 언급한 긴장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보일 뿐 아니라 제한된 규모이지만 消費空間 (Retail Space) 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첫째, 본고는 소비공간이 消費文化理論에 의해 어떻게 묘사되고 있으며 그 이론들이 건축설계에 어떠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가를 논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론을 언급하는 주된 목적은 소비공간에서의 ‘視線의 교환 (Exchange of Looks)’ 에 관한 문제가 일관되게 다루어져 있고, 건축형태를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범주와 연계시킬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둘째, 본고는 이러한 이론적 틀을 바탕으로 회화에서의 ‘視覺 (Vision)’을 주제로한 실험들과 근대주의 이후 건축에 나타난 퇴행적 경향을 비교하고자 한다. 셋째, 두 개의 상점설계를 대비시킴으로써 건축에서의 ‘시각’의 문제가 갖는 가능성과 함정을 지적하고자 한다. 사이트 (SITE) 의 윌리웨어 전시판매점 (Williwear Showroom, New York, 1982) 과 치퍼필드 (David Chipperfield) 의 미야케 상점 (Issey Miyake Shop, London, 1985) 이 사례로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사례의 해석을 통해 나타난 두개의 상반된 설계방법론이 문화이론에서 논의되었던 관점과 어떤 관계를 이루는 지를 논하고, 상점설계 뿐만 아니라 건축설계의 전반에 걸쳐 어떠한 방법론적인 틀을 제공할 수 있는 지를 논하고자 한다.

2. 소비공간에서의 시각의 문제

        상품을 팔고 사는 것은 일상생활의 필수불가결한 행위이며, 그 행위의 기초적인 단위인 상점은 도시를 이루는 기본적 요소이다. 그러나 상점건축이 갖는 단순함과 일시성 때문에 건축이론과 역사에서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특히 서구의 건축설계 교육에서 상점을 포함한 소비건축은 엘리트적 교육경향에 ‘위해’한 존재로까지 여겨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반해 문화비평 분야에서는 오래전 부터 소비공간에 대한 광범위한 탐구가 있어 왔다. 벤자민 (Walter Benjamin) 은 19세기 파리의 쇼핑 아케이드와 백화점을 그 시대의 사화와 문화를 상징하는 諷喩 (Allegories) 로 읽은 바 있다. 벤자민에 의하면, 소비공간에 진열된 상품은 도시를 거니는 배회자 (flaneur) 에게 반쯤 잊혀진 환영을 불러 일으키는 원천이 된다 (Benjamin, 1978). 벤자민이 지칭하는 풍유는 수사학에서 정의되는 이중 코드의 메시지가 아니라 萬華鏡처럼 분절된 단편이다. 벤자민의 비평은 자본주의와 함께 급격히 변하는 19세기 유럽을 통찰하고 있지만, 그의 탐구대상이 예술작품이라는 상위개념이 아니라 일상의 진부한 소재라는 점에서 비평과 더불어 창작의 영역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

        벤자민 이후로 소비공간은 소비, 대중매체, 主體 (Subjectivity) 와 관련지어 문화비평가들에게 중요한 논의 대상이 된다. 19세기의 백화점은 상품이 物神化되는 ‘神殿’으로 그려지고, 고객과 판매인 사이의 대화는 점차 상품에 대한 고객의 無言의 시각적 욕구로 대체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Williams, 1982). 대량소비가 가시화된 2차대전후에는 소비공간에서의 시각의 문제는 더욱 강조된다. 소비공간속에서 주고 받는 시선은 상품과 더불어 ‘광경 (Spectacle)’ 을 연출한다. 화폐가 상품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등가물의 교환을 가능하게 했다면, 이 ‘광경’은 상품의 ‘효용가치’를 시각으로 치환시킨다 (Debord, 1970). 20세기 들어 등장한 쇼핑몰 (Shopping Mall) 은 각기 다른 영역에 속했던 ‘소비’와 ‘레저’를 통합한 새로운 공간형태이며, 쇼핑몰 속의 사람들은 상품의 실제적인 구매행위 없이도 시선을 주고 받으며 일종의 상징적 예식에 참가한다 (Shields, 1989). 소비공간의 시각에 관한 논의는 性의 문제와도 결부돠어 논해진다. 여성의 의상이나 미용과 관련된 상점에서는 여성의 남성에 대한 사회적 불균형이 시각적 요소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즉 이러한 소비공간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시선을 교환하게 한다기 보다는 다른 여성 혹은 남성의 시선의 대상이 되고자 하는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Nixon, 1992). 

