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의 한국 건축계와 서울건축학교
1980년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건축계에서는 기존의 학연중심의 건축회합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건축동인단체가 등장했다. 나는 이 시기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목적과 활동을 자세히 접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서울건축학교가 과거의 건축 사회운동과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태동하였는지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건축학교에서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점은 건축인의 대부분이 공감하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활동이 건축과 건축가의 위상, 건축의 사회성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긴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실천되지 못한 반면 서울건축학교는 비록 제도화된 교육기관의 모습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교육'이라는 형태로 실험을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건축의 사회성, 건축가의 위상을 위한 태도나 실천의 입장에서 보면 교육은 간접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이다.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직면한 주거, 도시, 환경문제를 보다 직설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제도나 법령의 개혁, 도시빈민 건축 제시, 관료적 권위주의 비판같은 건축 밖을 향한 목소리 대신 `설계' `강연' `토론'과 같은 전통적 교육기관의 방법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서울건축학교는 90년대 이전의 건축 사회운동 흐름과는 궤도를 달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구성원의 대부분은 아틀리에형 사무실을 직접 운영하면서 독자적 건축관을 추구해왔던 40, 50대의 중견 건축가들이다. 작가주의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치열한 작업을 통해 지속될 수 있는 것이므로 조직적 행위와 상반된다. 이점에서 서울 건축학교를 현재까지 지탱하는 공존의 힘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건설산업과 관련된 1990년대 후반 한국 건축계의 상황에서 서울건축학교를 바라보고자 한다. 15년 전 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건축현장에서 안전모를 쓰고 청사진을 펼치던 엔지니어가 곧바로 사무실에 들어가 스케일을 대고 그림을 그리는 건축가로 변신하던 기억이 난다. 대중에게 비친 건축가의 모습은 이렇게 모호한 것이었다. 반면 최근의 드라마에서 건축가는 건설의 이미지를 벗어버린 예술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비할 때 건축가의 경제적, 사회적 위상은 턱없이 낮고 왜곡되어 있다. 대학을 졸업한 건축과 학생이 받는 경제적 대우는 처참한 수준이다.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건축사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외환위기 이후 건설시장은 극도로 위축되고 앞으로 건축설계를 정규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위기마저 느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상황 역시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다. 대학이 배출하는 건축학생 수는 시장규모를 넘어 공급 초과이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건축과의 인기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건축에 대한 대중매체의 관심은 오히려 커진다. 건축관련 잡지도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결코 적지 않다. 어떻게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건축이 생산하는 것은 구체적 건물만이 아니라 아이디어, 이론, 이미지 등으로 확장되고,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불특정 대중으로 넓어지는 이른바 '문화산업(culture industry)' 현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측 할 수 없는 건설시장의 미래와 비교할 때 이러한 문화산업은 경제논리와 독립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다. 그리고 건축 문화산업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대학' '미술관' 그리고 '대중매체'이다. 최근 일본의 서점에서 다다오 안도의 동경대학교 건축과 강의노트가 전체 베스트 셀러의 6위를 차지한 것을 보았는데 이는 일본사회가 엘리트 건축가와 소통할 수 있는 세 가지 길을 이미 터 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 안도의 최대의 소비자는 건축주가 아니라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안도의 드로잉과 모형은 전세계의 미술관을 순회하며 관람자는 그의 건축을 직접 체험한 사람 수보다 많을 것이다. 텔레비전, 작품집, 잡지를 통해 생산되는 이론과 이미지는 건축가를 직접 대하지 않는 대중이 소비한다. 미국의 많은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은 건축설계로 받는 보수보다 대학에서 받는 강사료, 강연료, 책의 인세 등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 지어지지 않을 가상의 건물모형을 정기적으로 전시하여 수입을 얻기도 한다. 건물의 수요와 공급의 논리와는 독립적으로 생산, 재생산되는 이러한 시장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민주복지' 개념이 강한 국가에서는 정부도 이러한 문화산업에 개입하고 지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 건축계의 문화산업 징후가 서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학의 존재와 역할이다. 