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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omad의 글쓰기

서울의 신(新)강남 지도 (2013.1.1)

서울의 신(新)강남 지도

 

중앙일보, 2013.1.1, 오피니언, [삶의 향기]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757/10309757.html

 

도시 공간 서열화, 문화 계층화 드러낸 대선
공공 인프라 개선은 또 다른 차원의 복지정책

 

‘세대 간의 대결’, ‘50대의 불안감과 결집’. 이번 대선에서 보수의 승리를 이끈 힘이라고 한다. 50대가 느끼는 불안의 한 축은 이념이고, 다른 축은 노후라고 언론은 입을 모은다. 전국 단위의 총론에서 수긍이 가는 분석이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의구심이 생긴다. 한국 정치의 심장부인 서울을 보자. 박근혜 당선인은 강남 3구와 용산구, 강동구에서만 이기고 나머지 20개 구에서는 졌다. 이 결과는 세대 간의 대결 프레임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 또한 강남이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국가 안보와 경제를 더 걱정했다는 가설도 성립되기 어렵다. 다른 시각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 강남 3구에 노른자를 얹은 ‘계란지도’가 온라인에 회자된 바 있다. 나는 이를 보고 도시 ․ 건축적 관점에서 강남-비(非)강남 구도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다. 이번 대선을 지켜보면서 계란지도가 더 확연하게 떠올랐다.

 

계란지도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0년 6.2 지방선거다. 당시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강남 3구에서 몰표를 받아 민주당 한명숙 후보를 누르고 재선되었다. 오후보는 다른 5개구에서도 이겼지만 전체적으로 강남-비강남 구도에 포위되었다. 특히 한나라당은 강남 3구와 중랑구에서만 구청장을 당선시켰다. 그 후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는 강남 3구와 용산구만 제외하고 모두 이겼다. 2012년 총선에서는 강남의 노른자가 깨졌지만 계란지도의 골격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대선에서 강남 3구+용산구를 핵으로 한 신(新)강남 지도가 확고해졌다. 요약하면 서울의 정치지형이 전국과 수도권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구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무엇을 뜻하는가? 건축학자로서 내가 내린 결론은 ‘도시 공간의 서열화’와 ‘문화 계층화’다. 2000년대 이후 강남은 땅과 집값에서 다른 지역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 집값 상위 5위는 강남, 서초, 송파, 용산, 강동구 순이었다. 이렇게 서열화된 도시 공간은 문화적 ‘구별짓기’로 이어지고 있다. 즉 경제적 불균형보다 문화적 우월감과 박탈감이 대결 구도의 수면 아래에 잠복하고 있다. 이 점에서 아파트 값 하락을 걱정한 수도권 50대가 대선 판도를 바꾸었다는 분석은 거칠다. 아파트 비율이 가장 높은 노원구와 양천구가 ‘신강남’과 다른 표심을 드러낸 것이 이를 방증한다. 드러나는 ‘경제’보다 숨어있는 ‘문화’가 아킬레스건인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세련과 촌티를 버무려 문화적 중간지대를 교묘하게 파고 들었지만 강남스타일은 문화적 특구를 함의한다. 2020년 한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액(GDP)이 4만 달러를 넘어 세계 10위권으로 진입하고 2030년에는 6만 달러를 넘어 5위가 될 것이라고 시티그룹이 전망했다. 이 경우 강남은 서울의 맨해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강남은 한 쪽에서는 탐욕의 월가를 품고 다른 쪽에서는 빈민가 할렘과 경계를 긋는 맨해튼 모델을 따라갈 것인가?

 

신강남 지도는 도시계획과 건축의 산물이다. 강남은 한국 최대의 ‘토지구획정리사업’ 지구다.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강북 인구의 분산을 목표로 농경지를 격자형 구조로 바꾸는 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강남은 주거, 업무, 문화시설을 모두 갖춘 최고의 도시가 되었다. 사실 전통건축이나 현대건축 할 것 없이 손꼽히는 건축물은 강북에 더 많다. 강남의 힘은 격자형 도로와 촘촘한 지하철망 등 공공 인프라에 있다. 이 때문에 공공의 노력이 없으면 강남과 비강남의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도시 공간 서열화와 불균형은 비단 서울의 문제만은 아니다. 공동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지방도시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는 민간의 힘을 빌려 공공 인프라를 개선해왔다. 하지만 저개발시대에 이 수법은 약발이 다했다. 이제 4대강 사업과 같은 대규모 국책사업에 투입되었던 예산을 잘게 나누어 공공 인프라를 개선하는 데 돌릴 때다. 이것이 도시 안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거시 복지 정책이다.

 

김성홍 ․ 서울시립대 교수 ․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