        언급한 논의들이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것은 소비건축의 시대적 변화는 쇼핑 자체의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소비시대의 쇼핑은 상품의 ‘효용가치 (Use Value)’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상품의 ‘상징적 교환가치 (Symbolic Exchange Value)’ 를 획득하고자 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상품의 소비를 통하여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를 대체하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쇼핑은 상품의 실제적인 구매행위에 국한된다기 보다는 구매를 향한 욕구의 해소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고가 강조하려는 것은 소비행위의 시대적 변화가 아니라 이러한 변화의 과정이 건축이라는 구체적 매체에 내재해 있다는 사실이다. 소비공간 내에서의 ‘상품’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봄’과 ‘보임’ 관계는 건축공간이라는 매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즉 이러한 관계는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건축공간이 ‘의도적’으로 설정한 무한한 가능성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건축가는 소비문화에서 이러한 ‘시선의 교환’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설계에 적용시킬 것인가? 본고는 이 문제를 구체적 소비공간의 실례를 들어 논하기 이전에 ‘시선의 교환’에 관한 이론적 배경과 시각 예술에의 적용 방법론을 좀더 개괄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3. 視覺과 凝視

        시각의 문제를 객체와 주체간의 一對一의 대응으로 보는 서구의 기계적 세계관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철학적 논쟁에서 계속되어 왔지만 이를 인식론적 차원에서 문화적 차원으로 처음 끌어낸 것은 라칸(Jacques Lacan) 의 이론이다. 이런 논쟁이 있기 전까지 서구에서는 시각은 사물이 인간의 망막을 통해 인식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따라서 인간이 인식하는 사물의 상은 사물의 완전한 복사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세계관은 르레상스 건축을 구성하는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알베르티가 연구한 기하학적 투시도법에서 모든 광경은 관찰자의 눈으로 집중되어 있다. 투시도법에 의한 건축론은 모든 시각적 요소를 한 지점으로 고정시킴으로써 건축공간이 지니는 무한한 시각적 가능성을 고착화시킨다. 라칸은 점과 점을 연결하는 이러한 ‘시각’ 을 반박한다. ‘시각’이란 어떤 사회문화적 요소에 의해 방해 받지 않고 사물이 인간의 망막에 반사되는 순수한 감각적 경험을 의미한다. 즉 사물을 바라보는 ‘내’가 없으면 ‘시각’이란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라칸의 입장에서 ‘나’의 존재란 사회와 문화라는 영역의 일부이며, 그 영역은 ‘나’의 존재의 유무와 관계없이 존재해 왔고 또 존재할 것이다. 즉 인간의 망막과 세계 사이에는 무수한 시선이 만들어 내는 網狀組織이 있다. ‘내’가 무엇인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이러한 망상조직과 調律하는 것이다. 라칸의 이론적 틀에 의하면 주체는 시각적 영역의 중심에 서 있지도 않고, 그 시각적 영역을 통과하는 시선을 통제할 수도 없다. 즉 보는 ‘나’는 동시에 타자의 보임의 대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잠재적이고 집합적인 타자의 시선을 라칸은 凝視 (Gaze) 라고 정의한다 (Lacan, 1978: 67-119).

