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를 함축한 일상의 소비공간
(삶과 시장2: 시장의 지리 공간적 특성)
교수신문, 1999.7.19, 제161호
'시정잡배(市井雜輩)'라는 말이 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상행위에 대한 뿌리깊은 비하의 태도가 배어 나오는 말이다. 질펀한 시장바닥에서 고함치며 호객하는 사람들,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싸우는 사람들, 쏜살같이 밥 나르는 밥집아줌마, 술에 만취하여 비틀거리는 사람들... 그러나 시장은 도시 뒤편에서 펼쳐지는 일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公的空間이다. 주거건축과 오랜 역사를 함께 하면서도 原型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공간유형이지만 시장은 건축역사와 이론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위해한 대상으로 간주되는 경향마저 있었다. 상업건축을 저급문화로 폄하하는 건축학계의 엘리티시즘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장건축의 단순함과 일시성 때문에 외부공간으로 인식되어온 이유도 있었다. 시장이 구체적 건축물을 지칭하기보다는 상행위가 이루어지는'장소'로서 통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시장을 생각할 때 건축형태나 내부공간보다는 상점 앞에 늘어놓은 물건이며 거리 한가운데를 아예 점유한 가판대를 떠올리게 된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고대의 시장 역시 이러했을 것이다. 행정 통제권 안에 있으면서도 사람의 발걸음이 닿기 쉬운 곳에서 시장은 태동한다. 로마에서는 A.D. 110년 경 이미 지붕이 덮인 트라얀 시장(Trajan's Market)이 등장한다. 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11세기 이후에는 유럽의 상인들은 도시에 정착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상점 위층이나 근처에 거주하는 것이 보편화된다. 시장이 제한된 장소를 벗어나 거리를 따라 線形으로 뻗어나가는 商業街路로 변모된 것이다. 시장과 상업가로는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18세기초까지 유럽도시의 경관을 이루게 된다. 반면 조선 초의 市廛은 지배계층을 위한 어용상점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생산, 판매, 거주공간이 수직적으로 결합된 유럽의 상업가로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시전건물은 상업공간의 역할과 함께 종로거리로부터 배면의 사대부 주거지역을 감싸는 수평적 住商竝置의 완충장치였다. 이점에서 17세기 후반의 남대문 밖의 七牌市場, 18세기 중엽 동대문의 梨峴商街, 19세기 서소문밖 시장 등 도시외곽에 자리잡은 시장이 현재 남아있는 재래시장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종로시전의 골격은 19세기 말 까지 유지되다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에 현재의 서울의 주요간선 도로와 일치하는 모습으로 확장된다.
유럽에서는 수세기 동안 유지되었던 시장과 상점이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케이드와 백화점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케이드를 근대판 상업거리라고 한다면 백화점은 근대판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에밀졸라, 월터 벤자민의 비평에도 불구하고 두 건축유형은 도시조직과 공존하면서도 소비공간을 수평, 수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시장과 상업가로에 대한 위협은 1950년대 북미의 외곽이나 교외에 파급된 쇼핑센터에 의해 가시화된다. 거대한 주차장에 에워싸인 밀폐된 소비공간은 가로가 지니는 사회, 문화적 기능을 저하시키고 도시의 연속성을 파괴한다는 비평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수학공식처럼 정형화된 뒤 복제가 가능한 쇼핑센터나 할인점은 제3세계에 이식될 때 파장은 더욱 커진다. 재래시장에 가해지는 경제적 위협보다 그 뒤에 가려진 문화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미국인에게 쇼핑센터나 할인점은 '탈도시의 욕망과 도시에 대한 향수'가 빚어낸 산물이다. 건물이 들어서는 곳은 도시와 전원의 경계쯤이고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의 신도시에 들어선 할인점은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전원교외(郊外)와 자동차에 대한 환상 때문에 들어온 기형적 수입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상은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식민지적 숭배, 서구도시에 대한 몰이해, 우리의 도시문화에 대한 무가치에서 기인한다. 자동차를 타고 전원을 가로질러 장보러 가는 주부의 모습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대중매체가 조작했던 이상적 삶의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 뒤에는 도심공동화, 공간을 통한 사회계층의 격리, 생산현장과 도시문화로부터 여성의 소외현상이 있었지만 건축유형이 수입되면서 그 부분은 삭제된다. 그리고 교외에 쇼핑센터가 확산되고있는 한편 새로운 상업건축을 통해 도시를 재생하려는 실험이 계속되고 있는 사실 역시 간과된다. 할인점을 수출하는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이 정작 유럽도시 안으로 입성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경제논리를 앞세운 지금의 우리사회에서는 체감되지 않고 있다.
