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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언어 (2001.10)

건축과 언어: 1960년대 이후 서구건축의 이론과 실험
인문언어(Lingua Humanitatis) 제2집, 2001.10 제1권 2호, pp.107-121.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1. 머리말

1960년대 후반 영미의 건축학계는 20세기 전반기에 건축계를 지배해 온 근대건축을 비판하고 새로운 건축을 모색하게 된다. 거장건축가들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미국에서는 자본, 기술, 조직을 바탕으로 한 기업형 설계사무소가 등장하였다. 이들은 1920년대 근대건축의 아방가르드 운동과는 달리 절대적 건축의 원칙을 내세우지 않았다. 자본주의 기업이론을 도입하여 건축주의 요구와 현장의 문제를 중요시하는 경영기법으로 전환하였다. 한편 학계에서는 유럽대륙의 인문학과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아 학구적 건축이론 등장하였고, 이 때문에 대학과 현장이 점차 유리된다. 당시 인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구조주의 언어학은 인류학, 정신분석학, 미학뿐 아니라 현대건축에도 깊은 영향을 주게된다. 그러나 언어학을 건축에 적용하는 태도와 방법은 건축가나 이론가에 따라 차이가 있었고 서로 상반된 경우도 있었다.

‘건축언어’라는 표현은 두 영역의 관계를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인간은 말과 동작뿐만 아니라 사물을 통해 서로 의사를 주고받는다. 건축의 형태, 색상, 구성 역시 어떤 집단이나 개인의 사상, 가치관, 아이디어를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건축을 습득하는 과정도 언어를 배우는 것과 유사하다. 한정된 단어와 문법을 익힌 어린이는 점차 다양한 어휘와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성년이 되면서 자신의 내면의 세계와 개성을 표현한다. 건축가 역시 기초적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나 집단과 사회의 사상, 가치관 등을 표현하는 건축가로 성장한다. 이점에서 건축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언어학에서 파생된 수사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60년대 이후 언어학이 건축에 도입된 현상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1960년대 후반 이후 ‘언어건축실험’의 경향과 그 영향을 논의하고자 한다.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언어학이 건축이론에 도입된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둘째, 건축이론 및 비평서 중 건축과 언어의 관계를 다룬 벤츄리(Rovert Venturi), 젱크스(Charles Jencks), 아이젠만(Peter Eisenman), 콜쿠훈(Alan Colquhoun), 간델소나스(Mario Gandelsonas)의 글을 중심으로 건축에 언어이론이 두 가지 상반된 관점으로 적용된 과정과 결과를 기술하였다. 마지막으로 시각예술, 건축, 언어의 구조적 동질성과 특이성을 비교하여 건축과 언어의 접목을 현대건축의 쟁점과 결부하여 논의하였다.