        라칸의 이론은 정신분석학의 범주를 떠나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한다. 라칸이 반박하는 ‘시각’의 관점으로 보면 건축은 관찰자로 부터 떨어져 있는 하나의 ‘보임’의 대상이다. 이때 관찰자는 건축가 자신일 수도 있고, 불특정의 사용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관찰자는 건축이 속한 ‘세계’의 밖에서 그 ‘세계’를 들여다 보거나, 그 ‘세계’ 안에 있다 하더라도 ‘보임’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건축은 항상 주체인 관찰자의 시각적 대상으로 존재하는 객체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은 건축이나 도시의 인식론적 연구에서 쉽게 발견된다. 린치 (Kevin Lynch) 는 도시가 쉽게 인식되고 기억에 남게 하기 위해서는 다섯가지의 요소가 고려되어야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중 가장 강조된 요소는 랜드마크였다. 린치의 이론에 따르면 도시는 무수한 시각적 대상물이 그물처럼 엉켜있는 조직으로서 그중 시각적으로 압도적인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도시의 像 (Imageability) 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Lynch, 1960). 린치의 연구 의도는 보스톤과 같은 보행자 중심의 도시에서의 건축외관을 강조하려는 것이지만, 도시의 외부공간이 갖는 사회성을 간과함으로써 건축을 기념비로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듀랑 (J.N.L. Durand) 의 영향을 받은 탈근대주의의 유형학 (Typology) 연구에서 다른 방식으로 건축에 적용된다. 건축형태에 내재해 있는 원형을 찾아내기 보다는 이러한 접근론은 기능에 의해 분리된 건축의 각 요소의 재생산 가능성을 강조한다 (Vidler, 1977). 이런 관점으로 보면 건축공간은 지붕, 기둥, 창과 같은 요소들이 결합하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일 따름이다. 설계행위에서 건축요소와 건축공간은 전후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탈근대주의 이후의 다양한 조형실험들은 그 이론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전개방법에서 건축을 이러한 ‘대상’으로 보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라칸의 이론을 건축에 적용한다면 설계행위에서 전후관계란 없다. 설계란 ‘나’와 ‘건축’과의 관계와 ‘나’와 ‘타자’간의 관계를 동시에 설정하는 것이므로 ‘건축공간’은 껍질안의 空洞이 아니다. ‘건축공간’은 형태에 의해 가시화되는 시각적, 사회적 場이다. ‘나’는 건축이라는 ‘세계’를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참여한다. ‘나’의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건축공간을 탐구한다. 건축은 무한한 ‘봄’과 ‘보임’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로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특정한 위치나 부분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조감도나 실내투시도는 무한한 가능성의 하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포착한 것일 뿐이다. 본고가 주장하는 이러한 관점은 건축형태를 건축외적인 영역과 독립시켜 묘사, 해석하는 관점이나 건축형태를 과학적인 분석대상으로 간주하는 관점과는 구별 되어야 한다.  

