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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omad의 글쓰기

일산신도시 산책 (2000.02)

ono일산신도시 산책
Strolling about in the Ilsan New Town
建築士 기고

서울에서 일산신도시를 가는 길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는 경부고속도로만큼이나 넓게 뚫린 자유로를 달려가다가 호수공원을 지나 일산신도시를 횡단하는 백마로로 들어서는 것이다. 둘째는 수색이나 구파발에서 능곡을 경유하여 국도로 일산신도시의 북측 뒤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셋째는 전철3호선을 타고 구파발, 화정을 지나 일산을 동서로 종단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길은 일산신도시에 사는 사람이건 방문하는 사람이건 잘 알고 있으나 네 번째 방법을 알고있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알고 있다고 해도 서울을 출퇴근하는 신도시사람에게 조차 인기가 별로 없는 길이다. 서울역에서 한 시간 마다 떠나는 열차를 타고 신촌, 화전 그리고 이름이 낯선 몇 개의 간이역을 지나 백마역이나 일산역에 이르는 철길이다.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 이 철길은 경부선과 함께 한반도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혈관역할을 하던 경의선이다. 해방 후에는 만주벌판을 헤매던 사람들,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이 철길을 따라 서울로 들어왔을 것이고 그 이후 철길이 동강나기 전까지 평양과 서울을 연결하는 정치적 통로이기도 하였다. 일산신도시가 생기기 이전에 경의선 기차는 백마역 근처의 카페와 주점 그리고 자연을 찾아 서울을 잠시 탈출하는 대학생의 만남의 공간이기도 하였다. 현재 경의선 철길은 자유로, 전철3호선과 평행선을 그리며 일산산도시와 구일산읍을 가르는 경계를 만든다. 대학생들이 찾았던 백마역 근처의 카페들은 이제 자동차를 타고 오는 손님을 받기에 분주하다. 일제시대 지어진 일산역사는 목조지붕, 회벽마감, 단아한 역사앞뜰을 아직도 지키며 서 있지만 읍내의 중심을 지키던 옛 위용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일산에 살았던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서울역까지 오가는 동안 방해받지 않고 차창을 바라보며 침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눈을 맞으며 플랫포옴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여유도 좋았고 역에서 집까지 도보로 20분 정도를 걷는 것도 자투리땅을 일궈 여러 가지 채소가 심겨진 밭을 지나는 길이어서 서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사치였다. 불과 50분 거리이지만 고객을 정성껏 모시겠다는 차내 방송은 마치 먼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만든다. 출퇴근 시간을 조금 넘기면 홍익회 아저씨가 과자와 음료가 담긴 수레를 끌고 다녀 이 기분은 더해진다. 서부 전방에서 휴가를 나오는 장병들이 객차를 가득 메우는 경우도 많다. 농사를 짓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이쪽에서 떠들어 대고 반대쪽에서 문산의 미군들이 지껄이는 때면 기차는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차창을 통해서 느낀 가장 강한 도시건축적 체험은 마치 버려진 것 같은 도시의 뒤편을 만나는 것이다. 자동차에서 보는 도시의 거리는 어디를 가나 상업화된 앞의 얼굴이다. 간판으로 뒤덮여 있지 않으면 상점의 내부를 밖으로 드러내는 커다란 유리창이다. 반면 기차를 타면 한가한 들판과 야산, 어설프지만 비어있는 땅을 지나 서울로 들어오면서 주택의 조그만 창, 기차의 소음을 막기 위해 세운 방음벽, 축대, 터널, 건널목을 만나게 된다. 찻길이 만나는 것이 화장한 도시의 얼굴이라면 철길이 만나는 것은 가식이 없는 도시의 단면이다. 상업자본주의가 도시를 지배하는 지금 이러한 도시의 뒷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승객 모두가 웬만큼 자리를 잡고 아침의 일산을 가를 때 차창밖에는 항상 반대의 풍경이 벌어진다. 중산지구나 인근에서 일산신도시를 횡단하여 서울로 나가려는 자동차로 백마로와 자유로는 꽉 막힌다. 능곡에 이르며 체증은 더욱 심해진다. 기차를 스쳐 가는 전철 3호선의 내부를 들여다보아도 마찬가지이다.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로 전철은 만원이다. 한가한 차창에서 이러한 바깥 광경을 바라보면서 마치 70년대의 공간에서 90년대의 공간을 내다보는 착각을 하곤 하였다. 시대가 갈리는 경험은 일산신도시와 철길을 사이에 둔 구일산을 바라보면 더욱 강해진다. 한쪽은 20여 층이 넘는 고층아파트, 잔디와 나무로 덮인 산책로가 있다면 반대쪽에서는 아직도 어설픈 70년대의 집들과 농사를 짓다 만 땅들이 여기저기서 달려온다. 군데군데 신도시 흉내를 낸 아파트들을 보면서 이러한 착각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건축가에게 일산이 매력있는 것은 철길주변의 어설픈 풍경이나 시대의 단층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빈땅으로 남아있는 곳에 상가, 빌라트, 혹은 무슨 토피아니 하는 고층주거를 짓는 것일 것이다. 작품성을 추구하는 건축가에게는 정발산 양측에 자리잡은 주택지에다 한번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실험을 해보는 것일 것이다. 이국적 풍경을 드러내는 이곳을 대중매체도 좋아한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촬영하는 장면은 이곳에서 흔한 광경이다. 그러나 산을 끼고 저층 단독주택의 마을을 이룬 이곳은 고층아파트 속에서 마치 섬처럼 느껴진다.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갇힌 섬도시 시헤이븐처럼. 이 영화 속에서 파스텔조의 거리풍경과 복고적 건축형태를 배경으로 일상의 삶이 바삐 펼쳐지는 소도시로 그려지지만 실상 이곳은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 주말이나 1년에 한 두 번밖에 가지 않는 플로리다의 휴양지 시사이드(Sea Side)란 곳이다. 영화에서처럼 이곳의 실제의 삶 역시 세트의 삶처럼 짧은 시간에 기획되고 제작되어진 것이다. 아직까지 일산의 단독주택 역시 내게는 우리도시의 보편적 삶을 담고 있지 않는 타자의 공간으로 느껴진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정주의 의미보다도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변질된 아파트 사이에 끼어진 그림과 같은 이곳에서 건축가의 실험은 우리사회의 거주성과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산은 이제 입주가 된지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신도시 개발에 관한 많은 진단과 비평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필요한 것은 어떻게 계획하고 어떻게 건설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지금 일산신도시는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옮겨가야 할 때인 것 같다. 일산은 건축물과 인구를 산출해서 만든 계획도시이다. 비판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담당했던 관료들의 입장에서 주택의 수요를 충족했다는 점에서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본다. 베드타운이라는 한계도 공공시설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일산신도시를 감싸고 있던 배경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원도시라는 이름을 갖고 태생할 때 주위는 논과 밭 야산 그리고 드라마 전원일기의 세트나 되는 근교농업촌이었다. 일산신도시의 땅과 아파트의 경제적 가치로 확인되는 때부터 주변은 그대로 남아있지 않았다. 철길 넘어 중산, 탄현 등이 커지고 있고, 휴전선을 지척에 둔 파주 교하 일대는 미니 신도시로 이미 바뀌어져 가고 있다. 건축가들이 관심있게 지켜보는 헤이리밸리, 출발문화단지 역시 일산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의 위성도시인 일산신도시는 이제 그 아래에 포도송이처럼 작은 도시들을 달고 있는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다. 쇼핑과 상업시설을 때문에 출판문화단지, 헤이리밸리 주민은 일산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미니 신도시를 빨아들이는 마지막 자석은 서울이라는 중심이다. 중심이 존재하는 한 주변 역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구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면 다음 문제는 중심과 주변을 연결하는 방법이다.