2. 탈근대건축과 언어학

건축과 언어의 접목은 두 영역이 유사한 구조와 내용을 갖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르네상스 이론가 알베르띠가 건축이론을 집대성한 이후 건축계에는 건축의 요소와 이를 구성하는 문법적, 수사적 법칙들이 있었다고 믿었다. 이러한 건축의 언어적 특성을 이론과 실험으로 전환한 계기가 바로 언어학을 비언어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기호의 과학’, 즉 기호학의 등장이었다. 그러나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어떤 이론을 수용하거나 차용할 때 배경과 맥락을 간과하여 이론을 왜곡하기가 쉽다. 건축에서의 기호학의 도입 역시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에 대해 대체적으로 비판적이다. 건축의 복합적 측면을 간과하고 시각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였다는 것이 비평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비평의 대부분은 건축과 언어를 내밀하게 비교, 분석한 토대에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평 스스로가 시각적 측면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건축과 언어의 접목에 대한 비평은 ‘樣式批評’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1980년대 영미의 건축계를 지배했던 탈근대주의 건축에 대한 비평을 ‘언어건축실험’에 대한 비판과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실험을 현실과 유리된 관념이나 유희로 치부하기보다는 이 실험이 현대건축에 미친 영향을 심도있게 고찰 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시도는 사회와 유리된 건축의 독자적 실험이었다기보다는 당시 철학과 인문학과 연계된 사회문화적 현상의 일부였다. 근대건축을 새롭게 조망하고 접근하려는 최근의 건축의 동향은 바로 이들의 이론과 실험에 대한 반성과 자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60년 후반의 반근대주의 운동은 사회, 문화, 기술 등 건축외적 상황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건축외적 상황뿐만 아니라 근대건축 내부에서도 그 동인을 찾을 수 있다. 1920년대 이후 근대건축은 서양건축사에서 천년 이상 이어져 왔던 ‘表象’의 기능과 역할을 부정하고 소거하려고 하였다. ‘표상’은 조형예술의 본질적 목적이다. 표상은 어떤 ‘매체’를 통하여 ‘매체’ 자체가 아닌 다른 무엇, 즉 의도하는 ‘내용’을 지칭하거나 함축하는 행위와 이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시대 이래 수 천년 지속되었던 석조건축의 기둥양식은 구조적 기능 이상의 표상 기능을 하고 있었다. 도리아식은 간결하고 힘있는 형태로 수려한 곡선의 코린트식 기둥과 대조를 이루고, 두 기둥 양식은 그리스신화의 남성과 여성에 비유된다. 기둥이 `형식'이라면 그 것이 함축, 지칭하는 남성과 여성은 `내용'이다. 조형예술은 이처럼 본질적으로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물리적 형식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또한 ‘표상’은 ‘미’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 미는 감각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집단이 만들어낸 집합적 상징체계를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절대적 미는 상대적, 자의적, 관습적 미와 구별된다. 공통의 가치관의 붕괴하여 18세기 이후에는 표상의 기능이 약해지거나 와해된다. 건축형태와 그 의미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는 1920년대를 전후하여 절정을 이룬다. 18세기 이전에 건축형태를 관습적 의미와 연결시켰다면, 18세기 이후에는 건축외적 지시대상을 배제하고 건축자체의 자율성을 추구하였다. 건축형태를 지배하는 법칙 혹은 질서는 매부에 있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 결과 표상은 사회적 규범에서 개인의 표현의 문제로 축약되었다. ‘문화적’ 요소를 배제한 자율성 이론은 그 후 근대건축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건축계에서는 소거되었던 ‘문화적 표상’, ‘상징’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근대건축의 특징인 형식상의 단조로움과 경직된 양식에 반대하고 건축형태의 문화적 의미를 재생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Colquhoun, 1981). 언어학의 도입된 시기가 바로 이 때이다. 언어학은 근대건축에서 억압되었던 건축의 형태와 그 의미를 새롭게 조망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때문에 언어학을 건축에 도입하려했던 사람들은 전통적 의미의 건축가나 이론가와는 다른 새로운 유형의 건축인들이었다. 근대건축의 거장들이 대학 울타리 밖에서 지속적 실무를 통하여 자신의 건축관을 정립하였다면 1960년대 이후 영미의 건축계는 대학과 현장이 분리되어 있었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었던 건축인은 대학에서 설계를 가르치면서 대학 밖에서 소규모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아틀리에형 건축가나 대학에 몸담고 있지는 않았지만 학구적 성향을 띈 이론형 건축가들이었다.

3. 記號로서의 건축

건축과 언어의 접목을 가장 먼저 시도한 사람은 필라델피아 건축가 로버트 벤츄리이다. 그는 몇 개의 실험적 주택작품을 설계한 후 자신의 건축을 이론화한 “건축에서의 복합과 대립(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을 출간하여 근대건축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입장에 섰다. 그가 근대건축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근대건축의 무미건조한 형태이다. 벤츄리는 단순한 형태는 하나의 의미, 고정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대립, 복합, 애매함, 긴장, 이중성이다. 이 책에서 벤츄리는 근대건축에서는 억압되었던 서양건축의 복합, 다층적 의미체계와 갈등 혹은 대립을 읽어내려 하였다. 고대 로마의 건축이론가 비트루비우스가 실용성(用, utilitas), 견고함(强, firmitas), 아름다움(美, venustas)을 건축의 요소로 삼은 것부터가 건축이 하나의 가치체계로 볼 수 없는 복합적, 대립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건축을 다양한 관점과 차원에서 이해할 때 지각과 인식은 보다 생생해진다는 것이다. 부분이 전체를 위해 양보하거나 절충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보았을 때 불완전한 것들도 전체적으로 보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Venturi, 1966).

벤츄리는 건축을 하나의 규범으로 이해하려는 것을 반대했다. 절대적 논리에 충실했던 르네상스건축보다도 절충적인 매너리즘건축, 바로크, 로코코 양식의 건축을 예로 들었다. 바로크 건축가 보로미니가 설계한 산카를로 알 꽈뜨로 폰타네 성당은 평면의 네 모서리가 모두 동일하게 처리되어 그리스의 십자형평면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평면은 동서축으로 기울어져 라틴 십자형평면의 요소도 지닌다. 물결처럼 이어진 벽은 마치 원형 평면을 일그러뜨린 것처럼 인식할 수 있다. 벤츄리는 이처럼 고전 건축을 하나의 규범이나 원칙보다는 다의적으로 해석한다. 현대건축은 프로그램과 기술이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표현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과거보다 건축은 복합적, 대립적이라는 것이다. 르꼬르뷔제나 미스반데르로에보다는 알바알토와 라이트의 건축에서 자신의 논리를 설명했다. 미스의 격자형 틀보다는 루이칸이 설계한 필라델피아의 오피스 건축의 대각선 요소에서 대립성을 읽었다. 라이트의 존슨왁스사옥의 둥근 모서리는 에워싸인 느낌과 내부와 외부공간의 대비를 해석했다. 벤츄리의 이론에는 바우하우스 이후의 아카데미즘, 기술에 대한 허구성, 대중문화를 경멸하는 순수미학에 대한 비판이 깔려있다.