        객체와 주체간의 일방적 관계를 거부하고 예술품과 감상자와의 상호성을 인식하려는 시도는 회화에서 먼저 나타난다. 마그리뜨 (Rene Magritte) 의 ‘상식 (Common Sense, 1945-6: 그림 1.1)’ 은 좋은 예이다. 정물화에서 일반적으로 2차원적으로 표현되는 과일과 그릇은 이 그림에서는 빈 캔바스 위에 놓여져 있다. 과일과 그릇은 마치 2차원의 캔바스 위로 돌출했거나 그 속으로 들어 가려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과 환영을 역설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림 자체는 단순히 2차원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캔바스와 정물과의 관계, 그리고 그림과 그림 밖의 세계라는 두가지의 역설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마그리뜨의 다른 그림 ‘두 가지의 비밀 (The Two Mysteries, 1966; 그림 1.2)’ 을 살펴보자. 우선 ‘이것은 담뱃대가 아니다 (Ceci n'est pas une pipe.)’ 라는 문장은 ‘캔바스 속의 담뱃대는 진짜가 아니라 그려진 담뱃대’라고 일차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감상자의 시선이 캔바스에서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한 다른 담뱃대로 옮겨지는 순간 그는 ‘이것이 진짜 담뱃대이고 캔바스 속의 것은 그림일 뿐이다’ 라고 해석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개의 담뱃대가 그림 속의 정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캔바스 속의 문장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 그림이 표현하고자 하는 시각적 은유는 감상자가 그림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간의 관계를 인식할때 만이 그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감상자는 ‘현실과 환영의 게임’에 참여하는 셈이다. 마그리뜨는 감상자를 그림속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역설적으로 현실과 환영의 존재론적 차이, 그리고 언어와 부호의 부적합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마그리뜨가 표현하고자 했던 사물과 감상자간의 역설적 관계는 벨라즈꿰즈 (Diego Velazquez) 의 라 메니나스 (Las Meninas, 1656: 그림 2) 에서는 그림속의 등장인물과 감상자간의 관계로 나타난다. 미쉘 푸코 (Michel Foucault) 는 그의 저서 ‘사물의 질서 (The Order of Things)’ 의 서두에서 이 그림을 해석하는 데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Foucault, 1970: 3-16). 푸코에 의하면 서구의 전통적 표현방법에서 사물을 분류하거나 그 질서를 부여하는 주체는 ‘지식’ 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즉 주체는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림의 감상자인 주체가 벨라즈꿰즈의 라 메니나스에서 ‘봄’과 ‘보임’의 대상으로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푸코에게는 이 그림이 전통적 표현방식의 붕괴를 우회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회화가 이러한 새로운 시각적 차원을 도입하고 실험하고 있는 반면 근대주의 이후 건축이론과 설계에서 건축형태를 ‘보임’의 대상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근대주의를 포함해 그 이전의 사조가 건축의 외형과 공간구조를 통합적으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논의되었던 반면 탈근대주의이후의 이론과 비평에서 이러한 통합적 접근론이 퇴조하고 있는 것은 위의 현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근대주의가 갖는 공간성에 대한 반동은 건축형태의 분절화라는 현상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본고가 제시하는 ‘시각’으로 부터 ‘응시’로의 전환은 ‘形’와 ‘공간’을 이분법적으로 가르는 이러한 퇴행적 접근론을 극복하려는 데에 있다. 따라서  문제는 설계과정에서 이 두가지의 현상을 어떻게 하나의 실재로 볼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즉 ‘형’과 ‘공간’을 ‘봄’과 ‘보임’을 가능하게 하는 추상화된 관계로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4. 두개의 소비공간

        윌리웨어 전시판매점 (Williwear Showroom) 의 입구는 건축가 그룹 사이트 (SITE) 의 상표인 ‘무너져 내리는 벽’ 으로 시작된다. 접수부의 뒷 벽면은 격자모양의 벽돌과 돌로 덮혀 있다. 매장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아치형의 문이 있고 사람의 키보다 조금 높은 벽 뒤에는 모델의 탈의실이 위치하고 있다. 매장의 주변은 모델이 거닐 수 있는 통로가 있고 가운데에는 패션 행렬을 지켜 볼 수 있도록 콘크리트와 유리로 만들어진 고객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져 있다

[상식 (Common Sense), 르네 마그리뜨 (Rene Magritte), 1945-46] [두 가지의 비밀 (The Two Mysteries), 르네 마그리뜨 (Rene Magritte), 1966 (자료: Douglas R. Hofstadter, Godel, Escher, Bach An Eternal Golden Braid, Vintage Books, 1979.]
[라 메니나스 (Las Meninas) 디에고 벨라즈꿰즈 (Diego Velazquez), 1656 (자료: D. Brown, The World of Velazquez 1599-1660,
New York: Time-Life Books, p.178.]

        매장에 들어서서 받는 첫 인상은 도시와의 시각적 유사성이다. 격자모양의 벽면, 배수관, 쓰레기통 등은 뉴욕 뒷골목의 거친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의 가장 핵심적 매체는 2차원의 벽면을 이용한 부조 (浮彫) 이다. 이 때문에 미완성인 것 처럼 보이는 어두운 천장은 벽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요소로 느껴진다. 전개도처럼 펼쳐진 사이트의 벽면 스케치를 보면 이 점은 확연해 진다. 거리의 소품이 조각되거나 매달려 있는 벽 때문에 쇼룸의 중앙은 거리의 ‘세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다른 ‘세계’가 된다. 그러나 사이트가 구사하는 건축언어는 도시의 광경을 단순히 복제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는다. 회색의 도료로 덮혀진 사면의 벽 때문에 내부는 도심의 뒷골목을 초현실주의적으로 옮겨 놓은 듯 느껴진다. 