서울의 인구밀도는 홍콩의 3배, 싱가포르의 3.6배에 이른다. 신도시의 인구밀도 역시 미국교외의 10배에 이른다. 이러한 고밀도 동질화사회에서 자동차문화나 탈도시 프로퍼갠더를 주장하거나 이에 침묵하는 전문가나 학자의 태도를 이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냉혹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재래시장을 화석처럼 보존하자거나, 19세기 부르조아지 상업가로를 복원하자는 감상적 논리는 쇼핑센터에 대한 환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장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은 질퍽거리는 골목, 흉물스런 건물뿐만 아니라 도시를 지탱하는 일상의 문화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국적 유통기업에 대해 국수적 논리로 대항해내기보다는 우리의 도시문화에 대한 재해석과 함께 실험을 계속하여야 한다.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있는 국제적인 도시가 쇼핑센터, 할인점, 고속도로가 도시를 뒤덮은 곳이 아니라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미술관, 박물관, 극장, 그리고 그 뒤편에 질펀한 시장이 있는 古都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삶과 시장2: 시장의 지리 공간적 특성)
교수신문, 1999.7.19, 제161호
'시정잡배(市井雜輩)'라는 말이 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상행위에 대한 뿌리깊은 비하의 태도가 배어 나오는 말이다. 질펀한 시장바닥에서 고함치며 호객하는 사람들,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싸우는 사람들, 쏜살같이 밥 나르는 밥집아줌마, 술에 만취하여 비틀거리는 사람들... 그러나 시장은 도시 뒤편에서 펼쳐지는 일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公的空間이다. 주거건축과 오랜 역사를 함께 하면서도 原型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공간유형이지만 시장은 건축역사와 이론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거나 위해한 대상으로 간주되는 경향마저 있었다. 상업건축을 저급문화로 폄하하는 건축학계의 엘리티시즘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장건축의 단순함과 일시성 때문에 외부공간으로 인식되어온 이유도 있었다. 시장이 구체적 건축물을 지칭하기보다는 상행위가 이루어지는'장소'로서 통용되는 것이 사실이다. 시장을 생각할 때 건축형태나 내부공간보다는 상점 앞에 늘어놓은 물건이며 거리 한가운데를 아예 점유한 가판대를 떠올리게 된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고대의 시장 역시 이러했을 것이다. 행정 통제권 안에 있으면서도 사람의 발걸음이 닿기 쉬운 곳에서 시장은 태동한다. 로마에서는 A.D. 110년 경 이미 지붕이 덮인 트라얀 시장(Trajan's Market)이 등장한다. 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11세기 이후에는 유럽의 상인들은 도시에 정착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상점 위층이나 근처에 거주하는 것이 보편화된다. 시장이 제한된 장소를 벗어나 거리를 따라 線形으로 뻗어나가는 商業街路로 변모된 것이다. 시장과 상업가로는 경쟁관계를 유지하면서 18세기초까지 유럽도시의 경관을 이루게 된다. 반면 조선 초의 市廛은 지배계층을 위한 어용상점으로 출발하였기 때문에 생산, 판매, 거주공간이 수직적으로 결합된 유럽의 상업가로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시전건물은 상업공간의 역할과 함께 종로거리로부터 배면의 사대부 주거지역을 감싸는 수평적 住商竝置의 완충장치였다. 이점에서 17세기 후반의 남대문 밖의 七牌市場, 18세기 중엽 동대문의 梨峴商街, 19세기 서소문밖 시장 등 도시외곽에 자리잡은 시장이 현재 남아있는 재래시장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종로시전의 골격은 19세기 말 까지 유지되다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에 현재의 서울의 주요간선 도로와 일치하는 모습으로 확장된다.