국민 총생산량의 14%를 차지할 만큼 비대한 건설시장에 직접 간접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대학의 건축과는 이러한 문화산업에 적응하기 위해 아직 많은 산들을 넘어야 한다. 나는 서울건축학교가 이데올로기나 실천강령을 전제로 한 집단적 건축운동의 장이라기보다는 제도권 대학이 하지 못하는 독자적 건축시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건축의 자율성을 추구함으로써 건축가의 사회적 위상을 회복하려는 묵시적 동의가 나는 서울건축학교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주 귀덕리에 이은 무주의 여름워크샵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참가한 학생들은 대학의 스튜디오와 다른 다양한 체험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그 중에서도 건축가와의 개인적인 만남이 가장 인상깊은 것이 아닐까 한다. 가장 좋은 설계교육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함께 설계를 하는 것이다. 한 건축가의 사고와 작업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대학의 스튜디오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한 수학법이다. 건축이 대학이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설계교육은 이러했다. 보편적 건축이론이나 역사 대신 건축가 개인의 삶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건축가의 작업과정, 건축어휘는 건축가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취향, 삶의 철학과 하나가 되어 교감된다. 아틀리에형 사무실은 이러한 전통적 교육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설계사무소는 수요공급의 경제논리 앞에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건축이 문화산업으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때로는 한 사람의 건축가가 대형 설계사무실에 버금 가는 시장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미국 애틀란타의 쿠퍼 캐리 사무실과 존 포트만 사무실은 설계면적으로 볼 때 미국 전체에서 4위와 5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건축대학의 스튜디오, 특강, 건축전시, 책, 잡지의 주역은 소형사무실 운영하는 건축가이며 문화산업에 미치는 그들의 영향은 전자보다 크다. 나는 무주 워크샵이 상업자본주의 위협 앞에 놓인 중소도시에의 한국성을 주제로 삼았지만 참가자 모두가 공유하는 도시해석이나 해법을 끌어내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무주군청이나 무주사람들이 원하는 도시건축환경을 제시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무주 워크샵의 의의는 건축가의 자율적 작업의 범위를 도시라는 더 큰 영역으로 확장시킴으로서 사회와의 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건축계는 오랫동안 전통논쟁의 짐을 지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논의는 형태주의에 갇혀 생산적인 담론을 도출하지 못하였다. 우리 것에만 내재하는 순수한 원형을 찾고자 하는 작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의 모습, 우리의 도시에 발을 담그고 이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건축가 개인의 건축어휘는 공허한 것이다. 귀덕리에 이은 무주 워크샵은 한국성을 모호한 개념으로부터 끌어내려 우리 주위에 펼쳐져 있는 가장 보편적인 문제와 연결시키는 성과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자기성찰과 반성을 통하여 우리사회를 자생적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건축학교가 건축의 울타리를 넘어 이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도 이러한 우리사회를 읽으려는 의지로 해석하고자 한다.
문화산업의 맥락에서 나는 서울건축학교가 빠질 수 있는 함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서울건축학교를 유지하는 힘은 구성원이 공유하는 건축철학, 이론, 이데올로기보다는 개인적 역량과 명성이다. 모든 집단은 제도화되려는 속성과 정치적 힘을 가지려는 속성을 지닌다. 지금까지 학연중심의 네포티즘에 비교적 자유스러웠던 서울건축학교가 제도권 대학과는 다른 형태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연대이념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건축전문대학원이 늘어나고 이곳이 건축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중심무대가 될 경우 서울건축학교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또 다른 함정은 서울건축학교가 만들어내는 건축가의 이미지이다. 학생들은 사무소 조직보다는 궁극적으로 홀로서는 건축가를 이상적 모델로 받아들인다. 아방가르드 건축가는 대형설계 사무소가 거대자본에 의존하는 것을 비판하고 예술성과 자율성을 주장 하지만 스스로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문화산업에 기댈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 대형설계사무소 보다 아방가르드 건축가는 대중문화에 민감하다. 그들의 작품과 이야기를 보고 들어주는 독자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리딩건축가들이 상업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업주의가 만들어 내는 문화산업에 의지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함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울건축학교가 거장시대 이후 위축되었던 건축가의 사회적 위상을 회복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교육의 주역이어야 건축가들은 오랫동안 제도권 대학 울타리 밖에서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90년대 이전의 건축운동은 이데올로기와 프로퍼갠더는 앞섰지만 실험의 구체성은 갖지 못하였다. 