        전시판매점은 행위와 관람을 전제로 한다. 즉 ‘배우’과 배우를 바라보는 ‘관객’을 설정한다. 사이트에게 뉴욕 거리는 배우과 관객이 공존하는 場이다.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은 스스로 배우이자 관객이 되는 것이다. 사이트는 뉴욕 거리에서 보이는 행위와 관람을 매장 속으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이 점에서 사이트의 방법론은 근본적으로 유추 (類推: Analogy) 이다. 매장의 벽은 가로로 대치되고 쇼는 거리를 메우는 끊임없는 패션행렬로 대치된다. 그리고 그 유추의 매체는 기능상 분리될 수 있는 거리의 소품들이 된다.  

          사이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벽면을 이용한 특이한 건축요소이다. 이런 조형실험을 통해서 건축형태의 상징성을 부각하고 기능주의의 모순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실험이 내부와는 독립된 표피에 머물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여기에는 건축의 ‘인간화’는 특이하면서도 대중에게 가장 호소력이 있는 조상을 효과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이루어 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이트의 구성원인 와인즈 (James Wines) 는 그의 저서에서 상점건축에 관한 자신들의 이론을 전개한 바 있다. 그들에게 상점건축의 내부공간은 정체된 유형으로 읽혀진다. 반면 내부공간을 감싸고 있는 표피는 편의에 따라 변화를 거듭한다. 그들은 표리가 분리된 이러한 유형의 건축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내부공간은 기능에 철저히 맡긴 뒤 표피를 실험대상으로 삼는다 (Wines, 1987: 145).

        치퍼필드가 설계한 미야케 상점은 런던의 쇼핑가인 조셉구역 (Joseph Territory) 에 자리잡고 있다. 윌리웨어 전시판매점이 시각적으로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있다면 미야케 상점은 거리를 향해 그 내부를 완전히 드러낸다. 내부의 구성은 아주 단순하다. 입구는 곧바로 접수부에 연결되고 접수부의 뒷쪽에 위치한 탈의실은 대리석 표면의 벽으로 분리된다. 왼쪽으로 접수부의 바닥보다 조금 높은 장방형의 매장이 이어진다 (그림 4.1-4.3). 매장에는 벽쪽에 부착된 일렬의 옷걸이와 가운데의 작은 전시대만 있을 뿐 공간을 세분화하는 요소가 없으므로 지극히 절제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성의 단순함과 재료와 색상의 섬세한 끝처리는 이 상점을 가장 독특하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미야케 상점의 미학은 미니멀리즘 (Minimalism) 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건축의 복합성을 양식의 문제로 격하시키는 함정에 빠진다.

        상점의 기능을 요약한다면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상품의 진열이고, 둘째는 경제적 목적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따라서 효용의 측면에서 상품과 고객 그리고 점원을 위한 어떤 합리적 공간구성을 전제로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입구로부터 상점의 깊숙한 곳으로 진입하면서 고객과 점원과의 관계는 일시적인 형태에서 점차 적극적인 형태로 전개될 수 있다. 이때 구매의지가 없는 고객은 부담없이 입구쪽에 진열된 상품을 고를 수 있는 반면, 적극적인 구매의지를 가진 고객은 곧바로 상점의 깊숙한 곳에서 점원의 도움을 받으며 구매를 할 수 있다. 즉 배치는 상품과 고객 그리고 점원과의 관계를 물리적 형태로 표현한 것이 된다. 北美에서 유행하는 대형 수퍼마켓이나 창고형 상점들은 이런 합리적 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Green, 1986: 21-22).

        미야케 상점의 특이성는 이러한 합리성을 벗어 나는데 있다. 우선 상품을 품목 혹은 테마로 구별하거나 고객을 차별화 시키는 시각적 장치가 제거되어 있다. 매장으로 올라선 순간 고객은 곧바로 점원의 시선에 놓이게 되므로 이 영역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구매에 대한 적극적 표현이 된다. 매장의 전후방을 거닐며 상품을 고르는 행위는 상품을 사는 행위 그 자체만큼 중요하게 된다. 즉 쇼핑의 의미는 구매로 인해 얻어지는 경제적 효용에 있을 뿐만 아니라 구매를 향한 상징적인 예식에 참가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고객 스스로가 배우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야케 상점의 접수부에 들어선 고객은 상품을 고르기에 앞서 단상의 다른 고객을 바라보는 관객이 된다. 접수부의 긴 의자는 이러한 관객의 역할을 고무시킨다.