1960년 설계한 필라델피아의 노인집합주거에서 벤츄리는 당시 그 도시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였던 붉은 벽돌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필라델피아의 도시역사를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재료의 효율성, 경제성, 물성보다는 재료가 함축하는 문화적 의미를 더 강조하였던 것이다. 평면과 입면의 구성에서는 ‘관습적 요소’와 ‘비관습적 요소’를 대비시켜 대립, 이중성을 구체화하려고 하였다. 입구의 백색을 사용한 점, 중앙에 검은 색 기둥을 강조한 점은 색상과 구성에서 이중적 태도를 견지하려는 것이다. 지붕의 텔레비전 안테나는 텔레비전으로 소일하는 노인을 상징하려는 의도였다. 1962년 설계한 펜실베니아 체스터넷 힐의 주택에서도 ‘절대논리’와 ‘상황논리’를 대비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대칭평면과 입면을 유지하기 위해 구조와 관계없는 가벽을 세우면서도 형태나 비례에서는 정형성을 의도적으로 탈피하려고 하였다. 기능에 따라 대칭을 부분적으로 파괴하는 점, 벽난로를 중심선에서 벗어나게 배치시킨 점, 창을 좌우대칭으로 하면서도 정형성을 탈피하려는 것이 그것이다. 대칭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성, 절대성을 의미하며 비정형적 요소는 현실세계 즉 도시, 사람, 정황을 나타낸다.

벤츄리의 복합성과 대립의 이론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건축은 기본적 용도를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문은 집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경계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문은 집 주인의 사회적 신분, 개성, 취향까지도 표현한다. 전자를 일차적 기능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차적 기능이다. 벤츄리는 근대건축이 일차적 기능은 지나치게 강조한 반면 이차적인 기능은 의도적으로 배제하였다고 보았다. 둘째, 이차적 기능은 대중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형태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숙련된 건축가나 관심있는 소수의 사람이나 이해할 수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세부적인 디테일, 재료보다는 대중이 선호하는 요소에 중점을 둔 것이다. 실제로 벤츄리의 책에 인용된 대부분의 실례는 건축물의 입면도에 나타낼 수 있는 구체적 요소이다. 아파트 저층의 기둥, 안테나, 창의 배열 등을 통한 건축의 표현은 좋은 예이다.

벤츄리의 두 가지 전제는 바로 건축과 언어가 공유하는 부분이다. 소쉬르의 이론에 비유한다면 형태는 ‘기표(signifier)’이며 그 것이 지칭하는 문화적 의미는 ‘기의(signified)’이다. 언어에서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임의적인 것처럼 건축형태와 의미 역시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집단이나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한 결과이다. 미국의 국회의사당 건물은 유럽의 고전양식을 빌려왔지만 그 건물은 미국사람에게 권위와 정통성을 나타낸다. 국회의사당의 의미는 미국의 심장부에 놓여있기 때문에 상징적 의미가 더욱 강하다. 기호는 그 자체로서 본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어떤 체계내의 다른 기호와의 관계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한 소쉬르의 이론에 비추어 볼 수 있다. 임의적 관계에 놓인 기표와 기의는 일단 문화적 의미를 가지게 되면 그 관계는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 소쉬르의 기호학이 건축에 제공하는 것은 건축 역시 언어처럼 한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social institution)'라는 점이다. 벤츄리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건축의 아방가르드가 주장한 ‘건축의 자율성’은 창백한 엘리티시즘에 불과한 것이었다.

벤츄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1972년에 출간한 “라스베가스에서의 교훈(Learning from Las Vegas)”에서 저속하고 대중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미국의 일상환경에서 건축설계에 필요한 자극을 끌어내려고 시도했다. 라스베가스의 휘황찬란한 간판과 네온사인에서 그는 미국만이 갖고 있는 버내큘러 건축의 가능성을 찾으려했던 것이다(Venturi, 1972). 20여 년전 미국의 논객 잭슨(J.B. Jackson)이 황량한 사막과 트레일러에서 미학을 읽어낸 것처럼 벤츄리 역시 상업화된 미국의 도시에서 근대건축의 문제를 탈출하려 했다. 라스베가스의 교훈은 ‘장식 헛간’과 ‘오리’의 비유다. ‘오리’는 조각처럼 다듬은 하나의 형태이다. 반면 ‘장식 헛간’은 실용적 건축에다가 상업적 간판을 붙인 건축이다. ‘헛간’은 자동차 도로의 시각적 풍부함에서 나온다. ‘오리’는 기표와 기의가 닮은꼴이므로 벤츄리의 관점에서 ‘아이콘(icon)’이다. ‘헛간’은 기표와 기의가 관습과 문화로 연결된 것이므로 ‘상징(symbol)’이다. 벤츄리에게 근대건축은 상징성을 잃은 ‘오리’이다. 벤츄리가 그리는 도시와 건축은 근대건축의 공간, 형태, 구조의 엄격함을 탈피한 ‘기호의 건축’과 ‘기호의 도시’이다.

