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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읍의 일상공간과 건축의 실천 (2006.02)

소도읍의 일상공간과 건축의 실천
내설악 용대관광지(십이선녀마을) 경관계획의 경험
건축과 사회 2006 봄, pp.169~177.

서울을 벗어나 국도를 달리면 간판과 현수막으로 뒤덮인 상업건축을 쉽게 만난다. 요란한 겉모습과 달리 경량철골구조를 샌드위치패널로 가리거나 콘크리트 구조에 황토나 통나무로 치장한 저급 구법의 건축들이다. 비단 서울 근교만 이런 것이 아니다. 강원도에서 제주도까지 우리 국토의 도시경관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의 건축교육에서도, 건축가들의 실험에서도 외면당하는 이러한 진부한 풍경들은 실상 우리의 삶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고 재생산하는 일상경관이다.

수려한 산과 물을 자산으로 생각하는 강원도의 소도읍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 강원도 인제군 내설악 입구 용대리 일대에 관광개발 압력이 커지자 인제군은 외설악동이나 불국사 앞과 같은 집단관광단지를 구상하게 된다. 10만 평의 전, 답, 하천, 임야의 국유지, 사유지, 공유지를 묶어 관광지 조성계획을 수립하고 토지공사에 개발을 위탁하여 2003년 민간에게 2만여 평을 분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인제군이 구상했던 청사진과는 달리, 국도변 풍경처럼, 간판과 현수막으로 덮인 싸구려 건물들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개발의 적기를 관망하는 토지주들이 소유한 대부분의 필지는 잡초만 무성한 채 방치되었다. 인제군은 엔지니어링 회사에 의뢰하여 용대리 일대의 경관계획을 수립해 보지만 결과보고서가 실행할 수 없는 그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관광지 조성계획은 도시계획에 상당하는 토지이용계획, 교통계획, 건축용도계획과 같은 구속력을 갖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도시경관을 구체화시키는 계획이 없었고, 경관계획용역은 지역성, 장소, 토속건축을 피상적인 이미지와 구호로 포장했을 뿐 어떠한 제도적 방안이나 실행적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일상공간과 경관은 거시적 도시설계와 미시적 건축설계의 공백을 메우는 영역이 부재한다는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 도시와 건축의 괴리는 법제도의 문제, 서구로부터 학문을 도입한 방법론의 차이, 업역에 대한 방어적 태도와 차단, 형태미학의 완결성과 자율성에 집착하는 작가 엘리트주의, 공공기관의 편의주의적 관성, 주민들의 무의식 등이 복합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다. 1990년대 후반 도시 영역에서는 기존의 도시설계를 보완한 지구단위계획을 도입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건축설계를 하지 않고 외형을 규정하는 거시적 수준의 계획이었다. 도시구조에서 건축물의 외관으로 좁혀 들어가는 ‘외인성(外因性, exogenous)’ 방법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건축가들이 주축이 된 지방도시 탐구와 도시건축 운동은 관찰, 조사, 토론, 실험을 통하여 건축에서 도시로 확장하는 ‘내인성(內因性, endogenous)’ 방법론을 시도했지만 일상공간을 여전히 미학적 가치의 대상으로 간주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식의 집단소비 이미지로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내설악 용대관광지(십이선녀마을) 경관계획연구」(이하 용대 경관계획)는 실패를 경험하고 대안을 모색하던 지방자치단체와 소도읍 공간환경 실천운동에 참여했던 건축가가 만나는 행운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1997년 이래로 ‘철암 지역 건축도시 연구작업팀(대표건축가 주대관)’은 산업구조의 변화로 버려진 폐광촌에서 건축을 통한 새로운 사회참여를 실천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철암 작업은 언론매체에서 전문가의 사회참여의 측면을 조명했을 뿐, 건축계 내부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반면 철암작업이 소문을 거쳐 지방 소도시에 준 호소력은 매우 컸다. 주민의 삶을 파고드는 ‘아래에서 위로의’ 실천과 지속성은 용역 전문 교수나 건축가들의 작업과 다르게 인식되었던 것이다.

2004년 여름 기존의 철암팀과 필자를 포함한 건축, 도시, 환경디자인 전문가로 구성된 10여 명의 내설악 연구팀이 구성되어 일을 시작했다. 통상 소수의 연구진이 수행하는 일을 많은 전문가가 모여서 시작했기 때문에 책임과 역할을 분담하는 것부터 생소했다. 연구팀의 조직과 업무분담은 초반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중반에 이르러서야 윤곽이 드러났다. 연구의 성격과 목표에 대한 토론을 계속하면서 동의한 것은 영역별 3인의 마스터 코디네이터(MC), 단지 전체의 도시, 건축계획을 조율하는 마스터 건축가(MA), 단지를 세분화한 블록의 건축계획을 담당하는 블록 건축가(BA), 환경 디자이너로 각자의 역할을 나누는 것이었다.