[윌리웨어 전시판매점 (Williwear Showroom) 뉴욕, 1982; 평면도, 실내전경 사이트 (Site: James Wines, Allison Sky, Michelle) (자료: Progressive Architecture, 9:82, p.230.)]
[이세이 미야케 상점 (Issey Miyake Shop), 런던, 1985 평면도, 악소노메트릭, 실내전경 데이빗 치퍼필드, 케니츠 암스트롱 (David Chipperfield & Kenneth Armstrong) (자료: Brigitte Fitoussi, Ed., (Eng. Trans. by Lois Nesbitt), Showrooms,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1988, pp.84-87.)]

        윌리웨어가 ‘도시’의 유추를 구사한다면 미야케는 ‘극장’의 유추를 구사한다. 전자에서 고객이 거리를 활보하는 행인을 엿보는 또 다른 ‘행인’이 된다면 후자에서 고객은 무대 위의 ‘배우’와 객석의 ‘관객’의 두 역할을 부여 받는다. 후자의 유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무대와 객석은 거리를 향햬 동시에 열려 있으므로 내부의 배우와 관객의 주체-객체의 관계는 외부의 제삼자 때문에 깨어진다. 공연이 진행되는 극장의 단면을 바라보는 개념적 ‘타자’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은 앞에서 예로 든 벨라즈꿰즈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라 메니나스에서 화가와 모델과의 관계는 그림 밖의 감상자 때문에 동시에 ‘보임’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감상자가 화가 앞에 놓인 캔바스를 볼 수 없으므로 화가가 그리는 대상이 모호해진다. 벨라즈꿰즈는 그림 밖의 감상자가 그림 속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다. 따라서 화가, 모델, 감상자간의 삼각관계는 회화가 지니는 불가성을 역설적으로 그리고 있는 셈이다. 

        라 메니나스와 미야케 상점이 설정한 삼각관계는 어떤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주장이 허구임을 보여준다. 바라보는 ‘나’의 위치에 따라 그 대상은 모습을 달리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완전히 주관적 문제, 즉 견해로 귀결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3자의 설정은 主客의 부정이 아니라 主客 사이의 일방적 관계를 상호관계로 극복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5. 具象과 推象

        그렇다면 미야케의 ‘극장유추’는 윌리웨어 의 ‘도시유추’ 보다 더 고도의 설계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이론의 우월함은 곧 건축행위의 차별화로 이어지는가? 이 질문이 철학적 담론에서 제기되었을 때 그 대답은 철학적 관점에 따라 ‘그렇다’ 혹은 ‘그 반대이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의 담론에서 이론의 우위를 논하는 것은 지극히 비건축적인 행위일 뿐이다. 건축가의 설계이론은 체계적인 철학연구에서 시작될 수도 있고 日常의 현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동기가 건축이라는 매체를 통해 物化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윌리웨어와 미야케가 구사하는 유추의 기법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의 ‘도시유추’는 도시의 像을 구체적 형태로 이식하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설계의도는 대중에게 쉽고도 명백하게 전달된다. 효과를 더 풍부하고 한편으로 모호하게 하기 위해 사이트는 인용된 형태를 변형시키고 중첩시킨다. ‘인용’이 먼저이고 ‘변형’이 다음이다. 반면 후자의 ‘극장유추’는 극장이 갖는 구체적 특성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미야케가 지니는 劇的인 요소는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무대장치나 객석의 모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와 객석사이의 추상적 공간관계에 있다. 우선 장방형의 매장은 거리를 향한 축성 즉 ‘정면성’ 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정면성’은 매장과 접수부를 잇는 또 다른 축성 즉 ‘측면성’ 때문에 약화된다. 이러한 양면성은 계단형의 ‘단면’을 통해 거리로 노출된다 (그림 4.2). 치퍼필드가 구사하는 건축언어는 입면, 기둥, 혹은 장식이 아니라 공간의 분절, 가감, 돌출, 후퇴, 분리 등이다. 미야케 상점을 ‘극장’으로 읽기 위해서는 이러한 추상적 형태와 극적인 행위를 연결시키는 개념적 재구성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미야케 상점의 힘은 바로 이러한 추상성으로 유발되는 隱喩에 있다. 고착화된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섬세하고 치밀한 재료와 색상은 이러한 隱喩를 더 풍부하게 하는 촉매제이다. 윌리웨어와 달리 미야케에서는 ‘구성’이 먼저이고 ‘정제 (精製)’가 다음인 것이다.