벤츄리의 이론은 건축계의 반향을 일으켰지만 탈근대주의의 짧은 수명과 함께 더 이상의 이론적 깊이나 실험을 동반하지 못했다. 근대건축을 아이콘으로 보았던 그의 관점은 처음부터 근대건축을 시각적으로 보는 한계를 드러냈다. 대중에게 호소할 건축 요소를 강조했지만 이 요소들을 통합할 전체적 질서와 논리는 없었다. 부분을 포괄하는 상위 개념과 이를 연결하는 위계가 없었던 것이다. 여러 개의 부분이 모인 합집합으로서 그의 건축이 서 있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요소가 많을수록 다의적, 복합적, 인본적 건축이 된다. 벤츄리의 이론은 전통건축의 요소를 차용해서 혼성한 탈근대주의 건축의 시발점이 된다. 벤츄리가 추구했던 대중문화 속의 기호의 건축, 자동차에서 경험하는 기호의 도시는 그 후 20여 년간 근대건축의 공백을 메우게 된다.

벤츄리 이후 건축과 언어를 이론으로 정리한 사람은 건축이론가 찰스 젱크스(Charles Jencks)이다. 그는 1977년 출간한 “탈근대건축의 언어(The Language of Post Modern Architecture)”에서 건축을 기호로 보는 벤츄리의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견해를 보였다. 그는 건축의 본질적인 기능이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라는 점은 동의했지만 소통하는 방식을 상징(장식 헛간)과 아이콘(오리)으로 단순화 한 점은 극단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근대건축을 오리와 같은 아이콘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기피와 기의가 형태상으로 닮은 경우가 아이콘인데 르꼬르뷔제의 롱샹교회의 경우 배, 손, 모자, 수도자의 모습으로 읽혀지기는 하지만 어떤 것과 뚜렷하게 닮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개로 해석되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서 롱샹을 은유라고 해석한다(Jencks, 1977). 벤츄리는 근대건축가들이 공간, 구조, 프로그램의 건축체계를 아이콘으로 왜곡하였다고 보는 반면 젱크스는 오히려 근대건축가들이 아이콘의 은유적 의미를 부정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젱크스가 르꼬르뷔제의 작품 중 유독 롱샹교회를 예로 든 것은 다른 작품과 달리 아이콘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관점차이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소비문화에 대해서는 두 사람은 묘한 일치를 보인다. 건축을 대중과 소통하는 기호로 보았고 근대건축이 경시했던 일상의 풍경에서 시각적 유희와 해학을 찾았다. 벤츄리는 목구조로 양산된 평범한 건축 위에 붙여진 간판에서 상징성을, 젱크스는 할리우드 배우가 사는 절충주의 호화주택이나 도넛 모양의 상업건축에서 상징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상징은 대중문화 속의 소수집단이 공통분모로 여기는 기호였다. 삶과 행위가 전개되는 공간과 그 사회문화적 의미보다는 대중에게 주입된 시각코드(visual code)를 소통의 주요 매체로 보았던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상황을 돌아본다면 근대건축에 대한 벤츄리와 젱크스의 이론과 실험이 이해된다. 대공황과 2차대전 동안 잠시 주춤했던 미국의 경제는 50년대에는 다시 만개하여 중산층의 소비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중산계층이 스스로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서 전환했다고 인식하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때다. 미국이 외부적으로 베트남전에 개입하고 소련과의 냉전시대로 접어들었지만 내부적으로는 소비문화의 새로운 장을 여는 시대이기도 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는 전 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미국의 과학기술의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월터 크롱카이트의 목소리였다. 미디어의 힘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었다. 막강한 경제력과 이와 같이 등장하는 중산계층이 떠받치는 미국문화에서 근대건축의 엄격하고 절제된 미학에 반기를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럽대륙의 현학과 규범에 회의, 막강한 경제력, 소비문화,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이러한 흐름을 도출했던 것이다.