과업지시서의 주요내용은 연구용역 명칭에서 보듯이 ‘경관계획연구’였다. 그러나 관광지 조성계획과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해 본 결과 연구팀이 해야 할 일은 건축입면을 규정하거나 도로포장, 사인의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표피적 경관계획보다 지역의 현실, 대상지의 수면에 잠복하는 경제 메커니즘, 토지이용계획, 지역의 소프트웨어 등의 비건축적, 비형태적 문제를 원점에서 검토하고 공간과 프로그램을 조직하는 일이었다.

한국형 마을 만들기

기존 조성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건축물의 용도계획이었다. 2만 평의 단지에 계획된 상가시설의 면적은 인근 용대리 전체의 근린생활시설 면적과 비슷한 규모였다. 반면 숙박시설의 총 객실은 3백 실을 조금 넘는 규모로 체류형 관광지를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이처럼 상가와 숙박시설이 적정하지 못한 것은 전국의 통계자료에 준하여 상가와 숙박시설의 비율을 정하고, 다시 호텔, 콘도, 모텔, 여관, 민박으로 배분한 결과였다. 단지의 성격을 규정하고 시설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 전국의 평균통계를 기계적으로 대입한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산정된 시설면적을 단지에 배치하는 방식이었다. 길의 특성, 필지의 규모와 관계, 자연경관과의 관계가 고려되지 않는 임의적 배치계획이었다. 수변길과 인접한 산책로에 상가를 계획한 것이라든가 숙박시설이 여기 저기 산재하여 장소적 특징을 갖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세 번째는 차량전용, 보차겸용, 보행전용 등 길의 위계가 없다는 점이었다. 진출입구가 변하면서 막다른 길, 차량이 집중되는 길이 생기면서 결과적으로 자동차가 점유한 지방의 소도읍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연구진은 조사, 토론, 계획을 거쳐 조성단지의 목표를 4가지로 압축했다. 첫째, 숙박을 하지 않는 관광지에서 체류형 거점으로 성격을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내륙관광지는 스쳐가는 경유형 관광지다. 사찰과 명승지 앞은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 손님을 대상으로 북적이지만 이들 대부분은 당일 관광으로 그다지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여가 패턴을 갈망하지만 대부분의 집단관광지에서 이를 소화하지 못한다. 용대관광지를 새로운 관광 패턴에 대응하는 가족중심의 여가 베이스캠프로 만들기 위해 산악지역의 특징에 부합되는 저층형 가족 펜션 단지로 차별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수기를 제외한 봄, 가을에는 다양한 지역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계절형 여가단지로 만드는 것이다. 눈썰매, 얼음축구, 황태축제, 만해축제 등의 기존 행사에 수변꽃길 자전거 타기와 같은 새로운 프로그램, 그리고 인근의 스키장, 백담사, 내린천 래프팅, 번지점프장, 빙어축제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둘째, ‘관광지’에서 ‘마을’ 개념으로 단지의 성격을 전환하는 것이다. 첫 번째 전략적 목표에도 불구하고 용대리는 규모면에서 대규모 자본이 투자되어 여가시설을 확보한 리조트타운이 되기에는 미흡한 곳이다. 다행히 용대리는 전국 최대의 황태 생산과 판매지로 관광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더라도 경제가 살아 있는 곳이다. 청장년층이 두텁고 마을의 연대가 끈끈하다. 주민 스스로가 가꾸어 가는 소도읍의 전형적 마을이 된다면 관광수입은 부차적으로 따라온다는 것이 연구진의 생각이었다. 이는 2004년 가을 연구진 전체가 일본의 마을 가꾸기 사례를 조사한 이후에 공감한 것이다. 나가노현 오부세죠우(長野縣 小布施町)는 주민과 전문가 몇 사람의 15년 간의 끈질긴 노력으로 변모한 작은 산악 마을로, 견학 오는 사람들 덕분에 오부세의 특산 술과 밤과자는 전국적 브랜드가 되었다. 마을경관의 품격이 지역특산품의 가치를 극대화한 사례다. 반면 전문가나 관 주도로 만든 다른 소도읍과 마을은 대부분 방치되어 있었다. 용대리에서 가장 큰 숙제는 토지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타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셋째, 강력한 지침을 통해 도시, 건축, 가로시설물이 질서를 이루는 소도읍의 경관 전형을 만드는 것이다. 개별 건축의 독창성이나 개성보다는 단지 전체가 통일감을 이루어 방문객의 심상에 각인하는 장소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길, 오픈스페이스, 건축의 구법과 재료, 지붕 형태, 사인, 스트리트퍼니처 등 모든 인공건조물을 조율하는 제도적, 실행적 지침을 수립한다는 의미다. 강력한 도시건축지침으로 이름이 난 독일의 상세계획에 버금가는 강력한 수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경관계획이 관광진흥법에 의한 조성계획에 반영되어 승인되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제2종 지구단위계획’과 동등한 법적 효력을 갖게 된다. 이는 이미 분양이 끝난 필지의 소유자들의 거센 반발을 잠재울 인센티브와 설득이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1년에 걸친 연구진의 작업의 결과는 4백여 쪽에 달하는 한국 최초의 종합적 도시건축 경관지침보고서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감히 한국 최초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전체를, 블록, 필지별로 나누고 구체적 계획, 설계, 검증을 거친 ‘선설계 후지침’이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민간이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할 일반해와 토지주가 활용할 수 있는 특수해를 동시에 제공한 점도 보고서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연구진이 얻은 결실은 보고서와 같은 물리적 결실보다도 토지주와 주민의 반대를 설득하고 진행한 과정이다. 연구진과 인제군이 수립한 계획안을 이해관계가 첨예한 토지주와 주민이 동의하였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토지주들이 자발적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이는 탑다운(top Down)과 보텀업(Bottom Up)의 결합이 우리나라의 소도읍에서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만드는 것에서 삶을 조직하는 것으로

