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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omad의 글쓰기

나만을 위한 집짓기의 꿈 (2013.3.26)

나만을 위한 집짓기의 꿈

 

중앙일보, 2013.3.26. 오피니언, [삶의 향기]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842/11037842.html

 

아파트 한 채 장만하려 전전하는 도시 유목민이여

육아, 교육, 먹거리 구매 함께하는 '코하우징'도 있다

 

집짓기 바람이 불고 있다. 요즈음 서점의 건축 코너 절반을 집짓기 책이 차지한다. 집은 물질 덩어리 건축물과는 다른 나만의 정처(定處)라는 뜻을 함의한다. 떠돌다가 지치면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그리고 나와 가족의 삶이 배어있는, 남들 것과 다르게 생긴 곳이 집이다. 그래서 집을 말할 때 아파트와 연립주택보다는 뾰족한 경사지붕의 단독 주택을 떠올린다. 그게 우리 심상에 남아 있는 집의 원형(原型)이다.

 

건축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단독주택을 설계하는 꿈을 꾼다. 규모는 작지만 건축의 기본요소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건축 철학을 구현할 수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꿈을 실현하는 건축가는 그리 많지 않다. 집 설계를 의뢰하는 건축주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건축주는 양분되어 있다. 먼저 이름난 건축가를 찾는 극소수 사람들이다. 이들은 까다로운 요구를 하지만 설계비를 대놓고 깎지 않는다. 건축가(建築家)는 교육을 받고 설계에 종사하는 직능인을 통칭한다. 그중에서 법적 자격을 가진 이는 건축사(建築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는 ‘작품’을 추구하는 ‘작가’의 개념으로 혼용되어 왔다. 최상위 계층이 집의 상징가치를 높이고자 유명 건축가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건축주의 반대편에 허가 도면 몇 장이 필요해 건축사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내심 설계비를 지불할 생각이 없다. 허가만 받으면 시공자를 고용해서 직접 집을 지을 생각이다. 구청 주변의 ‘허가방 사무소’는 이런 건축주에 기대어 생존한다. 이렇다보니 ‘작가’와 ‘허가방’ 사이에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축가는 설 자리가 없었다.

 

최근에 나온 집짓기 책들은 좋은 건축주와 좋은 건축가의 만남이 왜 필요한지 보여준다. 『두 남자의 집짓기』 『아파트와 바꾼 집』 『집짓기 바이블』 『제가 살고 싶은 집은』 등이 그 예로, 치밀한 설계도로 지은 집이 생애주기를 고려하면 가장 경제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파트와 바꾼 집』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보통 수준의 공사비로 지은 건실하고 품격 갖춘 집”의 등장이다. 또한 이전의 전원주택과 달리 중간층을 위한 공유 개념의 도시형 주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새롭다.

 

이들은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하기 위해 이집 저집을 전전한 도시 유목민들이다. 그런데 이제 옮겨 다니는 것이 피곤해졌다. 빚 안지고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질 뿐더러 설사 그렇게 도달할 종착지가 아파트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융자를 낀 집을 처분하거나 전세금을 빼어 도시 외곽에 집짓기를 감행한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집짓기를 실행하지 못한다. 직장과 자녀들의 교육여건 때문에 도시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그 절반이 서울에 모여살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도시 안에서 제3의 주택 유형에 갈증을 느끼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

 

이 점에서 최근 출간된 『우리는 다른 집에 산다』는 주목을 끈다. 아홉 가구가 모여 육아, 교육, 먹거리 구매 등을 함께 하면서 경제적 부담을 덜기위해 만든 ‘코하우징’이다. 공동으로 토지를 구입하고, 집을 설계하고, 직접 공사를 발주하는 방식으로 마을 기업 ‘소행주(소통이 있어서 행복한 주택 만들기)’가 주체다. 복잡하게 얽힌 사업을 조정하는 코디네이터와 풍부한 경험을 가진 건축가가 큰 몫을 했다.

 

문제는 주택 가격의 75%에 육박하는 비싼 땅값이다. 현재 부동산 시장 안에서 개인들이 집짓기를 감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점에서 ‘소행주’의 사람들은 유럽과 일본의 협동조합주택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공공용지를 활용한 협동조합 주도의 코하우징과 더불어 민간 토지주, 시행사, 건설사, 건축가 등이 공동 기획하는 필지단위 소규모 주택 사업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집짓기 열풍이 몇몇 개인들의 용감한 실천기로 끝날 것인지, 대부분의 도시 유목민을 위한 새로운 주택 유형의 촉발제가 될지는 한국형 소규모 도시 건축을 유도하는 공적 장치가 작동하는가에 달려있다.

 

김성홍 ․ 서울시립대 교수 ․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