내가 70년대 분위기의 한적한 기차통근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신도시가 훌륭한 인프라스트럭처를 외면하고 도로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일산역이나 백마역에서 서울역까지의 철길은 빨리 달리면 20분내에 갈 수 있는 거리이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철도망, 정차역을 구분하여 시간을 단축시키는 일본의 도시를 보면서 나는 우리의 신도시는 왜 이런 모습은 받아들이지 못할까 자문하곤 하였다. 한국경제를 비판한 오마에 겐이치에 따르면 전후 복구기에 일본의 관료들은 미국과 달리 국토가 좁은 일본에서 철도가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철도를 건설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요타 기이치로 같은 사람들은 자동차 산업을 일구어 내었다 (매일경제, 99.9.1). 민간기업의 역동성과 공공의 힘이 서로 상승작용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는 경제모델 뿐만 아니라 도시의 모델조차도 미국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자료에 의하면 2000년대 초에는 수도권에 113개의 미니 신도시가 들어서고 230여만명이 입주할 예정이다(조선일보, 99.8.30). 이 정도의 인구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큰 도시에 해당한다. 이들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가솔린을 태우며 서울을 오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암울하다.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는 소설 25시에서 암울한 유럽사회를 산소가 결핍되어 가는 잠수함으로 비유한 적이 있다. 산소에 민감한 동물이 이미 죽음을 감지하고 있을 때에도 인간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의 도시는 지금 심각한 산소결핍증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도시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새로운 도시관을 제시한 사람들은 관료나 계획가뿐만 아니라 건축가들이었다. 거시적 마스터플랜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건축을 더 큰 그림에서 실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에 대한 이론과 비평이 끊어지질 않았다. 그 중에서 전후 미국의 도시건축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일관되게 글로 옮긴 두 사람은 오늘 한국의 신도시를 위해서 재론할 필요가 있다. 한사람은 “미국도시의 죽음과 삶”이란 제하로 미국의 도시계획을 신랄하게 비판한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이다. 제이콥스는 교외로 뻗어나가는 미국의 도시를 사회계층이 공간으로 분리되는 반사회적 현상으로 진단했다. 제이콥스의 비판은 궁극적으로 근대 도시계획의 대부인 에베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와 건축가 르꼬르뷰지에의 가부장적 도시관을 향한 것이었다. 제이콥스는 주민의 유대가 끈끈이 지탱되고 있는 대도시의 주거지역을 관료나 도시계획가들은 사라져야할 불량한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주거와 상업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던 도시구조가 슈퍼블록과 조닝 때문에 건조한 공간으로 바뀌어 가는 것도 관찰했다. 제이콥스는 이러한 도시의 공적공간의 죽음을 부채질하는 중심에는 자동차가 있다고 보았다. 제이콥스의 글은 19세기 도시에 대한 회고적 낭만, 자본주의 도시에서 부동산의 위력을 간과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도시관에 대한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제이콥스가 주장하는 ‘밀도 높은 도시(dense city)’는 최근 대두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 이론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반기술, 혹은 비시대적 발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생각이다.