4. 건축의 의미론과 구문론

젱크스와 벤츄리가 옹호한 상징주의는 아이젠만(Peter Eisenman)에 의해 격렬한 비판 대상에 놓인다. 로버트 벤츄리가 ‘라스베가스의 교훈’을 출간하기 1년전인 1971년 아이젠만은 당시 그가 주간으로 있었던 건축지에 “오브제에서 關係로(From objects to relationships)”를 싣는다. 제목이 암시하듯 아이젠만은 오브제 중심의 벤츄리와 젱크스의 이론을 비판하고 구체적 이미지를 배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전환하고자 했다. ‘오브제’가 시지각의 대상이라면 ‘관계’는 감각과 경험의 대상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관념의 영역이다. 아이젠만은 건축 뿐 아니라 20세기의 회화도 오브제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레거와 말레비치와 같은 근대주의 화가들은 고전회화의 한계를 넘고자 기하학적 추상성을 추구했지만 여전히 오브제에 집착하는 공통점을 지녔다는 것이다. 회화와 달리 건축은 필연적으로 공간을 가지므로 오브제 중심의 근대건축에 대한 아이젠만의 비판은 더욱 강하다. 근대주의의 정신을 신봉하는 건축가들은 고전건축의 첨탑, 아치, 기둥, 창에 붙어 있는 모든 것들을 장식으로 간주하여 제거하려했고 이전에는 없었던 순수한 형태를 추구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젠만은 건축을 시지각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은 근대건축에서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대표적인 예로 르꼬르뷔제는 고건축의 요소를 부정하는 대신 등장한 기계, 배, 비행기에서 새로운 건축형태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다. 오브제에서 탈피했다기보다는 오브제를 변형하거나 새로운 맥락에 놓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빌라 가르쉬의 기둥 간격의 리듬도 순수한 기하학적 질서라기보다는 르네상스의 이상적 세계관을 새롭게 구현한 것이라고 보았다(Eisenman, 1971).
아이젠만은 소쉬르의 언어학의 한계를 보완하는 촘스키의 이론을 변용했다. 소쉬르의 구조주의적 언어학을 따르면 사물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지 못하고 다른 것과의 관계에 의해 가치를 가진다. 모든 사물은 고유의 이름을 갖고 있다고 믿었던 고전 언어학의 전제를 뒤집고 소쉬르는 소리는 다른 소리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획득한다고 보았다. 언어를 명사들의 집합이 아닌 관계성으로 보았던 것이다. 즉 기피와 기의의 관계가 하나의 기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기피와 기의에는 말하는 사람 즉 화자의 존재가 없다는 비판이 따른다. 건축을 기호로 볼 때 주체의 문제는 더욱 부각된다. 아이젠만이 촘스키의 이론을 받아들인 것은 바로 말하는 사람의 창조적 능력을 이론화한 부분 때문이다. 촘스키가 언어를 실용론(pragmatics), 의미론(semantics), 구문론(syntactics)으로 나눈 것처럼 건축 역시 유사한 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아이젠만의 생각이다. 실용론은 형태와 기능 혹은 기술과의 관계, 의미론은 형태와 사회적, 관습적 의미와의 관계로 각각 해석할 수 있다. 건축이론가 비트루비우스가 건축의 가치를 用, 美, 强으로 나눈 점이 언어학의 분류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벤츄리와 젱크스는 근대건축이 의미론적 측면을 철저히 부정하였다고 본 반면 아이젠만은 근대건축이 여전히 실용론과 의미론에 치중하여 구문론적 측면은 간과했다고 보았다. 아이젠만은 구조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여 건축에서의 구문(syntax)을 정의하려고 했다. 구문은 중심과 주변, 선, 면, 볼륨 등 사회문화적 의미를 전혀 내포하지 않는 순수한 기하학적 요소들의 관계를 말한다. 이점에서 언어에서의 ‘구문’을 건축에 적용할 때 ‘구조’로 의역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아이젠만은 촘스키의 이론에 따라 건축의 구조를 ‘표피 구조’와 ‘심층구조’로 나누었다. 촘스키는 표피구조가 곧바로 화자의 음성으로 드러나는 구조인 반면 심층구조는 언어구조에 대한 지식이나 직관을 가지고 무한한 문장을 만들어 내는 잠재적 능력이라 보았다. 시대와 지역이 달라도 언어는 구조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보편적 언어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한정된 단어를 갖고 다양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언어의 창조적 능력 때문이다. 소쉬르 언어학에서 설자리가 없었던 ‘주체’를 촘스키는 부각시켰다. 아이젠만이 관심을 두 것이 바로 언어의 심층구조와 같은 것이 건축에도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이젠만이 건축의 심층구조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고전건축에서 근대건축까지 계속된 형태와 그 것이 지칭하는 의미의 체계, 즉 표상을 본질적으로 부정하고 의미를 완전히 소거한 순수한 건축형태의 문제로 접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벤츄리는 ‘절대논리’와 ‘상황논리’의 공존과 대립을 이론의 바탕으로 삼았다. 전자가 추상적인 원리와 질서라면 후자는 현실세계의 구체적 상황이다. 전자는 ‘개념(concept)’의 영역이고 후자는 ‘지각(percept)’의 영역이다. 벤츄리는 개념의 영역과 지각의 영역을 접목하려고 했다. 반면 아이젠만은 대상에 대한 지나친 지각을 배척했다. 그는 지각보다 개념을 내 세운다. 지각은 물질의 표면, 재질, 색상, 그리고 구체적 형과 같은 감각적(sensual) 성질을 경험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개념은 앞과 뒤, 기울어짐, 후퇴, 연장, 압축 혹은 전단(剪斷) 등과 같이 감각으로 금방 체험할 수 없는 구조이므로 관념의 대상에 보다 가깝다. 개념적 구조는 결코 직설적으로 의미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암시할 뿐이다. 때문에 심층구조는 다층의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건축의 다층적 다면적 의미체계를 추구했던 점에서 아이젠만의 이론은 벤츄리의 복합성과 맥이 닿는다. 그러나 그는 벤츄리가 추구하였던 건축의 요소나 오브제를 디자인의 대상에서 배제했다. 그 대신 선, 면, 볼륨처럼 전통적 의미가 배제된 기하학적 도형과 이것들 사이의 관계에서 새로운 건축의 해법을 찾으려 했다. 아이젠만의 이론은 당시 인본주의를 가장한 건축대중화 흐름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 반향을 일으켰다. 근대주의의 영웅주의적, 규범적 옷을 벗어 던지면서도 탈근대주의의 천착함을 냉소하는 엘리티시즘이 이론적 경향을 띄어가던 당시 건축학계에서 설득력을 얻었던 것이다.

