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도시 읽는 도시
건축인 POAR 9810, pp.54-56.
까밀로 지떼(Camillo Sitte)에 대한 알도 로시(Aldo Rossi)의 비판은 현대 건축가가 갖고 있는 都市觀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떼는 격자형 도시구조를 미학이 배제된 기술적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그가 이상으로 삼은 도시의 모습은 중세도시의 불규칙한 길이나 광장 같은 부분적인 요소였다. 로시는 지떼의 관점은 도시가 지니는 총체성을 단순히 인식(Legibility)의 문제로 격하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로시의 유형분석은 도시에 대한 공통분모를 도출하였다기보다는 자기언어구축을 위한 실험으로 귀착된다. 로시에게 도시는 건축언어를 찾을 수 있는 개인적인 “사전”이었던 셈이다. 다만 로시는 도시의 질서를 피상적 형태나 이미지로 격하시키는 탈근대주의의 단순함은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건축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건축은 주변의 맥락에 부합되게...” 식의 표현은 주위의 건물과 높이를 같게 하자는 것인지, 주변건물의 재료나 색상을 같게 하자는 것인지 지극히 모호할 때가 많다. 로시의 都市觀에는 미치지 못할뿐더러 지떼의 복고적 미학론을 닮은 비논리적인 주장 정도일 뿐이다. 도시는 건축의 시각적 배경 이상이 아닌 셈이다. 반면 건축과 도시의 제도와 법령이 반도시적인 건축을 양산하도록 부추키는 경우에도 비판의 소리를 내지 못했다. 사실 전문화된 지식과 방법론을 축적한 北美의 도시계획 앞에 한국 건축학계는 불행히도 이에 대응할 만한 어떠한 이론적인 토대도 만들어 오지 못했다. 도시계획학 분야가 정치 사회영역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을 때 건축가는 저널리즘의 도움을 받아 개인적으로는 건재하였지만 학문으로서의 건축은 일상영역으로부터 점차 소외되어 왔다. 특히 지난해 이후경제위기상황에서 도시와 건축을 연계하는 이론을 건축학계에서 말한다는 것은 차라리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지난 5월과 7월 학술회의에 참가하기 잠시 머물렀던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와 호주의 시드니는 도시가 지닌 매력과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였다. 우리에게 리오는 지구 저편에 자리잡은 변방에 있는 도시이고, 시드니는 환태평양권내에 있어서 북미나 유럽보다도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운치가 있는 “남국의 도시” 이상의 학술적 매력은 끌지 못했던 곳이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졌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호주는 영국 범죄인을 수용한 유배의 땅에서 출발하여 현재도 영연방인 국가이다. 두 도시에서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자생문화”가 아닌 유럽대륙으로부터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해로를 통하여 받은 “수입문화“를 토대로 건설된 도시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도시는 유럽과 북미의 근대주의가 제3세계로 본격적으로 이식되기 시작하였던 1950년대에는 이미 100여년 이상의 도시계획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호주는 1913년에 수도 캔버라를 계획한 반면, 브라질은 근대주의의 유입 시기인 1957년에 수도 브라질리아를 계획한 점이다. 시드니는 국제주의양식으로 대변되는 ”건축양식“이라는 충격을 흡수할 도시구조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리오에 있어서 근대주의는 건축과 도시구조를 동시에 실험하는 기회였던 셈이다.