        윌리웨어를 口號에 비유한다면 미야케는 詩이다. 구호는 부르짖는 사람의 감정이나 기법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지만 그 힘의 원천은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갖는 명백함에 있다. 따라서 구호는 대중에게 강하고 직설적으로 파급된다. 반면 시는 그것이 내포하는 다양한 의미때문에 힘을 더한다. 시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느껴지면 더이상 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시가 독자의 주관에만 놓여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시는 치밀한 내적 질서를 바탕으로 한다. 구호는 複製를 전제로 하고, 시는 재구성을 전제로 한다.

6. 결론: 소비문화와 건축의 상품화

        소비시대에 건축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口號처럼 되는 것이다. 건축이 개인이나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건축행위는 그 문화를 비판적 각도에서 보는 힘을 상실한다. 집단의 동일성을 중요시하는 문화상황에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건축행위의 당위성는 하나의 구호에 쉽게 식상하는 대중을 향해 ‘새로운’ 구호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데에 집중된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움’은 어떤 구조적 변환에 있지 않고 표피적 치장에 국한된다. 이때 ‘건축’과 ‘상품’과의 긴장된 관계는 깨어진다.

        본고가 미야케 상점의 해석을 통해 제시하는  ‘凝視의 建築化’는 상품화에 맞서는 하나의 설계방법론이다. 이 방법론이 ‘건축’과 ‘상품’과의 긴장된 관계에서 이루어 진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방법론은 시간, 공간적으로 영속적 실체인 ‘건축’을 비 영속적인 ‘행위’로 읽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때 ‘행위’는 건축의 일차적 기능을 실용적 영역에서 ‘日常의 禮式’으로 상승시키는 시도이다. 따라서 ‘사용’, ‘거주’와 유리된 상징주의와는 궤도를 달리한다. 둘째, 이러한 ‘행위’를 추상적 관계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 관계는 대중매체가 쉽게 이미지로 변환시킬 수 없는 점, 선, 면 등의 기초적 형태를 띨 뿐이다. 소비문화가 지향하는 이미지의 단편화와 복제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건축가에게 가장 기본적이며 절실한 질문은 건축형태를 구성하는 방법론으로 귀결된다. 창작의도가 아무리 형이상학적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건축가가 구사하는 매체는 물리적 형태이기 때문이다. 비 물리적인 사상과 관점을 물리적인 형태로 변환시킨다는 것은 창작과정이 그만큼 독자성을 지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설계는 기능을 초월하여 다양한 “유형을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Peponis, 1993: 57). 따라서 설계방법론이란 형이상학적인 사상과 가치를 제공하는 것도, 설계과정을 도표로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설계방법론이란 형태를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이론적, 방법론적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위에서 요약한 설계방법론의 두가지 특성은 상점설계에 국한되지 않고 건축설계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 토대를 획득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을 건축가 개개인이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구체적인 설계조건과 건축가의 개성이나 역량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건축이 그 시대의 경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면서 독자적 가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자는 대중을 향해 건축을 열어야 하는 것이고 후자는 건축의 좁은 문으로 대중을 끌어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의 요구가 점차 멀어지고 있는 소비시대에 건축에 대한 일방적 평가는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이 상충된 요구는 역설적으로 건축이론과 창작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원천이다. 이론은 이러한 모순이 해소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고, 창작은 이러한 가능성을 실험함으로써 우리가 속해 있는 문화를 항상 한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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