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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omad의 글쓰기

서평: 도시 건축의 새로운 상상력 (2010.03)

서평 : 도시 건축의 새로운 상상력

건축 1003 대한건축학회지, 2010.03, pp.87-88.
전진영/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


지난 십여 년 동안 국내 건축계가 경험한 바람직한 변화 중 한 가지는 건축가의 업역(業域) 개념이 ‘도시’로 확장된 것이다. 건축의 ‘도시성’ 또는 ‘도시건축’의 개념이 미약했던 과거 우리나라에서 ‘도시’는 건축가의 권한 밖이었고 먼 이웃에 불과했으며 심지어는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세계였다. 도시를 논하는 건축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도시담론이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숙성된 체계적 지식의 결과라기보다는 개인적 성찰 또는 경험에 바탕을 둔 내용들이 많다보니 건축계에 공명을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다루어진 ‘도시학’은 도시의 공학적, 통계학적 속성에 초점을 맞춘 기계적인 ‘딱딱함’ 또는 최근 유행하는 디자인 만능주의에 편승한 표피적인 ‘흐물흐물함’의 양극에 머물었지만 진정 도시와 건축의 연결고리나 양자의 프로그램 및 하드웨어적 속성을 동시에 다루려는 태도는 여전히 미흡했던 것 같다. 1990년대에 시작된 ‘지구단위계획’에 의해 건축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도시설계의 멍석이 깔린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로되 그에 걸맞은 지식기반의 정립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어쩌면 대다수 4년제 공대 출신인 기성건축가들이 그나마 ‘도시를 디자인하는 것도 건축가의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에 만족하고, 도시설계를 지구단위계획의 동의어로 여기는 것쯤은 그냥 넘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으며 국내 대학에 불어 닥친 건축학 교육의 국제인증제도에 따라 전반적인 커리큘럼이 정비되면서 각 대학마다 도시 관련 강좌들이 신설되었으며 나 자신도 3 년 전부터 학부과정에 ‘도시설계론’이란 3학점짜리 이론과목을 개설하여 강의하고 있다. 지금은 정착되어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이 강좌도 ‘개발’ 당시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는데 수세기를 거치며 체계적으로 정립된 서구의 도시학이 좋은 참고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습속(習俗)과 상황이 다른 우리가 그대로 따라야 하는 모델은 아니라는 딜레마 때문이었다.

위 강의의 구성은, 시대와 지역을 포괄하여 인류의 도시문화 형성에 대한 개론 및 전문인으로서의 기본 소양 함양에 필요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에는 강좌의 참고서적으로 마땅히 추천할만한 책을 찾지 못했었다. L.베네볼로의 [세계의 도시사]나 E.베이컨의 [도시의 디자인]을 포함하여 십여 권의 책을 교재로 정해 강의 주제에 따라 적절하게 발췌, 원용하면서도 왠지 남의 얘기만 하는 것 같은 씁쓸함을 떨쳐버릴 수 없던 터에 김성홍 교수의 최근 저서를 접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립대학교의 김성홍 교수가 쓴 [도시건축의 새로운 상상력]은 결국 잡학(雜學)일수밖에 없는 도시학의 속성을 건축가 또는 건축학도들에게 잘 보여주는 책이다. 굳이 통계학이나 공학의 전문용어를 몰라도 되고 굳이 건축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건강한 상식을 가진 교양인이라면 흥미롭게 빠져들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듯이 “... 연대기적,지역적,양식적,작가적,작품적 틀에서 벗어나 시간과 공간 틀을 가로질러 여행하고자...” 하는 가벼움과 자유로움 덕분에 이 책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좋은 책이 갖추어야 하는 조건 중 중요한 하나가 충족된 것이다.

18세기 조선시대의 추사 고택과 중세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몬테 성’의 비교를 통해 ‘기하’와 ‘모폴로지’의 본질을 밝히는 초반부는, 흔히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로 인식했던 기존 시각의 새로운 전환인 동시에 공간의 창작과정에 내포된 모순과 갈등을 밝히는 도구로 작용한다.

이어지는 유목민의 방 ‘게르’와 고대 로마 판테온의 비교는 다음 장에 나오는 방과 매트릭스, 복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포석인데, 몇 개의 장(章)을 넘기면서 독자의 관심은 자연스레 건축에서 도시로 옮겨진다. 현대도시의 두 전형인 콜라주와 그리드는 사실 저자 이전에도 이론가들이 거론한 내용이라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 서구 도시의 성찰과 대안을 위한 콜라주와 그리드는 동아시아 도시에서는 일종의 참고서일 뿐 교과서가 아니다. 콜라주를 종이를 찢어 더덕더덕 붙이는 설계방법론으로 생각하거나 그리드 위에 그린 쿨하스의 초현실적 그림을 설계방법론으로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권고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도시 취급의 경박함과 어설픔을 경계하게 한다.

이어지는 장(章) ‘다시 뜨는 동아시아의 도시’에서 저자는 잘 숙성된 서구 도시들에서 찾을 수 없는 역동이 동아시아의 도시들에 잠재하고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 유럽과 미국의 건축가들은 아시아에 비견할 기회가 그들의 땅에서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시아에서 벌이는 그들의 실험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과감하고 무모하다. 토종 건축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기회가 그들에게는 주어진다...” 라는 저자의 언급에서는 명품건축, 명품도시 운운(云云)하며 외국의 스타 건축가(Star-architect)를 안방에 불러들여 도시나 건축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우리의 현실이 떠올라 씁쓸하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적지 않은 분량을 한국의 도시 - 특히 서울 -에 할애하여 우리 도시들의 본질과 현황,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국내에서 발간된 도시 관련 여타 서적들에서는 찾기 힘든 수확이다. 서구의 앞선 도시학 계보를 답습하거나 소개하는 정도에 머물지 않고 우리 도시와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부분이다.

저자가 묘사하는 서울은 “... 전통 건축, 서양건축, 도시계획의 눈으로 보면 서울은 혼돈 자체다. 그러나 혼돈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혼돈도 있고 나쁜 혼돈도 있다. 혼돈은 가능성과 역동성의 반증...”이란 표현에 녹아있다. ‘혼돈’이야말로 ‘역사 도시면서도 가장 비역사적인’ 서울의 가치를 고색창연한 서구 도시들의 품격에 견주게 하는 힘이라는 아이러니를 재삼 확인하는 소결(小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저자가 정의하는 좋은 건축은 무엇인가? 그것은 “... 도시에 작은 파장을 형성해 나가는 진앙...”이다. 이들이 연결망을 형성할 때 도시 문화는 더욱 풍성해진다. 거대 도시에서 건축의 공공성이란 바로 이런 점의 연결망이다. 혁신적인 건축일수록 이질적 모폴로지가 만나는 접점은 내부 공간 깊숙이 침투한다. 접점이 많을수록 건축 공간은 풍부해진다. 도시를 향한 한국 건축의 상상력은 진부한 내부 공간을 혁신하고 잡종적 외피를 걷어 내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읽는다면, 이 책은 기존 이론들을 정리하거나 저자의 도시건축적 이념을 선언하기 위해 쓰여 졌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건축, 도시담론의 답을 주는데 있지 않고 얼마나 다양한 질문들이 존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관점으로 책의 내용에 공감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어휘로 저자가 띄우는 운(韻)을 되받아 또 다른 이야기로 구연(口演)하려는 작은 성의가 필요하다.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면 독자의 화운(和韻)에 귀를 쫑긋 세운 김성홍 교수를 책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