아이젠만은 이태리의 근대건축가 귀세뻬 떼라니(Giuseppe Terragni)의 건축에서는 르꼬르뷔제와는 다른 구문론적 설계방법을 발견하고 이를 언어학의 이론을 빌어 해석하려고 했다. 자연히 역사적이라기보다는 분석적 접근방법을 취하게 된다. 그가 떼라니의 건축을 해석한 방식은 두 가지이다. 첫째, 공간을 입방체를 썰어 분할하는 과정이다. 둘째, 공간을 마치 카드를 겹치는 것처럼 면을 중첩하여 볼륨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전자는 중심을 가진 덩어리를 잘라내는(subtractive) 방식이라면 후자는 주변으로부터 점차 중심을 향하여 더하는(additive) 방식이다. 벤츄리와 젱크스가 건축을 문, 창, 기둥, 아치 등 기능과 관련된 요소로 분할하였다면 아이젠만은 건축을 기능이 배제된 도형자체의 구성과정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떼라니 건축을 ‘해체’했다면 자신의 설계에서는 이를 ‘재구성’의 과정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허와 실의 관계, 중심과 선의 관계, 그리고 선, 면, 입체간의 관계 등 그가 심층구조라고 정의한 것들에 의해 형태와 공간이 생성된다. 벤츄리와 젱크스가 복원하려고 했던 대중문화코드나 기호의 건축의 천박함을 극복하기 위해 언어의 심층구조를 건축에 적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심층구조가 구체적 형상으로 전이되는 과정은 기술, 예산, 대지 등 외적 상황과 독립적인 내부의 법칙에 의해서이다. 건축가는 이때 중립적 중재자가 된다. 형태와 연관된 관습적 의미를 철저히 분리함으로서 건축의 자율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젠만이 시도한 것처럼 의미가 없거나 중립적인 형태나 공간을 만들 수는 없다. 건축설계는 개인이나 집단의 의도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이젠만이 건축에서 표상의 역할을 배제하고 수수한 논리적 체계로만 해석하려고 했지만 그의 시도는 의미론의 완전한 부정이라기보다는 탈근대주의 건축가들이 옹호한 ‘명백한 의미’의 대중코드나 기호 대신 ‘암시적 의미’를 가진 새로운 형태를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의 옷을 입힌 언어학적 이론에는 건축의 본질적인 구조, 물성, 프로그램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는 건축을 기표와 기의의 관계로 단순화하는 것을 비판하였지만 언어의 심층구조에 해당하는 건축의 심층구조를 건축의 기본적 용도와 무관한 관념적 형태로 축약했다. 벤츄리의 기둥, 창, 안테나는 기능을 탈색시킨 기하학적 도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 글을 출간하고 그 후 작품을 실현했지만 그는 언어학의 이론을 일관되게 발전시키지는 못했다.