리오회의에는 건축학자가 주로 참여하였지만 도시하부구조, 도시설계, 지속가능성 등의 도시와 관련된 논문도 다수 발표되었다. 본 학술회의의 취지는 건축과 도시 등 인문환경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토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시드니 학회 역시 도시계획학자, 건축학자, 조경학자, 역사학자 등이 참여하는 異分野제휴(Inter-disciplinary)의 성격을 띄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은 건축과 도시의 학문영역이 세분화되고 이질화되면서도 교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오회의 개회 리셉션에는 90세가 넘은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가 부축을 받고 스케치를 하는 열정을 보여주었고 폐회 리셉션에는 건축가 출신인 리오시장이 학술회의 참가자를 市宮(Pacacio da Cidade)으로 초대하였다. 시드니회의에서는 시드니의회(Sydney City Council)가 학술회의 참가자와 시민을 시청사로 초대하여 도시계획에 관한 특강과 공개질의를 하는 場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도시설계의 사례였다. 시드니 시청사에는 건축물의 디테일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도시모형이 상시 설치되어 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 그 부분을 갈아 끼운다. 폐기된 철도수리공장을 최첨단 산업의 연구업무시설로 바꾼 ATP(Australian Technology Park)는 정부, 학계, 건축가가 만든 최대의 걸작품이었다.
도시의 매력과 힘은 물리적, 문화적 총체성이다. 건축은 독자적인 질서와 그에 따르는 미학을 지니지만 도시라는 틀에서 만들어진다. 도시는 결코 건축의 배경이 아니라 건축이라는 요소로 짜여진 망상조직이다. 건축가는 도시 위에 집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시라는 망상조직의 한 부분을 연결하는 것이다. 근대주의와 함께 유럽과 북미에서 실험하였던 새로운 건축유형은 이러한 망상조직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였지 결코 망상조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리오와 시드니가 지닌 매력과 힘은 오랜 도시역사에서 축적된 다양하고 깊이있는 문화와 흔적 그리고 단절되지 않은 가운데 계속되는 건축과 도시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함과 실험이 혼돈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도시를 지배하는 전체적 질서 때문이다.
한국에는 불행히도 1960년대에 건축계의 대표주자였던 김수근과 김중업이 서구의 근대주의를 실험한 반면 새로운 도시에 대한 실험은 1970년대까지 없었다. 이점에서 1960년대 이후 건축계의 담론에 꼬리처럼 따라 붙었던 “전통논쟁”은 도시라는 틀이 완전히 배제된 “양식”논쟁 이었다. 전통논쟁에 불을 당긴 김수근과 강봉진의 “박물관”은 조선 건국이래 500년 이상 우리의 도시에는 없었던 건축유형이었다. “박물관”이라는 건축물 자체가,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술품이 지닌 문화적 교육적 가치나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건축공간 자체가 “전통”이라는 개념밖에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궁궐, 사찰, 주택 등 모든 유형의 전통건축에서 외부공간과 통하지 않는 내부공간의 연결은 전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전시실로 연결된 박물관을 대상으로 한 전통논쟁은 건축의 핵심이 배제한 문화 이데올로기 논쟁이었다. 내용이 빠진 표피논쟁은 형식은 달리하지만 건축 저널리즘에게는 여전히 매력 있는 주제이다. “어느 건축가의 형태가 어느 건축가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혹은 유사하다...“ 식의 비평은 그 단적인 예다. ”재료의 물성 자체가 선험적 의미를 지닌다...“식의 주장은 전자와 형식은 달리하지만 역시 ”한국성“논쟁의 핵심에서는 벗어나 있다. 모두 ”도시“라는 틀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도시는 그저 건축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날개를 붙잡는 올가미일 뿐이다.