보고서는 이제 인제군과 주민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연구진이 직접 설계해서 지은 관리 동과 화장실 이외에는 지침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없다. 인제군의 의지가 희석되고, 상황에 따라 토지주들이 태도를 바꾸어 지침을 거부하고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연구진의 의도대로 모든 집이 지어진다 해도 건축 잡지의 주목을 끄는 경관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용대 경관계획의 성과와 의미는 시지각적 형태를 구축하고 규정짓는 물리적 결과보다는 다음과 같은 건축의 새로운 영역과 실천의 가능성을 찾아내려고 시도한 데 있다.

첫째, ‘경관’의 개념을 ‘형태’에서 ‘공간’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한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경관’은 나무를 심고 정원을 가꾸는 ‘조경’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거나 외부공간으로 드러난 시각적 대상의 특징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조망축, 스카이라인, 비오톱과 같은 추상적이고 진부한 용어들이 경관 연구에서 통용되는 경관 요소였다. 이는 광역계획과 같은 거시적 도시계획이나 자연환경에 중점을 두는 조경계획의 한계이다. 반면 건축계에서는 건축가의 ‘작품’이 끝난 후 마무리를 하는 일, 혹은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해 건축에 덧붙이는 장식으로 경관을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경관은 시지각적인 것만은 아니다. 도시경관(urban landscape)은 인공환경과 인공화한 자연환경의 형태뿐만 아니라 ‘건축공간’을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이다. ‘건축공간’을 소거한 경관계획은 표피적 이미지나 상업적 아이코노그래피로 쉽게 전락할 수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하여 건축, 오픈스페이스, 조경, 가로시설물의 시각적, 공간적, 기술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계획, 설계하고 이를 현실화할 수 있는 수단과 제도로서의 지침을 수립하는 것으로 경관계획의 정의를 확장했다는 점은 큰 의미를 지닌다.

둘째, 이번 연구에서 다루었던 대상은 예술인의 작업공간, 카페, 미술관과는 거리가 먼 콘도, 민박집, 향토음식점, 상점, 그리고 이들과 주거공간을 혼합한 일상적 복합건축이었다. 토지주와 주민은 문화에 관심이 있는 고급 건축주가 아니라 부동산 이익을 기대하는 가장 일반적 유형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수준 높은 건축과 좋은 마을을 만들어 보자고 설득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었다. 경제적 이익과 직결된 당근과 채찍 전략만이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토지주 개인이 마음대로 개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는 단지 전체가 생존할 수 없지만 단지 전체의 수준을 높이면 경제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국내외 사례를 통해 보여 주었다. 지침을 이행하는 토지주에게는 복합용도, 건폐율과 용적률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기존 조성계획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도록 했다. 연구진은 초반에 토지주의 거센 반발을 예상했지만 서울과 인제를 오가면서 여러 차례 가진 토론회에서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전국토를 지배하는 개발이익, 질보다 양, 공적 영역보다 사적 영역을 중시하는 사회적 통념, 서울에 대한 지방의 열등감, 대중소비문화 등 현대 한국의 일상공간이 가진 가장 보편적인 문제를 그대로 갖고 있는 곳이 용대리이다. 이 점에서 용대리는 서울 근교의 국도나 침체된 소도읍과 별반 다름이 없다. 문화 엘리트가 모여서 기획한 헤이리 아트밸리와 같은 문화계층적 차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이점이 있다면 한발 앞서간 인제군의 공무원의 의식수준과 의지,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적어도 저항 없이 따라와 준 토지주와 주민에게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용대리에서의 작업은 역설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가 겪어야 할 문제의 해법은 헤이리 아트밸리의 집단 엘리트적 접근법이나 제주 중문단지와 같은 거대자본과 개발방식, 그 양극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용대리의 해법은 향후 지방 소도시의 도시건축설계의 하나의 전형이 될 것이다.