이점에서 서울건축학교는 80년대 이후 건축운동을 여과한 성숙된 건축사회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서울건축학교의 실험을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검증하는 일이 그들의 몫만이 아니라 건축인 전체의 일로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한국 건축계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1980년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건축계에서는 기존의 학연중심의 건축회합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건축동인단체가 등장했다. 나는 이 시기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 목적과 활동을 자세히 접하지 못하였다. 때문에 서울건축학교가 과거의 건축 사회운동과 어떤 연결고리를 가지고 태동하였는지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건축학교에서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점은 건축인의 대부분이 공감하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활동이 건축과 건축가의 위상, 건축의 사회성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긴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실천되지 못한 반면 서울건축학교는 비록 제도화된 교육기관의 모습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교육'이라는 형태로 실험을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건축의 사회성, 건축가의 위상을 위한 태도나 실천의 입장에서 보면 교육은 간접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이다.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직면한 주거, 도시, 환경문제를 보다 직설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제도나 법령의 개혁, 도시빈민 건축 제시, 관료적 권위주의 비판같은 건축 밖을 향한 목소리 대신 `설계' `강연' `토론'과 같은 전통적 교육기관의 방법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서울건축학교는 90년대 이전의 건축 사회운동 흐름과는 궤도를 달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구성원의 대부분은 아틀리에형 사무실을 직접 운영하면서 독자적 건축관을 추구해왔던 40, 50대의 중견 건축가들이다. 작가주의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치열한 작업을 통해 지속될 수 있는 것이므로 조직적 행위와 상반된다. 이점에서 서울 건축학교를 현재까지 지탱하는 공존의 힘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나는 건설산업과 관련된 1990년대 후반 한국 건축계의 상황에서 서울건축학교를 바라보고자 한다. 15년 전 한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건축현장에서 안전모를 쓰고 청사진을 펼치던 엔지니어가 곧바로 사무실에 들어가 스케일을 대고 그림을 그리는 건축가로 변신하던 기억이 난다. 대중에게 비친 건축가의 모습은 이렇게 모호한 것이었다. 반면 최근의 드라마에서 건축가는 건설의 이미지를 벗어버린 예술가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에 비할 때 건축가의 경제적, 사회적 위상은 턱없이 낮고 왜곡되어 있다. 대학을 졸업한 건축과 학생이 받는 경제적 대우는 처참한 수준이다.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건축사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외환위기 이후 건설시장은 극도로 위축되고 앞으로 건축설계를 정규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위기마저 느낀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상황 역시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다. 대학이 배출하는 건축학생 수는 시장규모를 넘어 공급 초과이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건축과의 인기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건축에 대한 대중매체의 관심은 오히려 커진다. 건축관련 잡지도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결코 적지 않다. 어떻게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까?
건축이 생산하는 것은 구체적 건물만이 아니라 아이디어, 이론, 이미지 등으로 확장되고,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도 불특정 대중으로 넓어지는 이른바 '문화산업(culture industry)' 현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측 할 수 없는 건설시장의 미래와 비교할 때 이러한 문화산업은 경제논리와 독립된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다. 그리고 건축 문화산업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대학' '미술관' 그리고 '대중매체'이다. 최근 일본의 서점에서 다다오 안도의 동경대학교 건축과 강의노트가 전체 베스트 셀러의 6위를 차지한 것을 보았는데 이는 일본사회가 엘리트 건축가와 소통할 수 있는 세 가지 길을 이미 터 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 안도의 최대의 소비자는 건축주가 아니라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안도의 드로잉과 모형은 전세계의 미술관을 순회하며 관람자는 그의 건축을 직접 체험한 사람 수보다 많을 것이다. 텔레비전, 작품집, 잡지를 통해 생산되는 이론과 이미지는 건축가를 직접 대하지 않는 대중이 소비한다. 미국의 많은 아방가르드 건축가들은 건축설계로 받는 보수보다 대학에서 받는 강사료, 강연료, 책의 인세 등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 지어지지 않을 가상의 건물모형을 정기적으로 전시하여 수입을 얻기도 한다. 건물의 수요와 공급의 논리와는 독립적으로 생산, 재생산되는 이러한 시장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민주복지' 개념이 강한 국가에서는 정부도 이러한 문화산업에 개입하고 지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 건축계의 문화산업 징후가 서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학의 존재와 역할이다. 국민 총생산량의 14%를 차지할 만큼 비대한 건설시장에 직접 간접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대학의 건축과는 이러한 문화산업에 적응하기 위해 아직 많은 산들을 넘어야 한다. 