건축학과 도시학의 분리는 북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건축과 도시의 중간쯤에 있었던 도시설계(Urban Design)는 대부분의 미국대학에서 사라지는 추세다. 경제학, 통계학 등의 학문으로부터 수혈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도시계획학에 비해서 건축학은 비록 철학, 미학, 언어학 등의 인문학을 도입하였지만 건축가 개인의 건축언어를 논리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건축언어의 “사유화”는 “건축은 독자적이다 (Architecture is autonomous)” 라고 주장한 근대주의 아방가르드와 맥락을 같이하지만 도시와 건축의 분리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이러한 분리현상이 건축이론을 도시라는 틀에 연결시켜 보지 못했던 한국과 같은 제3세계에 들어오면 가속이 붙는다. 건축행위를 제한하는 제도와 법령은 있지만 도시의 총체적 청사진이 없는 도시계획은 정치논리나 경제논리에 의해 좌우되기가 쉽다. 이 경우 공공영역에 참여할 지식이나 경험을 건축계는 축적하지 못한 채 민간용역에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된다. 정부조직에서의 기술천대와 뿌리깊은 부패구조는 의식있는 건축들의 제도권 진입을 어렵게 해왔다. 특히 땅과 집이 삶의 공간으로서보다도 투자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한국사회에서는 도시의 장기적 청사진을 공론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난해 말 이후의 한국의 경제적 위기상황은 건축인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지만 팽창과 성장에 숨을 돌릴 수조차 없었던 우리의 도시에게는 어쩌면 좋은 휴면기 일수 있다. 이제 건축계에서는 감정적 비판이나 거창한 구호보다도 건축과 도시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나와야한다. 건축계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학술단체, 모임 등을 통한 공감대형성이지만 이러한 활동이 지금까지 한국 건축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연, 학연 등을 중심으로 한 네포티즘(nepotism)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론적 논쟁을 바탕으로 하는 학파로 틀이 자연스럽게 짜져야한다. 건축과 도시환경에 대한 정치, 사회적 프로퍼갠더는 있으나, 좀더 좋게 말해서, “의식”과 “의지”와 그것을 실현할 “대상”은 있으나 구체적인 이론적 틀을 준비하지 않은 채 집단화하는 것은 또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학자의 연구와 건축가의 실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나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이론”이 건축행위나 건축물에 붙어있는 난해하고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이라는 통념을 허물어야한다. “모든 해석은 관점을 필요로 하고 객관적인 의미에서 관점은 이론이다. 모든 이론은 또 다른 이론, 즉 다른 제3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는 칼 포퍼의 주장은 바로 한국 건축학계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말이다. 지금이 그러한 연구와 실험의 최적기이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건축인 POAR 9810, pp.54-56.
까밀로 지떼(Camillo Sitte)에 대한 알도 로시(Aldo Rossi)의 비판은 현대 건축가가 갖고 있는 都市觀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떼는 격자형 도시구조를 미학이 배제된 기술적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그가 이상으로 삼은 도시의 모습은 중세도시의 불규칙한 길이나 광장 같은 부분적인 요소였다. 로시는 지떼의 관점은 도시가 지니는 총체성을 단순히 인식(Legibility)의 문제로 격하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로시의 유형분석은 도시에 대한 공통분모를 도출하였다기보다는 자기언어구축을 위한 실험으로 귀착된다. 로시에게 도시는 건축언어를 찾을 수 있는 개인적인 “사전”이었던 셈이다. 다만 로시는 도시의 질서를 피상적 형태나 이미지로 격하시키는 탈근대주의의 단순함은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건축계에서 흔히 통용되는 “건축은 주변의 맥락에 부합되게...” 식의 표현은 주위의 건물과 높이를 같게 하자는 것인지, 주변건물의 재료나 색상을 같게 하자는 것인지 지극히 모호할 때가 많다. 로시의 都市觀에는 미치지 못할뿐더러 지떼의 복고적 미학론을 닮은 비논리적인 주장 정도일 뿐이다. 도시는 건축의 시각적 배경 이상이 아닌 셈이다. 반면 건축과 도시의 제도와 법령이 반도시적인 건축을 양산하도록 부추키는 경우에도 비판의 소리를 내지 못했다. 