간델소나스는 언어학의 이론을 건축에 곧바로 대입하려했던 아이젠만의 모순을 지적한다 (Gandelsonas, 1973; 1974). 우선 촘스키의 이론에서 언어주체의 창의성을 건축에 대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촘스키가 말하는 창의성은 모든 인간이 갖고 태어난 생물학적 특성으로 특정한 시기에 문법구조를 파악하고 보다 어려운 언어를 구사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건축에서의 주체는 결코 모든 인간에 해당되지 않으며 교육과 경험을 쌓은 소수에 한정된다. 창의적 능력을 발휘하는 시기는 유년기가 아니라 오랜 교육과 경험을 쌓은 성년이 되어서이며 이 과정은 죽음에 이르는 시기까지 계속된다. 촘스키의 창의성이 생물학적 특성이라면 건축의 창의성은 사회적 과정에서 습득하는 후천적이다. 둘째, 고전건축 이래 건축형태는 관습적으로 형성된 의미를 지녔지만 결코 언어와 같이 확고한 의미체계는 없었다는 것이다. 가장 쉬운 문의 예를 들어보아도 의미를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문은 용도와 관련된 의미, 즉, ‘들어가는 곳’, ‘나오는 곳’의 의미를 갖는다. 문은 또한 창, 기둥, 벽과의 인접요소와의 관계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더 나아가 비례, 리듬, 수평, 수직관계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언어에서 단어와 같은 분명한 의미의 단위를 건축에서 분리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이점에서 간델소나스는 고전건축 이래 건축이 형태체계를 가졌다고 보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언어와 달리 사회구성원 전체가 건축형태를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지 않으며 비록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하더라도 그 기간은 일시적이다. 언어에서의 구조적 관계를 물리적 형태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보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것이다.

젱크스 역시 구문론을 건축에 적용했는데 그와 아이젠만의 방법론을 비교해보면 ‘건축=언어’의 함정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아이젠만은 근대건축에서 의미론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보는 반면 젱크스는 구문론이 압도했다는 상반된 견해를 가졌다. 젱크스는 문, 창, 기둥, 벽 등의 기능과 관련된 요소를 언어의 단어나 구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구문은 이러한 요소를 조합하는 법칙이나 과정으로 해석했다. ‘바닥과 천장을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중력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서는 바닥은 평평해야한다’ 등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건설하는 것이 건축에서의 구문이라는 것이다. 뷔올레르뒥, 젬퍼, 쉬와지 등의 18세기 건축이론가 이후 근대건축은 이러한 기술적 구문론에 집착했다고 주장했다. 젱크스의 관점에서 아이젠만의 구문은 이성과 논리를 앞세운 기하학 구성에 불과 할 뿐이었다. 반면 아이젠만은 젱크스처럼 건축의 단위를 설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전제했기 때문에 구문은 건설의 과정이 아니라 기하학적 추상성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언어와 건축을 비교의 영역으로 보지 않고 언어를 건축을 투사하는 보편적 이론틀로 접근했기 때문에 오류는 필연적이었다. 간델소나스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언어의 구문론적 요소보다는 '문학적 담론(literary discourse)' 즉 수사학과 건축에서의 구문을 비교하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고 주장했다(Gandelsonas, 1973, 119). 수사학은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서구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방식이었으나 건축에서 표상이 배척되었던 것처럼 근대주의 문학에서 약화되었었다. ‘수사’는 하나의 ‘담론(discourse)’을 토대로 또 다른 ‘담론’이 만들어진 것을 일컫는다. 한 두 페이지에 요약할 수 있는 소설의 ‘삼각관계’는 한 권의 분량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간델소나스는 건축 역시 하나의 담론에 또 다른 담론이 구축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문학처럼 건축의 담론도 소수만이 접근하는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집’은 영구불변의 의미를 가지지만 그 것이 구체화되는 형태는 다양하다. 용도, 기능과 관련된 전자의 의미를 ‘일차 담론’이라고 한다면, ‘집’의 의미를 전혀 왜곡하거나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공존하는 의미는 ‘이차 담론’이다. 아이젠만의 실험에서 기둥에서 벽, 벽에서 볼륨으로 전환하는 기하학적 게임은 일종의 ‘이차 담론’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젠만이 정의한 심층구조가 건축의 물성을 배제한 유클리드 기하학이긴 하였지만 근대건축의 수사적 메카니즘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간델소나스의 평가이다.

5. 건축, 언어구조로 볼 수 있는가?