나는 서울건축학교가 이데올로기나 실천강령을 전제로 한 집단적 건축운동의 장이라기보다는 제도권 대학이 하지 못하는 독자적 건축시장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건축의 자율성을 추구함으로써 건축가의 사회적 위상을 회복하려는 묵시적 동의가 나는 서울건축학교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제주 귀덕리에 이은 무주의 여름워크샵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참가한 학생들은 대학의 스튜디오와 다른 다양한 체험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데 그 중에서도 건축가와의 개인적인 만남이 가장 인상깊은 것이 아닐까 한다. 가장 좋은 설계교육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함께 설계를 하는 것이다. 한 건축가의 사고와 작업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대학의 스튜디오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한 수학법이다. 건축이 대학이라는 제도권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설계교육은 이러했다. 보편적 건축이론이나 역사 대신 건축가 개인의 삶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건축가의 작업과정, 건축어휘는 건축가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취향, 삶의 철학과 하나가 되어 교감된다. 아틀리에형 사무실은 이러한 전통적 교육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설계사무소는 수요공급의 경제논리 앞에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건축이 문화산업으로 자리잡은 사회에서 때로는 한 사람의 건축가가 대형 설계사무실에 버금 가는 시장을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미국 애틀란타의 쿠퍼 캐리 사무실과 존 포트만 사무실은 설계면적으로 볼 때 미국 전체에서 4위와 5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건축대학의 스튜디오, 특강, 건축전시, 책, 잡지의 주역은 소형사무실 운영하는 건축가이며 문화산업에 미치는 그들의 영향은 전자보다 크다. 나는 무주 워크샵이 상업자본주의 위협 앞에 놓인 중소도시에의 한국성을 주제로 삼았지만 참가자 모두가 공유하는 도시해석이나 해법을 끌어내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무주군청이나 무주사람들이 원하는 도시건축환경을 제시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무주 워크샵의 의의는 건축가의 자율적 작업의 범위를 도시라는 더 큰 영역으로 확장시킴으로서 사회와의 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건축계는 오랫동안 전통논쟁의 짐을 지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논의는 형태주의에 갇혀 생산적인 담론을 도출하지 못하였다. 우리 것에만 내재하는 순수한 원형을 찾고자 하는 작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의 모습, 우리의 도시에 발을 담그고 이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건축가 개인의 건축어휘는 공허한 것이다. 귀덕리에 이은 무주 워크샵은 한국성을 모호한 개념으로부터 끌어내려 우리 주위에 펼쳐져 있는 가장 보편적인 문제와 연결시키는 성과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오래 전부터 자기성찰과 반성을 통하여 우리사회를 자생적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건축학교가 건축의 울타리를 넘어 이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것도 이러한 우리사회를 읽으려는 의지로 해석하고자 한다.
문화산업의 맥락에서 나는 서울건축학교가 빠질 수 있는 함정도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서울건축학교를 유지하는 힘은 구성원이 공유하는 건축철학, 이론, 이데올로기보다는 개인적 역량과 명성이다. 모든 집단은 제도화되려는 속성과 정치적 힘을 가지려는 속성을 지닌다. 지금까지 학연중심의 네포티즘에 비교적 자유스러웠던 서울건축학교가 제도권 대학과는 다른 형태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연대이념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건축전문대학원이 늘어나고 이곳이 건축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중심무대가 될 경우 서울건축학교는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또 다른 함정은 서울건축학교가 만들어내는 건축가의 이미지이다. 학생들은 사무소 조직보다는 궁극적으로 홀로서는 건축가를 이상적 모델로 받아들인다. 아방가르드 건축가는 대형설계 사무소가 거대자본에 의존하는 것을 비판하고 예술성과 자율성을 주장 하지만 스스로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문화산업에 기댈 수밖에 없다. 어떤 의미에서 대형설계사무소 보다 아방가르드 건축가는 대중문화에 민감하다. 그들의 작품과 이야기를 보고 들어주는 독자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리딩건축가들이 상업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상업주의가 만들어 내는 문화산업에 의지하는 모순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함정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울건축학교가 거장시대 이후 위축되었던 건축가의 사회적 위상을 회복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교육의 주역이어야 건축가들은 오랫동안 제도권 대학 울타리 밖에서 사회적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90년대 이전의 건축운동은 이데올로기와 프로퍼갠더는 앞섰지만 실험의 구체성은 갖지 못하였다. 이점에서 서울건축학교는 80년대 이후 건축운동을 여과한 성숙된 건축사회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서울건축학교의 실험을 지속적으로 토론하고 검증하는 일이 그들의 몫만이 아니라 건축인 전체의 일로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한국 건축계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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