사실 전문화된 지식과 방법론을 축적한 北美의 도시계획 앞에 한국 건축학계는 불행히도 이에 대응할 만한 어떠한 이론적인 토대도 만들어 오지 못했다. 도시계획학 분야가 정치 사회영역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을 때 건축가는 저널리즘의 도움을 받아 개인적으로는 건재하였지만 학문으로서의 건축은 일상영역으로부터 점차 소외되어 왔다. 특히 지난해 이후경제위기상황에서 도시와 건축을 연계하는 이론을 건축학계에서 말한다는 것은 차라리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지난 5월과 7월 학술회의에 참가하기 잠시 머물렀던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와 호주의 시드니는 도시가 지닌 매력과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였다. 우리에게 리오는 지구 저편에 자리잡은 변방에 있는 도시이고, 시드니는 환태평양권내에 있어서 북미나 유럽보다도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운치가 있는 “남국의 도시” 이상의 학술적 매력은 끌지 못했던 곳이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졌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호주는 영국 범죄인을 수용한 유배의 땅에서 출발하여 현재도 영연방인 국가이다. 두 도시에서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되는데 “자생문화”가 아닌 유럽대륙으로부터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해로를 통하여 받은 “수입문화“를 토대로 건설된 도시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도시는 유럽과 북미의 근대주의가 제3세계로 본격적으로 이식되기 시작하였던 1950년대에는 이미 100여년 이상의 도시계획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호주는 1913년에 수도 캔버라를 계획한 반면, 브라질은 근대주의의 유입 시기인 1957년에 수도 브라질리아를 계획한 점이다. 시드니는 국제주의양식으로 대변되는 ”건축양식“이라는 충격을 흡수할 도시구조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리오에 있어서 근대주의는 건축과 도시구조를 동시에 실험하는 기회였던 셈이다.
리오회의에는 건축학자가 주로 참여하였지만 도시하부구조, 도시설계, 지속가능성 등의 도시와 관련된 논문도 다수 발표되었다. 본 학술회의의 취지는 건축과 도시 등 인문환경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토론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시드니 학회 역시 도시계획학자, 건축학자, 조경학자, 역사학자 등이 참여하는 異分野제휴(Inter-disciplinary)의 성격을 띄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서 토론을 할 수 있는 것은 건축과 도시의 학문영역이 세분화되고 이질화되면서도 교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오회의 개회 리셉션에는 90세가 넘은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가 부축을 받고 스케치를 하는 열정을 보여주었고 폐회 리셉션에는 건축가 출신인 리오시장이 학술회의 참가자를 市宮(Pacacio da Cidade)으로 초대하였다. 시드니회의에서는 시드니의회(Sydney City Council)가 학술회의 참가자와 시민을 시청사로 초대하여 도시계획에 관한 특강과 공개질의를 하는 場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도시설계의 사례였다. 시드니 시청사에는 건축물의 디테일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도시모형이 상시 설치되어 있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 그 부분을 갈아 끼운다. 폐기된 철도수리공장을 최첨단 산업의 연구업무시설로 바꾼 ATP(Australian Technology Park)는 정부, 학계, 건축가가 만든 최대의 걸작품이었다.
도시의 매력과 힘은 물리적, 문화적 총체성이다. 건축은 독자적인 질서와 그에 따르는 미학을 지니지만 도시라는 틀에서 만들어진다. 도시는 결코 건축의 배경이 아니라 건축이라는 요소로 짜여진 망상조직이다. 건축가는 도시 위에 집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시라는 망상조직의 한 부분을 연결하는 것이다. 근대주의와 함께 유럽과 북미에서 실험하였던 새로운 건축유형은 이러한 망상조직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의 문제였지 결코 망상조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리오와 시드니가 지닌 매력과 힘은 오랜 도시역사에서 축적된 다양하고 깊이있는 문화와 흔적 그리고 단절되지 않은 가운데 계속되는 건축과 도시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함과 실험이 혼돈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도시를 지배하는 전체적 질서 때문이다.