유럽에서는 수세기 동안 유지되었던 시장과 상점이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아케이드와 백화점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케이드를 근대판 상업거리라고 한다면 백화점은 근대판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에밀졸라, 월터 벤자민의 비평에도 불구하고 두 건축유형은 도시조직과 공존하면서도 소비공간을 수평, 수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시장과 상업가로에 대한 위협은 1950년대 북미의 외곽이나 교외에 파급된 쇼핑센터에 의해 가시화된다. 거대한 주차장에 에워싸인 밀폐된 소비공간은 가로가 지니는 사회, 문화적 기능을 저하시키고 도시의 연속성을 파괴한다는 비평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수학공식처럼 정형화된 뒤 복제가 가능한 쇼핑센터나 할인점은 제3세계에 이식될 때 파장은 더욱 커진다. 재래시장에 가해지는 경제적 위협보다 그 뒤에 가려진 문화이데올로기 때문이다. 미국인에게 쇼핑센터나 할인점은 '탈도시의 욕망과 도시에 대한 향수'가 빚어낸 산물이다. 건물이 들어서는 곳은 도시와 전원의 경계쯤이고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이다. 그러나 한국의 신도시에 들어선 할인점은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전원교외(郊外)와 자동차에 대한 환상 때문에 들어온 기형적 수입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상은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식민지적 숭배, 서구도시에 대한 몰이해, 우리의 도시문화에 대한 무가치에서 기인한다. 자동차를 타고 전원을 가로질러 장보러 가는 주부의 모습은 1950년대 이후 미국의 대중매체가 조작했던 이상적 삶의 이미지이다. 그 이미지 뒤에는 도심공동화, 공간을 통한 사회계층의 격리, 생산현장과 도시문화로부터 여성의 소외현상이 있었지만 건축유형이 수입되면서 그 부분은 삭제된다. 그리고 교외에 쇼핑센터가 확산되고있는 한편 새로운 상업건축을 통해 도시를 재생하려는 실험이 계속되고 있는 사실 역시 간과된다. 할인점을 수출하는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이 정작 유럽도시 안으로 입성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경제논리를 앞세운 지금의 우리사회에서는 체감되지 않고 있다.
서울의 인구밀도는 홍콩의 3배, 싱가포르의 3.6배에 이른다. 신도시의 인구밀도 역시 미국교외의 10배에 이른다. 이러한 고밀도 동질화사회에서 자동차문화나 탈도시 프로퍼갠더를 주장하거나 이에 침묵하는 전문가나 학자의 태도를 이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냉혹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재래시장을 화석처럼 보존하자거나, 19세기 부르조아지 상업가로를 복원하자는 감상적 논리는 쇼핑센터에 대한 환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시장과 함께 사라져 가는 것은 질퍽거리는 골목, 흉물스런 건물뿐만 아니라 도시를 지탱하는 일상의 문화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국적 유통기업에 대해 국수적 논리로 대항해내기보다는 우리의 도시문화에 대한 재해석과 함께 실험을 계속하여야 한다. 첨단산업을 유치하고 있는 국제적인 도시가 쇼핑센터, 할인점, 고속도로가 도시를 뒤덮은 곳이 아니라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미술관, 박물관, 극장, 그리고 그 뒤편에 질펀한 시장이 있는 古都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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