서양의 고전건축에서는 바닥, 벽, 기둥, 지붕, 문처럼 용도와 구축의 과정에 따라 건축을 요소로 분류하였고 각각의 요소는 사회문화적 의미를 가졌었다. 그러나 근대이후 새로운 기술과 재료의 등장은 건축형태를 구축방식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켰다. 현대회화와 밀월 관계를 유지했던 1920년대 건축형태의 動因은 자연형태나 기계와 같은 다양한 참조체들로 확대되었다. 1960년대 후반 언어학의 도입은 건축형태를 언어와 같은 단위로 해체할 수 있는가 하는 근대건축의 본질적 물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앞의 논쟁이 시사하는 것은 건축을 언어로 볼 것인가 하는 원론적인 질문이 아니라 건축을 어떤 측면에서 언어로 볼 것인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자는 모음과 자음, 알파벳과 같은 단위로 쪼개진다. 영어 단어 a와 b를 아무리 붙여 쓰더라도 구성상(syntactically)으로나 의미상(semantically)으로 둘 사이에는 공백이 존재한다. 그리고 아무리 갈겨쓰더라도 그 의미는 바뀌지 않는다. 글자의 모양에 관계없이 문자는 일정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반면 그림에서 알파벳처럼 떼어 낼 단위체를 구별하기란 불가능하다. 세잔느의 그림 ‘빅토와르산’에서 붓의 터치, 비례, 색상, 이미지는 구성상이나 의미상으로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몬드리안의 그림과 같이 추상적 회화에서도 이점이 적용된다. 면과 면의 관계가 어우러져 하나의 총체적 그림을 만들어 낸다. 한 부분의 위치와 색상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그림 전체의 의미도 바뀐다. 부분의 의미는 전적으로 전체와의 관계에서 맺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넬슨굿만(Nelson Goodman)은 “그림은 연속적이고 글은 단속적이다"라고 말한다 (Mitchell, 1986, 68) 문자를 디지털 시스템이라고 한다면 그림은 아날로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건축은 아날로그인가? 디지털인가? 건축공간을 구문론적 관점에서 연구한 힐리어는 건축을 언어, 수학, 음악에 비교했다. 수학은 매우 한정된 숫자(어휘)를 갖지만 반면 많은 공식(구문)을 갖는다. 반면 언어는 수학에 비해 많은 어휘와 적은 문법을 가진다. 음악은 수학보다도 적은 어휘를 가지고 거의 무한정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건축에서의 구문은 공간과 공간이 연결된 체계로 해석할 수 있으며 공간의 관계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다(Hillier, 1984). 공간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문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공간구문의 사회적 측면은 벤츄리의 대중기호, 아이젠만의 추상기하학의 오류를 보정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후반이후 상반된 ‘언어건축실험’은 건축과 언어는 동질성과 특이성을 모두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 벤츄리처럼 건축을 ‘어휘(lexicon)’로 보는 것이 극단인 것처럼 아이젠만처럼 ‘구문(syntax)’으로만 보는 것 역시 극단이다. 르네상스이후 서양건축은 ‘어휘’와 ‘구조’를 일관된 체계로 묶으려 하였고 18세기에 이르러 이러한 시도는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근대건축이후 어휘와 구조를 정의하는 것 자체가 모호해졌다. 건축형태를 도출하는 동인이 무한해졌으며 건축가의 선택의 폭이 그만큼 확장되었다. 건축형태를 생성하는 동인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구체화하는 논리는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새로운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1960년대 이후 이론과 실험은 근대건축의 엄격한 규범과 원리가 있었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였다. 1920년대 아방가르드 운동이 건축을 시각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했다면 ‘언어건축실험’은 건축을 인문학의 영역과 교류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1980년대 후반 탈근대주의 건축이 퇴조하면서 건축계는 근대건축과 탈근대건축을 보완하는 경향을 띄고 있다. 이점에서 ‘언어건축실험’이 던졌던 질문은 현대건축에도 살아있으며 때문에 지속적이고 내밀한 담론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인용문헌
Colquhoun, Alan. Assays in Architectural Criticism; Modern Architecture and Historical Change. The MIT Press.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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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delsonas, M. "Linguistics in Architecture," Casabella 374 (February, 1973). 1973.
Hillier, B. & Hanson, J. The Social Logic of Spa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
Jencks, Charles. The Language of Post-modern Architecture. New York: Rizzoli. 1977.
Mitchell, W.J.T. Iconology: Image, Text, Ideology.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6.
Venturi, Robert. Complexity and Contradiction in Architecture. The Museum of Modern Art Papers on Architecture. 1966.
Venturi, Robert. et al. Learning from Las Vegas: The Forgotten Symbolism of Architectural Form. The MIT Press. 1972.

Architecture and Language: The Theories and Practice in Architecture since the 1960s.
Kim, Sung Hong, University of Seoul

Abstract
The paper discusses the way in which the notion of language has been introduced in architectural discourse since the late 1960s. The paper reviews the works of Robert Venturi, Charles Jencks, Peter Eisenman, Alan Colquhoun, and Mario Gandelsonas, which particularly explore the linguistic analogy with architectural form. All authors are sometimes implicatively and sometimes explicitly responsive to each other's theoretical positions. A system of sign can be studied concerning the question of how the lexicon and the syntax are proportioned. The same question arises: can architecture be understood as a lexicon or as a relational structure like language? The first approach advocated by Venturi and Jencks dramatizes architectural form as a problem of sign. In favor of the representational aspects of architectural form, they reduces architecture as popularized iconography. The second approach developed by Eisenman explores the possibility of finding new formal constructs in the abstract relationship of formal properties. As the syntactic structure dominates in Eisenman's theory, however, the distinction between the perceptual and the pragmatic dimension is minimized. Yet, both perspectives address crucial problems at the heart of contemporary architecture and expand the architectural discourse into the broad realms of human stu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