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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omad의 글쓰기

서울 ‘계란지도’와 도시 건축 지형도 (2012.4.17)

서울 ‘계란지도’와 도시 건축 지형도

 

중앙일보, 2012.4.17, 오피니언, [삶의 향기]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531/7913531.html

 

'강남 3구에 노른자가 얹혀 있는 계란지도 정치 풍자
문화적 불균형 해소하는 도시 건축적 섬세함 필요'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후 SNS에서는 재미있는 사진 한 장이 회자됐다. 프라이팬에 서울시 지도 모양을 한 달걀 흰자위가 있고 강남, 서초, 송파구에 노른자가 얹혀 있는 계란 프라이 이미지였다. 강남의 경제·사회적 우위가 ‘정치적 섬’으로 나타난데 대한 누리꾼의 풍자였다.

 

도시 안에서 정치적 선택을 달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문제는 이것이 구조화, 고착화되는 데 있다. 이번 총선에서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는 깨졌지만 여전히 강남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지역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지형도가 서울에서는 강남-非강남이라는 새로운 경제·사회적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이런 징후를 도시 건축적으로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강남’이 어딘가에 대한 인식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좁게는 강남구, 넓게는 강남·서초· 송파 3구를 일컫는다는 데 큰 이견이 없다. 강남권의 경제적 위상은 객관적 수치에서 확인된다. 예산규모, 재정자립도, 1인당 지방세 징수액, 주거지역 지가에서 강남 3구는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1, 2, 3위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런 경제적 우위는 다른 영역과 복합적으로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첫째, 선진국형 산업으로 일컫는 금융 중심의 생산자 서비스업의 강남권 쏠림이다. 둘째, 정보화의 강남권 집중이다. 인터넷 이용률에서 서초, 강남, 송파는 서울에서 각각 1, 2, 3위를 차지한다. 셋째, 출판·영상·공연예술·디자인 등 문화산업의 강남권 집중이다. 요약하면 강남권의 경제적 우위는 신산업·정보화·문화·교육의 ‘집중화’와 ‘차별화’로 나타나고 있다.

 

도시안의 이런 현상은 서울만 겪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선진국 내의 경제활동은 생산 중심지에서 금융과 서비스 중심지로 이동했다. 공장이 지리적으로 분산되면서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네트워크가 필요해졌고, 뉴욕·런던·도쿄와 같은 글로벌 도시가 그 접점을 선점했다. 문제는 글로벌 경제의 혜택에 따라 도시 안에서 소득 불균형과 지역 격차가 심화되는 현상이다. 그런데 경제적 불균형 자체보다 이것이 야기하는 문화적 불균형이 더 깊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좁은 땅에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한국 도시에서 느끼는 문화적 소외감과 박탈감은 여러 민족이 모여 사는 뉴욕이나 런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하다. 드라마, 영화, 소설의 소재로 등장하는 강남 신드롬은 문화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600년 역사도시 서울에서 강남은 40살도 안된 신생지다. 강남은 어떻게 이런 짧은 기간에 한국 사회의 진앙이 되고 있나? 바로 도시와 건축의 물리적 기반 때문이다. 격자형 가로 구조와 블록, 규칙적 필지, 여기에 5개 노선 지하철이 강남의 중심부를 촘촘히 연결하고 있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도시 공간에 반듯반듯한 건축물이 들어섰다. 주거와 업무기능이 분리된 강북과 달리 강남에는 다양한 주택 유형과 사무소, 문화시설이 근거리에 혼합돼 있다. 고도성장과 도시집중화 시대에 공공은 직접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민간자본으로 이런 기반시설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 정부, 서울시, 자치구, 정계는 도시 안의 격차를 줄이는 공동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역할은 개발시대의 것과 달라져야 한다. 거대한 개발 사업이나 눈에 띄는 미관사업에 칼을 대는 집도 의사에서 도시의 아픈 곳에 침을 놓는 한의사로 바뀌어야 한다. 최근 정부는 도시정비사업의 방향을 전면 철거에서 재생으로 선회하고 있다. 하지만 주택 공급에 초점을 둔 정책 틀만으로는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 주거-상업-업무-문화가 공존하는 소지역을 만들기 위해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때다.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강남에 사는 학생은 교수가 강북의 동네를 묻자 그런 동네가 서울에 있느냐고 반문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한 건축학도의 가벼운 무관심을 재미있게 그린 장면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학생들은 우리 도시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낼까?

 

김성홍 / 서울시립대 교수 /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