셋째, 건축, 도시, 환경 디자인이 협업하는 학제적 틀을 실험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도시공간은 거시적 도시설계와 미시적 건축설계의 공백에 방치되어 있었다. 건축물과 길과의 접점공간의 디테일, 보행로의 바닥재료나 패턴과 같은 미시적 설계는 축, 용도, 도로 구조와 같은 기술적, 거시적 틀과는 무관하거나 하위의 행위로 간주되었다. 반대로 건축가들은 법, 지침, 규칙과 제도적 실행방안을 비문화적, 관료적 통제의 틀로서 외면하거나 이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았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는 서구의 철학과 사상을 지배하는 실증주의적 공간인식(제1의 공간)과 예술관념적 공간인식(제2의 공간)의 양자 구도 속에서 일상공간이 주변으로 밀려났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그러나 한국의 일상공간이 안고 있는 문제는 서구의 도시에 비해 더욱 심각하다. 우리는 도시와 건축의 괴리를 가져온 서구적 근대주의를 겪지 않고 서구의 건축과 도시론을 수용한 태생적 문제를 안고 있다. 제1의 공간이 기대고 있는 자본권력과 제2의 공간이 기대고 있는 문화권력은 비판적, 경쟁적 관계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 공생관계다. 자본권력과 문화권력은 건축계를 양극화 구도의 딜레마에 빠지게 하고 있다. 소수의 문화소비층을 위한 아틀리에형 사무실과 스타건축가들이 문화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자본권력에 순응하기 위해서 사무실은 점차 대형화된다. 양극화의 정당성은 흔히 디자인, 기술, 효율성에 바탕을 둔 경쟁논리로 포장되지만 실상 양극화의 속도만큼 디자인도, 기술도, 효율성도 확보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양극화 사이에 건축의 다양성이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일상공간을 개선하고자 하는 거창한 사회정의나 윤리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보편적 건축인의 생존을 위해서도 양극화 사이의 새로운 대안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르페브르가 지적한 것처럼 제1과 제2의 공간인식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하는 제의 공간(삶의 공간, 사회적 공간) 인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용대 경관계획연구 참여자의 구성과 작업방식은 체계적이거나 효율적이지는 않았다. 시행착오와 피드백을 거치고 불필요한 작업을 반복하기도 했다. 결과보고서의 지침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창작을 지나치게 통제하는 관료적 수단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건축설계와 도시설계 범주에 속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용대 경관계획연구가 만들어 낸 것은 분명하다. 만드는 것에서 삶을 조직하는 건축인의 공간정치의 실험, 실천, 습득이 바로 그것이다.

김성홍,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내설악 용대관광지 경관계획연구」공동책임연구원

내설악 용대관광지(십이선녀마을) 경관계획연구 개요
위치: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1리 십이선녀탕 입구
면적: 335,800m2 (101,580평)
지역 지구: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한 계획관리지역/관광진흥법에 의한 관광지
민간분양필지: 43개 필지, 64,816.3m2 (19,607평)
최대 건축연면적: 54,071.3m2 (16,357평)
시설: 공공편익시설, 숙박시설, 상가시설, 운동오락시설, 휴양문화시설, 시설녹지, 유보지, 녹지, 하천
보고서의 주요내용: 단지기본계획, 민간부문 블록별 필지별 경관지침(건축물 규모, 용도, 배치, 입단면, 주차, 재료, 색채, 구법, 조경, 사인), 공공부문 경관지침(차도, 보도, 주차장, 녹지, 공공시설물), 장단기 경관조성 시행방안

연구진
주대관(경기대학교 건축학부), 김성홍(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이상구(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임지택(이애오건축), 홍성천(엑토건축), 조정구(구가건축), 강승희(가와건축), 박상욱(팍스건축), 이진욱(잇지건축), 황지연(디자인플라이) 및 보조연구원, 강원도 인제군 문화관광과
연구 기간: 2004년 7월 - 2005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