제이콥스와 다른 관점에 서 있었던 사람이 제이비 잭슨(J.B. Jackson)이다. 잭슨 역시 건축물로 에워싸인 광장이나 길이 더 이상 미국의 공적공간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같은 언어, 가치관, 삶의 방식을 가지고 모여 살았던 과거의 도시에서 광장과 길은 집합적 인간 자체였으나 잭슨이 보기에 미국은 더 이상 균질한 사회가 아니었다. 잭슨에게 이상적 커뮤니티는 도시라는 중심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개인이 만나는 교외이며 커뮤니티의 의미는 동질의식이나 결속이 아니라 다양함이었다. 그리고 도시로부터의 해방, 자연과의 만남, 다양함의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자동차이다. 잭슨의 관점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모든 곳은 새로운 의미에서의 공적공간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를 가르는 길과 자동차, 군데군데의 트레일러, 주유소와 모텔, 그 속의 나른 한 사람들의 모습. 잭슨의 글은 미국의 도시와 자연경관을 가장 잘 표현한 에드워드 하퍼(Edward Hopper)의 그림과 같은 서정성을 지닌다. 그러나 잭슨의 글은 기술결정론적 관점, 미국적 경험주의, 사회적 비판결여로 미국 대중문화를 옹호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제이콥스와 잭슨의 주장이 일산신도시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들이 생각이 우리의 의식세계에 공존하는 두 가지의 상반된 도시관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원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픈 욕망과 도시라는 중심에 여전히 기대고 싶은 욕망. 스스로 자동차 매연을 뿜어대면서 깨끗한 공기를 만들지 못하는 정부를 탓하는 심리. 경기도에 살면서 다른 근교농촌 부락과는 다르게 대접받는 서울의 특별구로 남고자하는 이중심리. 도시인구밀도가 전세계에서 수위를 달리는 곳에서 살면서 공존의 법칙보다는 광활한 대지에 세워진 미국의 개인주의를 꿈꾸는 심리. 건축계에서는 최근 자연과 건축을 기술적 관점에서 접목하려는 연구와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개별건축물이 아무리 기술적으로 환경친화적이라고 할지라도 건축을 담는 도시에 대한 전제가 이와 모순된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로스엔젤리스의 외곽에는 자연과 그림처럼 어우러진 전원교외들이 숨막히는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부러움을 준다. 그러나 그곳사람들이 일터로 이동하기 위해 소비하는 에너지가 천문학적이라는 사실도 알아야한다. 한국의 도시모델은 결코 로스엔젤리스가 아니다. 나는 일산신도시와 일산신도시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미니신도시를 계획했던 관료와 계획가,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자유로를 따라 생겨나고 있는 헤이리밸리와 출판문화단지에 참여하는 건축가들에게 한 번쯤은 서울역에서 떠나는 경의선 열차를 권하고 싶다. 차창을 통해서 방치되고 일그러진 도시의 공공성을 피부로 느끼고 공존의 법칙을 찾아내는 도시건축의 청사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부)