한국에는 불행히도 1960년대에 건축계의 대표주자였던 김수근과 김중업이 서구의 근대주의를 실험한 반면 새로운 도시에 대한 실험은 1970년대까지 없었다. 이점에서 1960년대 이후 건축계의 담론에 꼬리처럼 따라 붙었던 “전통논쟁”은 도시라는 틀이 완전히 배제된 “양식”논쟁 이었다. 전통논쟁에 불을 당긴 김수근과 강봉진의 “박물관”은 조선 건국이래 500년 이상 우리의 도시에는 없었던 건축유형이었다. “박물관”이라는 건축물 자체가, 좀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술품이 지닌 문화적 교육적 가치나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건축공간 자체가 “전통”이라는 개념밖에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궁궐, 사찰, 주택 등 모든 유형의 전통건축에서 외부공간과 통하지 않는 내부공간의 연결은 전례를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전시실로 연결된 박물관을 대상으로 한 전통논쟁은 건축의 핵심이 배제한 문화 이데올로기 논쟁이었다. 내용이 빠진 표피논쟁은 형식은 달리하지만 건축 저널리즘에게는 여전히 매력 있는 주제이다. “어느 건축가의 형태가 어느 건축가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혹은 유사하다...“ 식의 비평은 그 단적인 예다. ”재료의 물성 자체가 선험적 의미를 지닌다...“식의 주장은 전자와 형식은 달리하지만 역시 ”한국성“논쟁의 핵심에서는 벗어나 있다. 모두 ”도시“라는 틀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도시는 그저 건축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의 날개를 붙잡는 올가미일 뿐이다.
건축학과 도시학의 분리는 북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건축과 도시의 중간쯤에 있었던 도시설계(Urban Design)는 대부분의 미국대학에서 사라지는 추세다. 경제학, 통계학 등의 학문으로부터 수혈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도시계획학에 비해서 건축학은 비록 철학, 미학, 언어학 등의 인문학을 도입하였지만 건축가 개인의 건축언어를 논리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건축언어의 “사유화”는 “건축은 독자적이다 (Architecture is autonomous)” 라고 주장한 근대주의 아방가르드와 맥락을 같이하지만 도시와 건축의 분리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이러한 분리현상이 건축이론을 도시라는 틀에 연결시켜 보지 못했던 한국과 같은 제3세계에 들어오면 가속이 붙는다. 건축행위를 제한하는 제도와 법령은 있지만 도시의 총체적 청사진이 없는 도시계획은 정치논리나 경제논리에 의해 좌우되기가 쉽다. 이 경우 공공영역에 참여할 지식이나 경험을 건축계는 축적하지 못한 채 민간용역에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된다. 정부조직에서의 기술천대와 뿌리깊은 부패구조는 의식있는 건축들의 제도권 진입을 어렵게 해왔다. 특히 땅과 집이 삶의 공간으로서보다도 투자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한국사회에서는 도시의 장기적 청사진을 공론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난해 말 이후의 한국의 경제적 위기상황은 건축인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지만 팽창과 성장에 숨을 돌릴 수조차 없었던 우리의 도시에게는 어쩌면 좋은 휴면기 일수 있다. 이제 건축계에서는 감정적 비판이나 거창한 구호보다도 건축과 도시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나와야한다. 건축계가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각종 학술단체, 모임 등을 통한 공감대형성이지만 이러한 활동이 지금까지 한국 건축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연, 학연 등을 중심으로 한 네포티즘(nepotism)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론적 논쟁을 바탕으로 하는 학파로 틀이 자연스럽게 짜져야한다. 건축과 도시환경에 대한 정치, 사회적 프로퍼갠더는 있으나, 좀더 좋게 말해서, “의식”과 “의지”와 그것을 실현할 “대상”은 있으나 구체적인 이론적 틀을 준비하지 않은 채 집단화하는 것은 또 다른 정치 이데올로기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학자의 연구와 건축가의 실험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나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이론”이 건축행위나 건축물에 붙어있는 난해하고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이라는 통념을 허물어야한다. “모든 해석은 관점을 필요로 하고 객관적인 의미에서 관점은 이론이다. 모든 이론은 또 다른 이론, 즉 다른 제3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다“는 칼 포퍼의 주장은 바로 한국 건축학계를 위해 절실히 필요한 말이다. 지금이 그러한 연구와 실험의 최적기이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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